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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874)] 사랑이 한 일

[책을 읽읍시다 (1874)] 사랑이 한 일

이승우 저 | 문학동네 | 248| 1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다섯 편의 작품이 담긴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밝힌 의도처럼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을 한가운데 두고 시간순으로 앞뒤에 두 편씩이 더 배치되어 있다. 자기 딸을 불량배들에게 내주는 소돔성의 롯의 이야기인 소돔의 하룻밤,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기는 하갈의 이야기 하갈의 노래가 앞의 두 편, 이삭이 느끼는 기묘한 허기와 그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를 향한 편애에 대한 소설적 해설이라 할 수 있는 허기와 탐식」 「야곱의 사다리가 뒤의 두 편이다. 

 

모티프로 삼은 창세기의 골자들은 그대로 둔 채 작가가 의문을 품은 지점,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주목해보자. 맨 앞자리에 놓인 소돔의 하룻밤과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은 우선 독특한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소돔의 하룻밤의 경우 소돔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는 다섯 개 장면의 문장이 반복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소설의 문장이라기보다는 논리적 변증에 가까운 치밀하고 끈질긴 문장들이다.

 

성경 텍스트 속 서사의 빈자리를 작가가 디테일하게 채우며 추론하고 납득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동심원을 그리듯 하는 문장의 반복이 작품을 서서히 확장시키고 거기서 오는 파동에 읽는 이의 눈은 새로이 뜨인다. “밀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매몰되면 아예 시야가 없어진다. 내부자는 내부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도 잘 보지 못한다는 듯이.

 

표제작 사랑이 한 일에서 반복되는 문장은 소돔의 하룻밤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소돔의 하룻밤이 이야기를 따라가되 작가가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그 흐름을 밀고 나가는 방식이라면, 사랑이 한 일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 반복되며 화자인 이삭, 그러니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바쳐라라는 신의 명령과 그 명령을 따른 아버지 아브라함 양쪽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하는 인물의 내적 투쟁을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했던 아들이 스스로 묻고 답한다.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누구에 대한 사랑인가, 누구의 사랑인가. 그 사랑이 조금 덜했다면 신은 아버지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나를 제물로 바치겠다 순종하지 않았을 테고, 다시 신이 아버지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을 일인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의 명령 앞에 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묻고 또 묻는 것, 의심하고 숙고하고 납득해보려 애쓰는 것, 그것에 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쏟는 것이다. 신의 무리한 명령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입장이 아니라, 영문 모른 채 바쳐지는 자로서 존재하던 이삭에게 입을 달아준 작가는 그러므로 같은 모티프를 너무나 인간적인 것으로 다시 쓸 수 있었으리라.

 

당신은 내게 왜 이러는가 묻는 또다른 인물은 하갈의 노래하갈이다.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긴 하갈은 복을 약속하고 후손을 약속했던 신의 목소리를 원망한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 사랑이 한 일과 함께 화자의 독백으로 구성된 작품 속 화자들은 완고한 텍스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육성을 얻는다.

 

허기와 탐식은 나이든 이삭과 그의 두 아들 에서, 야곱의 이야기이다. 맏아들 에서가 아닌 둘째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 가부장의 권리를 가로채려 하고, 여러 사건 끝에 참회를 한 야곱이 적통을 잇는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작가 이승우는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왜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편애했는가. 아버지의 칼날에 죽을 뻔했던 그에게 남은 상흔과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이복형 이스마엘이 잡아준 들짐승 고기의 맛. 그것이 사냥꾼인 맏아들 에서에게 투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삭의 편애와 축복은 빗나가고, 자기 것이 아닌 축복을 받은 둘째 야곱은 도망치듯 집을 떠난다.

 

거의 최초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존재, 고아이고 나그네가 된 시간에, 크게 두렵고 깊이 외로운 그의 밤 광야의 자리로 그분이 찾아왔다.” “너와 함께하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의 편애는 받지 못했으나 신의 편애를 받은 야곱의 이야기 야곱의 사다리로 소설집은 마무리된다.

 

 

작가 이승우 소개

 

1959년 전남 장흥군 관산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하였다. 1981[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1991세상 밖으로로 제15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1993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고, 2002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제15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여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왔다. 2007전기수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2010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오영수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등이 유럽과 미국에 번역, 소개된 바 있고, 특히 그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2009년에는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기도 했는데, 폴리오 시리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고본으로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해 펴내고 있으며,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그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소설집으로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 광고, 신중한 사람등이 있고,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캉탕등이 있다. 이 외에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소설가의 귓속말등의 산문집이 있다.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등이 유럽과 미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특히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2009년에는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한국 소설 최초로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올랐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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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