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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40)]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저자
오쿠노 슈지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8-04-2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이가 죽은 그날, 나도 죽었다!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240)]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 저 | 서영욱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76쪽 | 1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97년 일본 고베에서 14세 소년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죽인 엽기적인 살인사건(일명 ‘사카키바라 사건’)이 일어났다. 프로 저널리스트인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30년 전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을 알게 됐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 소년의 행방과 피해자 유족을 덮친 비극을 세밀하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9년간 피해자의 가족과 사건 관련자들을 수십 차례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밝혀낸 가해자의 행방,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피해 가족들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그 고통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런데 오히려 사건 당시 가해자 소년은 ‘갱생’이라는 미명하에 가벼운 처벌만 받고 사회로 복귀했으며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한 후 변호사로 성공한다. 실화라고 믿기 힘든 이 소설 같은 사건을 혼신의 힘으로 추적해 완성한 충격논픽션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를 통해 작가는 예기치못한 범죄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그 가족원이 사회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겪는 고통과 후유증의 심각성,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사회에 널리 알려 경종을 울린다.

 

 

30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악몽, 히로시 가족의 이야기

 

1997년 일본 고베시에서 한 초등학생이 사체로 발견된다. 이 잔악무도한 사건의 범인에 대해 경찰관계자들은 정신파탄자이거나 사회에서 낙오된 부랑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건의 범인은 자신의 이름을 왜 틀리게 적었냐고 항의하면서 앞으로 계속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범행성명서>를 신문사에 보내는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범인이 잡혔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범인은 놀랍게도 중산층 부모를 둔 14살 중학생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일말의 가책은커녕 살인을 즐기고 있다고 말하는 이 광기의 소년을 조사하다 오쿠노 슈지는 30년 전 1969년에 같은 반 친구에게 살해당한 한 고등학생의 사건에 주목하게 된다.

 

이 살해당한 고등학생의 이름이 바로 가가미 히로시다. 히로시는 화창한 봄날 학교 근처 진달래밭에서 평소 장난치며 지내온 같은 반 A군에게 총 47군데를 칼로 난자당한 채 이유 없는 죽임을 당한다. 소년 A는 키가 150cm에 불과한 왜소한 체격에 콤플렉스가 있었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훤칠한 키에 늘 친구들에 둘러싸여있는 히로시와 어울리고 싶어했다. 그런데 왜 소년 A는 히로시를 죽인 걸까? 사건 후 A가 작성한 성격 및 행동 상태 조사표에 따르면 A는 아버지의 가혹한 가정교육 탓에 때때로 사디즘적인 격한 감정이나 동물적인 반응을 보이고 흥분하면 앞뒤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했고 결국 요코하마 가정재판소는 소년 A를 ‘정신분열증 기질의 정신장애자’로 판정했다. 이 끔찍한 광기를 품은 소년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거짓말을 반복했고 일말의 가책이나 반성을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장래를 위해 교육적인 조치로 교정해야한다’는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으로 송치되고 3년 후 출소한 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작가는 30년 전의 사건을 추적해 그 소년이 변호사로 성공했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저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사건이 피해자의 가족에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었다. 30년 넘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남겨진 가족들은 그 사건을 잊지 못하고, 아마 평생 동안 떨치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법만 있고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법은 없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자녀가 목숨을 잃었다거나, 붙잡힌 범인에 대해 사법부가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고 느낀다면 피해자 가족은 사회 전체를 불신할 수도 있다. 급기야 정부나 제도 자체에 불만을 갖다가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변하거나 이민을 결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가 선수시절 받은 훈장을 정부에 반납하고 이민을 간 경우가 대표적이다.

 

범행 당시 15세였던 히로시 사건의 A는 당시 일본 소년법 조항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조항으로 인해 A는 살인자라는 범죄 경력은 소년원을 출소한 시점부터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다. 소년원 시절부터 ‘육법전서’를 보며 새 인생을 준비했던 A는 소년원을 나온 뒤 최고 학부에 들어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변호사가 되는데 성공한다. 살해당한 가가미 히로시의 인생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지만 살인자 A는 새 출발해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살 소년의 ‘광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도 30년 전의 슬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수십 년이 흘러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받아주겠다는 피해자 엄마의 말에 중년이 된 A가 “뭣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하는 장면(본문 P.247 <소년 A의 잔인한 변신>중)에서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누구의 인권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세부 조항에서 일본과 한국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소년법 적용 연령이 10세 이상으로까지 하향 조정되고, 국선보조인제도가 도입되는 등 2008년 소년법 개정의 방향이 소년범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 가가미 히로시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점점 잔악무도해져가는 한국 청소년 범죄 상황을 생각할 때 과연 소년범의 인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고 그들을 교화하는 데에만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피해자의 인권, 피해 가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현 사회적·법적 시스템 속에서 피해 가족의 원통함은 대체 어디서 풀어야 할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적절히 처벌하지 않고 교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예비된 성인 범죄자로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고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세상이 이해하게 되기를

: 세상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신음하는 피해자 가족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오랜 시간 추적하면서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자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에 경악했다. 특히 놀랐던 건 모녀 모두 가해자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말한 점이다. 그들이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았던 것은 본래의 가족으로 되돌아가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느라 가해자를 원망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다시 한 번 그 사건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통감했다.

 

유족은 지금도 삶의 기로에 서 있다. 범죄 피해자가 입은 충격은 삼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위로받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아무 이유 없이 범죄에 휘말려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은 결코 히로시 집안만이 아니다. 지금도 날마다 범죄 피해자가 생기고 있고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남몰래 견뎌내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세상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피해가족들의 아픔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지속적인 배려와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작가 오쿠노 슈지(奧野修司) 소개

 

1948년 오사카 출생. 리츠메이칸(立命學) 대학 졸업. 1978년부터 남미에서 일본계 이민자를 취재했으며 귀국 후에는 프리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뒤틀린 인연, 뒤바뀐 아기사건 그 17년』 『은폐,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보공개 전기(傳記)』 『황태자 탄생』 등이 있다. 2006년 『나츠코 오키나와 밀무역의 여왕』으로 고단샤 논픽션 상과 오오야 소이치(大宅壯一) 논픽션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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