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833)] 바비의 분위기
박민정 저 | 문학과지성사 | 260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등으로 한국 사회 내 다양한 여성혐오 양상을 짚어냈던 페미니스트 작가 박민정이 신작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작가는 성폭력과 젠더 불평등의 역사적-지정학적 권력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초반 세 작품은 비동의 불법 촬영물 유포를 둘러싼 여러 맥락을 완성도 높은 소설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N번방 사건’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분노하는 이 시대 독자들과 긴밀히 호흡할 것이라 기대된다.
이 단편들은 또한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및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으로서 그간 큰 주목과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나아가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은 단선적인 피해자-가해자의 선악 구도를 넘어서 인간관계 안에 작동하는 여러 힘의 작용을 포착해내 흥미로움을 더한다. 폭력의 역사와 지형도를 예리하게 짚어내는 서사를 통해 현실 문제와 치열하게 분투하는 박민정의 소설. 그의 신작 『바비의 분위기』를 읽는 일은 우리에게 시대를 사유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역사적 모티프와 현실의 문제를 병치하여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폭력이 오늘도 반복되고 있음’을 통렬하게 제시하는 박민정의 소설 작법은 이번 수록작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한 시체 공시소 모르그와 현재 온라인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동의 불법 촬영물 유포 범죄를 연결하여 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피해자 다수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르그 디오라마」.
축제 기간에 여성이 추행되는 영상이 아카이빙되는 미국 뉴올리언즈의 ‘마르디 그라’와 예쁘다, 귀엽다는 식의 ‘얼평(얼굴 평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일상이 겹쳐져 여성의 몸과 시선의 폭력을 상기하는 「세실, 주희」. “혹시 생기는 게 딸이면 떼버리라는 말도 거침없이” 하던 여아 낙태의 유구한 역사와 딸이라는 이유로 해외에 입양 보내진 강장희 강장선 자매 이야기로 여성혐오 문제를 풀어내는 「신세이다이 가옥」. 이렇듯 박민정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억압의 통시-공시적 연속성을 발견해 세밀하게 엮어냄으로써 끝없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면면을 보여준다.
피해-가해, 선-악이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는 소설은 읽는 이에게 어려움과 난감함을 안기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민낯이기도 하다.
「세실, 주희」에서 미국 여행 중 몰카 피해를 당한 주희가 어렵게 영작해낸 ‘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slut이 아닙니다’라는 호소와, 2차 대전 때 자결한 할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한국어로 작문하는 세실의 사이에 놓인 번역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차이.
「천국과 지옥은 사실이야」에서 필리핀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한국으로 피신한 레니와 코피노 셔리스의 관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면 단위 출신’ 유진의 고통과 허탈함.
이렇게 복잡한 맥락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독자는 끝내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로 인해 판단 중지의 순간을 맞게 된다. 이러한 ‘막막함’ ‘단언할 수 없음’이 결국 우리의 삶과 적극적으로 맞닿는 사유의 지점을 열어주어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이 박민정 소설의 큰 매력이다.
작가 박민정 소개
1985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창과와 동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졸업.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 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서독 이모』가 있다. 2015년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실, 주희』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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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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