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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281)] 파견자들

[책을 읽읍시다 (2281)] 파견자들

김초엽 저 | 퍼블리온 | 432 | 19,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김초엽의 신작 장편소설 파견자들. 한 식물생태학자가 모스바나의 비밀을 추적해가던 이야기가 세계의 재건과 구원이라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 도달할 때의 놀라운 충격과 깊은 감동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작가가 써낸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을 가진 이야기를.

 

파견자들은 어느 겨울, 한 가정집으로 입양된 여자아이가 쓴 수상한 쪽지에서 출발한다. 여자아이는 낯선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채, 창밖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보낼 수 없는 편지만 쓸 뿐이다. 집안의 어른들은 울다 지쳐 잠든 여자아이의 방에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쪽지를 발견한다.

 

어린아이가 썼으리라고는 보기 어려운 내용의 쪽지 앞에서 어른들은 걱정에 잠긴다. 이 쪽지는 대체 누구에게 전하는 메시지일까? 혹은 누군가의 말을 받아적은 메모인 걸까? 아주 천천히 정점(頂點)을 향해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처럼, 김초엽은 독자를 데리고 다음 페이지로, 또 그다음 페이지로 나아간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꼭대기에 올라왔음을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섬찟할 만큼 아름다운 존재의 풍경을 목도하며 이 이야기가 다름 아닌 SF 소설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아포(芽胞)로 가득찬 지상 세계. 사람들은 어둡고 퀴퀴한 지하 도시로 떠밀려와 반쪽짜리 삶을 이어간다. 형편없는 음식에 만족하는 한편, 혹여라도 광증에 걸릴까 두려워하며. 하지만 태린은 누구보다 지상을 갈망한다. 그에게 일렁이는 노을의 황홀한 빛깔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반짝임을 알려준 스승 이제프 때문이다. 태린은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그와 함께 지상을 탐사하기를 원한다.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이제프에게 더이상 보호받아야 할 어리숙한 제자가 아니라 동등한 동료로 설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파견자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필요 과정을 이수해가는 동안, 태린은 다른 이들처럼 기억 보조 장치인 뉴로브릭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늦은 시술로 인한 부작용으로 머릿속에서 뉴로브릭과의 연결을 끊어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광증 저항성을 발휘하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이제 파견자 자격 시험만을 앞둔 상황. 그런 태린에게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스트레스로 인한 환청일까, 이제프의 말처럼 뉴로브릭의 오류로 발생한 문제일까. 아니면 모르는 사이 광증에 걸려 미치기라도 한 걸까? 태린은 그 목소리를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반응하면서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최종 시험에 다다른다. 지상으로 나간 태린은, 마치 유화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화려한 색채로 빛나는 풍경에 압도된다. 인간의 자아를 파괴하는 범람체들의 세계는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린은 파견자란 지상을 향한 매혹뿐 아니라, 증오까지 함께 품어야 한다는 이제프의 조언을 되새기며 목적지를 향해 한걸음씩 내디딘다.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이상한 목소리와 함께.

 

김초엽은 몇 년 전 한 미술 전시에 발표한 짧은 이야기를 씨앗 삼아 이를 긴 호흡의 장편소설 파견자들로 탄생시켰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무엇으로 구성된 존재인지 살피고, 이를 통해 인간의 경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 것인지 탐구한다. 그가 자신만의 탐구 과정과 답안을 고민하며 이번에 몰두한 것은 곰팡이와 버섯 등의 생물을 포함하는 균류. 분해하고 부패해가는 모든 과정과 결과물들, 달큰하면서도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냄새 등으로 떠올려지는 어떤 존재 말이다.

 

파견자들은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들 때문에 낯선 행성으로 변해버린 지구, 그곳을 탐사하고 마침내 놀라운 진실을 목격하는 파견자들의 이야기다. 이때 파견자가 되기 위해 수련하고 시험을 거치며 지상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최종적으로 독자가 도달하는 곳은 김초엽의 소설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이리라.

 

 

작가 김초엽 소개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 사이보그가 되다가 있고,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우주에 직접 가고 싶지는 않은 SF 작가. 환상적인 시공간을 여행하고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취미는 두 달마다 바뀌는데, 가장 오래가는 건 게임. 언젠가 집에 모든 종류의 게임 콘솔과 커다란 스크린이 구비된 게임방을 만들고, 스스로를 완전 격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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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