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816)] 여름의 빌라
백수린 저 | 문학동네 | 292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을 통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백수린.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한 플롯으로 문단과 독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아온 백수린이 세번째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선보인다. 현대문학상(「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문지문학상(「여름의 빌라」), 젊은작가상(「고요한 사건」 「시간의 궤적」) 수상작을 한 권에 만나볼 수 있는 『여름의 빌라』는 오직 백수린만이 가능한 깊고 천천한 시선으로 비로소-기어코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는 이들의 눈부신 궤적을 담은 작품집이다.
백수린 소설의 화자는 모름지기 조심스럽다. 이 사려 깊은 인물들이 지나온 “결정적인 한 장면”(「고요한 사건」)을 둘러싼 계절과 세월을 함께 좇아가보는 일이 그의 소설을 읽는 주요한 독법이자 체험일 것이다.
‘결정적인 한 장면’이란 그저 작가가 그려내는 클라이맥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자신의 최선으로 사려 깊었기에 피치 못한 시차視差와 사각死角을 ‘이제 와’ 되짚고 대면하는 여정에 더욱 가깝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와 「시간의 궤적」은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의 진실이 오랜 시차를 두고 당도하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진 ‘나’와 ‘언니’(시간의 궤적」), ‘주아’와 ‘베레나’ 부부(「여름의 빌라」)가 일식하듯 포개어졌다 다시금 멀어지는 과정을 반추하며 비로소 생생한 과거에 다다르는 과정을 작가는 그려낸다. 선명한 상실의 감정 앞에서 단절이 아닌 마주하는 용기를 택하는 소설 속 화자들에게 상실은 더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모국에서든 이국에서든 유배의 감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화자들, 이를테면 ‘전학생’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내 안의 소수자성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제 위치를 살피는 백수린의 화자들에겐 딛고 선 모든 땅이 언제나 이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경계는 쉬이 지워지지 않지만, 내 안의 이인異人을 부단히 인식하는 인물들은 타자의 삶을 예단하는 대신 자신의 삶으로 들여놓으며, 반대로 감히 타인이 되어보기를 경계하기에 고독해지는 인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재개발지역에 불시착한 듯한 한 가족과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나의 고독과 한계를 한 폭의 정물화로 그려낸 「고요한 사건」, 어느 밤 힘겨워하는 노인을 돕는 ‘착한 일’이 초래한 비극으로 자꾸만 그날로 되돌아가는 한 남자를 그린「아주 잠깐 동안에」에는 작가가 오래도록 천착해온 경계의 윤리가 촘촘하게 구현되어 있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이번 소설집 안에서도 “아주 우아하게 다른 방향으로 결을 뻗은 놀라운 작품”(김금희)이다. 모체에 가두어져 있던 욕망이 서서히 발화하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아주 낯선 아름다움을 목도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또한 「폭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는 백수린이 그리고자 하는 여성과 여성의 욕망을 이채롭게 변주한 삼부작으로도 읽힌다. 더이상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닌, 이제는 거울이 필요 없는 “자신의 인생을 특별한 서사”(「흑설탕 캔디」)로 다시 쓰는 여성들의 우아한 여정이 이 소설들엔 담겨 있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백수린의 한 시절을 닫는 소설로 부족함이 없다. 과거와 현재를 이음매 없이 오가는 한없이 서정적인 문장 속에서 순수와 도발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한 시절 역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진 매혹적인 서사”로 채워질 것이다.
백수린 소설의 화자들은 더이상 여리거나 약하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 기민하게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천천히 균열을 직시하며, 관계의 어긋남을 아프게 헤아린다. 그 예민함으로 외면을 택하기보다 공존을 모색하기에 조용하게 단단해진다. 손쉬운 이해나 혐오에 빠지지 않고 사랑으로 이행하려는 이의 행보와 입술은 언제나 무거울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기에 백수린이 그려내는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흔들림의 자취, 고요한 열정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동반한다.
작가 백수린 소개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과 Lyon 2 대학에서 불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엽편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번역서 『문맹』을 출간했다. 2015년, 2017년, 2019년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관리되지 않는 사설보호소에서 방치된 채 야생화된 개 ‘재롱’이와 일대일 결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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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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