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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872)]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책을 읽읍시다 (1872)]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저/하윤숙 역 | 비채 | 636| 17,8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당신의 삶은 어떤 빛깔인가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레즈비언 연극 연출가 앰마를 중심으로 1800년대 후반부터 백오십여 년의 시공간 속에서 혈연 또는 친분으로 이어져온 흑인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작가는 마치 열두 개의 목소리를 지닌 사람처럼 십대에서 구십대에 이르는 그들의 삶이 서로 다른 환경 · 배경 속에서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지만 큰 상처를 감추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주류와 투쟁하고 있으며 목표를 향해 발버둥치는 여성도 있고, 고난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욕을 잃지 않은 여성도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게도 대부분의 삶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두드러지는데, 영국 사회의 주류가 여전히 앵글로색슨 남성인 만큼 인종과 성별로 거듭 소외된 흑인 여성은 철저히 주변인일 수밖에 없다.

 

이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한 인터뷰를 통해 문학에 흑인 영국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게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그 존재를 열두 명으로 축약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는 기득권-백인-영국인-남성에 의해 좌절하거나 억압당한 삶, 온갖 폭력에 짓눌리고 비틀린 열두 여성의 삶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소설을 펼친 이라면 그들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보게 되기 마련. ‘수차례 책을 덮고 쉬어가며 읽어야 했다라는 한 독자의 리뷰처럼 아픈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지만, 에바리스토는 개인의 비극을 거듭 조망하면서도 결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열두 여성은 좌절을 딛고 일어서고, 고통보다 더 큰 기쁨을 찾아 나서고, 저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해낸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이 존재를 존재 자체로 긍정하는, 성별과 인종을 초월해 모든 인생에 바치는 찬가라고 칭해도 과언은 아닐 이유가 여기 있다. 특히 마지막에 열두 갈래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의 놀라움과 감동은 이 여성들의 삶을 오롯이 지켜본 독자만의 특권이자 카타르시스. 단순히 흑인 또는 여성을 위해 쓰인 작품이라고 치부하거나, 선동적인 페미니즘 소설로 제한하기에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울림은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이야기다” “우리 삶의 공통적 경험이 살아 숨 쉰다라는 격찬이 쏟아진 까닭 역시 동일할 것이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을 펼치면 그 독특한 형식에 눈길이 가게 된다. 생경하게도 마침표가 각 챕터의 마지막 문장에 한 번씩만 찍혀 있을 뿐, 수많은 쉼표와 행갈이로 문장과 문장이 흐르듯 이어지는 것. 독자의 호흡에 따라 몇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소설로 볼 수도 있고, 변칙적 리듬의 산문시로 낭송할 수도 있으며, 희곡이나 대본처럼 감정을 이입해가며 읽어나갈 수도 있다.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 소개

 

1959년 런던에서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열두살 무렵, 획일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학교와 달리 다양성을 존중하고 권장하는 예술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특히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로즈브루포드 드라마스쿨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극단을 경영하는 등 제작자이자 배우로 살아갔다. 영국 태생의 혼혈 흑인이라는 태생적 배경과 연극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창작의 원천이 되었고, 무엇보다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는 현실은 역사와 근원에 대한 갈망을 낳아 장르/인종/젠더/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첫 책인 시집 아브라함의 섬을 출발점으로 운문소설 라라』 『황제의 연인, 시와 산문을 융합한 영혼의 여행자, 풍자소설 금발의 뿌리, 서간체소설 안녕 엄마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파격과 융합을 시도해 화제를 낳았고, 희곡과 비평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2004년에 왕립문학회 회원, 2006년에 왕립예술회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9년에는 대영제국 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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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