[책을 읽읍시다 (1781)] 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저 | 정연희 역 | 문학동네 | 348쪽 | 14,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폭발적인 서사와 눈부신 문장으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로런 그로프의 신작 소설집 『플로리다』. 한국 독자에게도 커다란 사랑을 받은 『운명과 분노』 이후 삼 년 만에 발표한 최신작으로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작가가 십이 년간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쓴 이 작품들은 모두 플로리다를 직접, 간접적인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미국 북부의 다른 주에서 태어나 플로리다로 이주해왔거나, 때로는 플로리다를 벗어나 이국적인 곳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지만 정서적으로 그곳에 계속 매여 있다.
「꽃 사냥꾼」에서 두 아이의 어머니인 주인공은 그녀의 집 근처 모퉁이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싱크홀을 무서워한다. 비가 세차게 퍼붓는 가운데 싱크홀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빗방울이 모이지 않는데 그녀는 그것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이 그 아래 작은 균열을 통해 똑똑 흘러든다는 말이고, 물이 빠져나갈 통로가 있다는 말이며, 거기 구멍이 있다는 말, 즉 그녀의 발 바로 아래 어마어마하게 큰 구멍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이월」의 주인공은 홀로 집에 남아 허리케인의 소용돌이를 겪어낸다. 집이 비틀리고 흔들리며 지붕이 서서히 벗겨지는 돌풍과 폭풍우 속에서 주인공의 곁에 있는 것은 유령들―그녀를 떠난 후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권총 자살을 한 대학 시절 애인,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과 동물들뿐이다.
두 어린 자매는 전기도 물도 제대로 된 음식도 없이 외딴섬에 방치되어 야생에서 생존을 이어나가고(「늑대가 된 개」), 귀가 먼 주인공은 앨리게이터와 독사와 피그미가 사는 호수 한가운데에서 노를 잃어버린 채 고립된다(「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
하지만 세상에는 자연에 대한 공포보다 이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도 많다. 「살바도르」의 주인공 헬레나가 한 발짝도 떼기 힘든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다 넘어졌을 때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그녀를 보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가게 주인이다.
이제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가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순간”을 기다린다. 때로는 “특별하고 어둡고 가시 같은 불안”(「유령과 공허」)을 잠재우기 위해 산책을 하고 조깅을 하지만, 집 근처에서는 최근 강간 사건이 일어났고, 실제로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기도 한다.(「뱀 이야기」)
『플로리다』에서 로런 그로프는 그저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 달과 바다 같은 자연물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탐험한다. 라쿤과 아르마딜로와 앨리게이터와 뱀의 관점에서, 폭풍우를 견디는 집의 관점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래서 이 소설집 전체에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맥동하고, 로런 그로프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더욱 예리해진 문장으로 더없이 생생하게 이 에너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은 수많은 다른 존재 사이에 그저 살아 있는 또다른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이라고 다른 존재와 다른 특별함을 갖고 있지 않기에, 저 하늘 위의 달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다는 인간의 욕구에 무심할 뿐이다. 그래서 경이롭고 감탄스럽지만, 한편으로 그래서 인간은 아득한 시공간에 홀로 선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
‘선샤인 스테이트’라고도 불리는 플로리다는 미국 남부에 위치해 일 년 내내 따뜻하지만 여름은 무덥고 습하며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팰머토 야자수가 곳곳에 심겨 있고, 산책길에 뱀을 만나고, 늪지에는 앨리게이터가 도사리고 있고, 숲으로 들어가면 라쿤과 아르마딜로가 잡목림을 헤치고 나아간다.
로런 그로프는 작품 속에서 이런 플로리다의 기후와 자연환경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며 한 장소가 품고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이를 작중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긴밀하게 연결시켜 작품 전체에 위협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작품에도 그곳의 열기와 습기 가득한 공기가 짙게 깔려 있어, 마치 소설집 전체가 어느 한 장소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으로 형성된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처럼 느껴진다.
“『플로리다』는 소설집이라기보다 하나의 생태계다”(「애틀랜틱」)라는 평처럼, 로런 그로프는 시적인 아름다움과 본능적인 날카로움으로 그만이 창조할 수 있는 세계를 쌓아올린다.
작가 로런 그로프 소개
폭발적인 서사,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술로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 “산문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1978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다. 애머스트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첫 장편소설 『템플턴의 괴물들』을 발표했다. 이 작품이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오렌지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소설집 『섬세한 식용 새들』을 출간했다.
2012년에 발표한 두번째 장편소설 『아르카디아』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미국 문학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 작품은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살롱닷컴의 설문에서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세번째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를 발표했다. 아마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1위’에 오른 이 작품은,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 [타임] [시애틀 타임스] [커커스]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최고의 책으로 뽑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8년 출간된 『플로리다』는 11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으로, 그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다음해 스토리 프라이즈를 수상했으며, NPR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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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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