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29)] 상아의 문으로

[책을 읽읍시다 (2029)] 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저 | 문학과지성사 | 223 | 1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09년 첫 책을 출간함과 동시에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폭넓은 팬층을 단번에 확보한 작가 구병모의 새 장편소설 상아의 문으로. 등단 이후 꾸준히 신작을 발표해온 그가 2021년 연말을 앞두고, 계간 문학과사회(2020년 가을호~2021년 여름호)에 연재했던 소설을 묶어낸 것이다.

 

이 증상이 시작된 뒤로는 매 순간이 직전 순간에 대한 분석과 다음 순간에 대한 예기(豫期)의 도구가 되며 그 행위는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들여다본 거울 안에는 뒤편의 수건걸이에 비뚜로 걸린 붉은 수건이 영원히 교차되지 않는 건널목의 신호처럼 비칠 뿐 진여 자신의 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이제 그런 모습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데 익숙해진 진여는 수도꼭지를 돌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양손에 물을 받아 역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통상 얼굴이 붙어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자리를 향해 물을 던지듯이 하여 씻는데 이 같은 동작과 얼굴에 닿는 찬물의 감각이 진여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p. 10)

 

이 책의 제목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등에 등장하는 상아로 만든 문 뿔로 만든 문이라는 아이디어에서 빌려왔다. 이들 서사시에서 말하길, 상아의 문으로 흘러든 꿈들은 거짓된 것이고, 뿔의 문으로는 진실된 것들만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두 가지 문 중 상아의 문으로 향해 갈 것이다. 이 문을 지나면 그 뒤에 등장하는 감각,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명확한 논리, 의지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사라진 문장들 사이에는 오로지 지금 명멸하는 사태만이 있다.

 

때문에 상아의 문으로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려는 의지를 담보한 채 매 순간 등장하는 새로운 문장들을 맞이할 때에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쳐 들었다면 문장을 가로질러 섣불리 결말을 찾고자 하는 시도보다는 하나의 문장을 읽을 때 살짝 켜졌다 다시 사그라드는 눈앞의 사태에 집중하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할 것이다.

 

 

작가 구병모 소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2009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성장소설 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역시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 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어 화제가 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한 인터넷 웹진에서 '곤충도감' 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용서에 대한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파과,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이 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