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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85)] 유령의 마음으로

[책을 읽읍시다 (2085)] 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저 | 민음사 | 284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신인 소설가 임선우의 첫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미 임선우라는 이름과 마주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19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선우는 고요하고도 능청스러운 환상을 부려 놓은 소설들을 착실히 발표해 왔으며, 풍경이 다른 섬들처럼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여덟 편의 작품들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유령의 마음으로의 인물들은 골똘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다만, 소설이 시작될 때에는 자신의 막막한 현실에 매몰되어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면, 소설이 끝날 때쯤에는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느라 골똘해진 얼굴이 된다.

 

고된 삶에 치여 무거웠던 표정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위하는 데 열중하는 얼굴로 변해 가는 것. 인물들의 내면에 이렇듯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미묘한 순간을, 임선우의 소설은 세밀하게 포착한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는 돌풍에 떨어진 중국집 간판에 맞아 즉사한 뒤 이승에서 부여받은 마지막 100시간 동안 의 염원 대신 처음 만난 유령의 꿈을 이뤄 주고자 분투한다. 아이돌이 꿈이었던 그 유령의 노래를 도시 구석구석 울려 퍼지게 하는 데 성공하자 는 영영 모를 것 같던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비로소 짐작해 보게 된다.

 

빛이 나지 않아요 는 꿈을 포기하고 얻은 직장에서 만난, 해파리로 변해 가는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다. “지선 씨가 보았을 빛, 단 한 번의 빛만을 생각할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의 다짐처럼, 그 생각은 의 삶이 잃어버린 빛까지 밝혀 준다.

 

임선우의 인물들은 다른 이들에게 조심스레 곁을 내어주면서도 자신의 삶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상대가 겪었을 슬픔의 크기를 짐작하고, 자신도 그만큼의 슬픔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튼튼하게 가꾸기로 한다.

 

그들은 제힘으로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으며, 그 제힘 덕분에 상대를 적절한 거리에 둔 채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는 평론가 황예인의 해설처럼 인물들은 변함없이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킨다.

 

여름은 물빛처럼의 두 인물, ‘ 이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사라진 아픔을 안고도 서로 덤덤히 그날의 일과를 나누는 것처럼. 낯선 밤에 우리는의 두 친구가 자주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말하기 어려운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처럼.

 

임선우가 내보이는 적당한 온기의 관계는 현실의 어려움, 잔뜩 엉킨 관계 속에서 휘청거리는 이들에게 정답 같은 장면이 되어 준다. 그가 제시한 관계 안에서라면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잘 서 있을 수 있다.

 

 

유령의 마음으로

어느 날, 일하던 빵집에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이 나타났다. 유령의 능력이라면 그저 나의 마음과 완벽히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 유령과 모든 일과를 함께해 가며 나는 유령의 마음과, 그와 똑같이 생긴 나의 마음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빛이 나지 않아요

닿기만 해도 해파리로 변하게 만드는 변종 해파리가 나타났다. 변종 해파리는 바닷속에서도 환한 빛을 뿜는다. 그 빛은 사람을 홀려 해파리로 변하고 싶도록 만든다는 소문이 돈다. 자진해서 해파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자리를 갖게 된 나는 한 고객의 곁을 지키며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여름은 물빛처럼

어느 날 방 문을 열자 나무로 변해 가는 낯선 이가 내 방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산. 나는 산의 부탁대로 일주일 동안만 그가 내 방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산이 불편하기만 하던 나는 이내 산의 뿌리에 물을 주고 그와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낯선 밤에 우리는

나는 난임 클리닉에 다니며 자주 지나던 신촌역 앞에서 중학교 때 친구 금옥을 만난다. 등에 커다란 십자가를 메고 전도 중인 금옥. 오래전 어색하게 멀어졌던 금옥은 나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음식을 해 준다. 그 이후 둘은 매주 따로 약속을 하지 않고도 신촌역 앞에서 만나 금옥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에 대해 천천히 다시 알아간다.

 

집에 가서 자야지

나는 에게서 반려 도마뱀 김재현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김재현을 찾기 위해 건물 배관을 모두 뒤지던 조는 윗집에서 도마뱀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청소를 해 주는 대신 도마뱀을 찾아봐도 괜찮겠느냐고 부탁한다. 몇 차례의 방문에도 김재현은 보이지 않고, 나와 조, 그리고 윗집 주인은 점점 친밀한 관계가 된다.

 

동면하는 남자

극단이 망하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어느 날 수상한 남자의 의뢰를 받는다. 자신이 변온동물이 되어 동면에 들어가야 하니, 땅에 묻히는 것을 도와주면 1천만 원을 주겠다는 의뢰였다. 나는 그의 부탁 앞에 고민에 빠진다.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문득 발바닥이 따가워 바닥을 살펴보니 요구르트 빨대가 바닥을 뚫고 나와 있다. 빨대를 뽑아 버리고 며칠 뒤 아랫집 여자가 찾아와 혹시 빨대를 못 보았느냐고 묻는다. 자꾸만 천장에서 흰 가루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꽂아 둔 빨대라는 것. 나는 식탁에 마주 앉아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늦은 밤 편의점에 가다 돌풍에 떨어진 중국집 간판을 맞고 즉사한 나는 저승사자로부터 100시간의 유예 시간을 부여받고 이승을 떠돌게 된다. 마지막으로 들를 장소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은 나는 옆 테이블에서 오늘 저녁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엿듣고 그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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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