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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37)] 최소한의 선의

[책을 읽읍시다 (2037)]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저 | 문학동네 | 256 | 15,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인터넷 포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건사고 소식이 올라온다. SNS나 유튜브에서는 저마다의 비판과 성토가 쏟아지고 찬반 여론은 극렬하게 부딪히지만 어느새 사건은 금세 잊히고 서로에 대한 분노의 앙금만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풍경이다.

 

각자의 옳음과 그름이 상충하고, 이해관계가 다층적으로 얽힌 만큼 판단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필요를 느끼지만,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만큼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점점 작아지는데 장기화하는 코로나 팬데믹마저 우리가 지켜온 가치들에 심각한 교란을 일으켜 서로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건강한 가치 판단과 공존을 위한 타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최소한의 선의는 문유석 작가, 한 사회의 개인들이 공유해야 할 가치들은 무엇일지 법학적 관점에서 경쾌하고도 예리하게 짚어보는 책이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권리선언이자 모두의 약속인 인간 존엄성과 자유,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색해지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시대.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경기 침체로 너나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오징어 게임이 아닌, 지혜로운 공존을 위한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책의 1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에서는 인간 존엄성 개념이 확립되어온 역사를 조목조목 살피며 이를 중심으로 한 헌법적 가치를 망각한 듯한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 존엄성은 감상적 휴머니즘이 아니다.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합의해온 가치이자 우리나라 법 체계의 출발점이고 헌법의 핵심이다. 만일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 삶 속에 체화되지 않았거나 위선적이고 공허한 소리일 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진 자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그 모든 갑질과 횡포와 폭력이 만연한 나머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간성을 허상처럼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법이 왜 인간 존엄성을 최상위의 가치로 두는지, 누군가 반사 이익을 얻더라도 왜 모두의 인격이 법으로써 존중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글들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23년간 법관으로서 법을 공부하고 실제에 적용해온 문유석 작가의 송곳 같은 논리가 유려하게 펼쳐진다.

 

우리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지구상의 인간 군상과 세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자신을 전시하기도 하고 남들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부러워하거나 비판하기도 한다. 미처 소화되지 못한 날것의 감정이 여과 없이 흘러넘치는 공간에서 사생활 침해와 인격 살인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그러한 무분별한 비방과 혐오를 강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못마땅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할 권리는 애초부터 그 누구에게도 없을뿐더러, 인간에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천부인권적 자유가 있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보이는 누군가가 눈엣가시처럼 보일지라도 함부로 그를 비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

 

문유석 작가는 우선 우리 헌법질서에 내재한 인본주의 공리주의가 형벌에 대해 필요 최소한의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법이 인간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라면 형벌은 사회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악의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치주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법감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렇다 하더라도 법이 인간 그 자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카롭게 되묻는다. 법이 인간의 감정과 편향을 너무 쉽게 간과하는 나머지, 법적 효능에 대한 시민의 신뢰마저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작가 문유석 소개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과 음반을 쌓아놓고 홀로 섬에서 살고 싶다고 바랐을 정도로 책 읽기와 음악을 좋아했다. 1997년부터 판사로 일했으며 2020년 법복을 벗고 사임했다. 책벌레 기질 탓인지 글쓰기도 좋아해 법관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틈나는 대로 기록해왔다. 칼럼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로 전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대본을 직접 맡아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쾌락독서』 『판사유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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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