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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368)]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1792년 만인소운동

[책을 읽읍시다 (2368)]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1792년 만인소운동

이상호 저 | 푸른역사 | 260| 16,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조선은 우리가 무심코 상상하는 그저 그런 전제 왕권이 지배한 나라가 아니었다.

 

인심이 동의하는 바를 공론이라 하고, 공론이 있는 바를 국시라고 한다라는 이이의 말처럼 조선은 공론정치를 지향했고, 이로 인해 관료를 넘어 재야 유생들에게까지 상소를 올리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156522차례에 걸쳐 연명 상소운동인 백인소를 시작으로 집단 상소가 이어졌다. 조선 시대 일상에서 현대적 의미를 길어내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는 지은이는 류이좌(추정)천휘록을 바탕으로 1792년 조선 최초의 만인소를 꼼꼼하게 복원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미시적 사실만이 아니다. 정조와 그 측근인 채제공이 기득권층인 노론 견제를 위해 새로운 지지 세력이 필요했다든가, 영남 사림에 힘을 부여하기 위한 도산별과가 영남 사림을 정치적 동반자로 삼겠다는 의미였다는 등 만인소 운동의 굵직한 배경을 짚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자기 입으로 공론화하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면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정조의 노회한 속셈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영남 사림에 정국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우려한 노론의 노심초사도 당시 권력다툼이 현대 정치판의 정치공학을 뺨칠 정도였음을 보여준다.

 

책은 만인소 운동의 배경, 영남 유림의 상경 과정, 소두의 임명이나 상소문 마련, 처리 과정, 비용 등을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157명이 연명했다는 사실이 단순한 물리적 숫자가 아니라 만백성의 이름에서 보듯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모든 백성의 뜻하늘의 뜻을 받드는 유교 정치 이념이라는 의미를 들려준다.

 

또한 만인소 운동이 1823년 서얼 9,996명이 참여한 서얼 차별 철폐 상소나 188113,000여 명의 유생들이 청원하는 척사 만인소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인소 운동은 유학적 권위를 빌려 구체적인 정책 변화를 촉구했던 시민운동으로 언로 자체가 의미 없는 시기가 되었을 때는 강한 무력운동의 철학적 기반으로 작용했다며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의 뿌리로 지적하는 대목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책이 딱딱하거나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지은이의 유려한 글솜씨에 힘입어 어지간한 사극 드라마를 능가하는 재미가 도드라진다. 그 정점은 우여곡절 끝에 창덕궁 희정당 앞에서 정조에게 1차 상소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우의 목소리가 끝이 나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믐이 얼마 남지 않아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희정당 주위를 눌렀지만, 이마저도 진신과 장보들의 긴장감을 가리지는 못했다. …… 촛불 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고요함이 희정당을 감싸고 돌았다. …… 정조는 상소를 듣던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 류이좌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곁눈질로 그 답답한 상황의 이유를 알아보려 했다. …… 눈물이었다. 용안 위로 촛농을 닮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책은 1751, 안음현 살인사건에 이은 조선사의 현장으로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한데 전작이 그랬듯이 단순한 현장답사기를 넘어선 진지한 역사서이다.

 

작가 이상호 소개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정제두의 양명학의 양명우파적 특징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책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민간 소장 기록유산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하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기록된 일기들을 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스토리 테마파크를 기획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을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자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이야기로 보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공저),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공저), 1751, 안음현 살인사건등의 저작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이다.

 

조선시대 일상인들의 삶과 그들이 살았던 다양한 삶의 현장을 현대인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평범한 조선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책 역시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기록의 나라 조선이 남긴 다양한 기록유산을 기반으로 일상적 개인이 살았던 조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복원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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