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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952)] 생의 실루엣

[책을 읽읍시다 (1952)] 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저 | 이지수 역 | 봄날의책 | 224 | 11,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환상의 빛, 금수의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에세이집. 1년에 두 편씩, 10년에 걸쳐 쓴 글모음으로, 테루의 문학, 테루라는 사람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직접적인 기록이다. 

 

미야모토 테루, 라는 사람

태풍이 불어 닥친 날 밤 이부자리에 누워 50년도 더 지난 소년 시절의 일을 계속해서 떠올리는 사람, 사막을 걸어가던 얼굴도 모르는 청년의 뒷모습을 머릿속에 15년이나 담아두는 사람, 그렇게 자기 안에 작은 이야기들을 축적하고 숙성시켜 입체감 있게 만들 줄 아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들만이 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그는 정말이지 작은 것을 통해 깊은 울림을 줄 줄 아는 작가다.

 

소박하고 서정적인 그의 소설에서처럼, 이 에세이집에도 대단한 사건이나 요란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테루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기억에 담아두지 않을 법한 사소한 일을 작가의 눈으로 예리하게 포착하여 한 편의 수필로 완성시키고, 모든 글을 놀랍게 아름다운 문장 혹은 문단으로 마무리한다.

 

나의 질병, 공황장애

그 순간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설가가 되면 전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매일 집에서 일할 수 있다. 북적이는 곳을 걷지 않아도 된다. 이제 이것 말고는 내가 처자식을 먹여 살릴 길은 없다, 하고.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은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테루의 유년 시절, 그곳 사람들

그런 다소 특이한 곳에서 유소년기의 5년을 보낸 나는, 오사카 변두리의 강과 거기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땀내와 햇볕 냄새, 생활에 찌든 한숨 같은 것이 마음의 주름 여기저기에 깊이 잠식해 있다.

이런저런 강이 있지만, 나에게 강이란 숨 쉬는 인간이 모든 것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의 전시장이다.

 

터널 연립주택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리어카를 끌며 라멘을 파는, 애가 여럿 딸린 남자. 야시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청년. 마을 공장에서 알루미늄 주전자만 만들어온 지 40년이 되었다는 노인. 2층에서 손님을 받는, 이름만 술집인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 한신 전철 아마가사키역 근처의 골목에서 점을 치는 자칭 시인 여자. 우체국 직원 형제. 광물 채굴업이라고 부르며 불법 필로폰을 파는 중년 남자.

 

환상의 빛에서와는 또 다른 뒷모습

나는 과연 그렇구나 생각하며,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애타게 기다리던 산책에 기뻐하는 개에게 질질 끌려 종종걸음으로 나를 앞질렀고, 사거리에서 산 쪽으로 꺾어 가버렸다. 급한 비탈길을 개에게 끌리듯 올라가던 그 사람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것은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작가 미야모토 테루 소개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읽은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4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오테몬학원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산케이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1975년 신경불안증으로 퇴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77 진흙탕 강으로 다자이오사무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이듬해 1978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다졌다.

 

폐결핵으로 일 년 가까이 요양한 뒤 곧 다시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한다. 1987년에는 준마를 발표하면서 역대 최연소인 40세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JRA상 마사문화상을 받았다. 이후 아쿠타가와상, 미시마유키오상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각종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3부작으로 불리는 흙탕물 강, 반딧불 강, 도톤보리 강, 서간체 문학인 금수, 자전적 대하 작품 연작으로 영화화되거나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유전의 바다(1984), 도나우의 여행자(1985) 등이 있으며 사랑은 혜성처럼, 해안열차, 인간의 행복, 이별의 시작, 피서지의 고양이, 반딧불 강, 우리가 좋아했던 것』『파랑이 진다』『환상의 빛 등의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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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