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60)] 사랑의 도피
베른하르트 슐링크 저 | 김재혁 역 | 시공사 | 430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슈피겔>지 57주 연속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만한 도서’에 선정되는 등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주말』과 『귀향』 같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장편들이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역사와 인간의 죄의식, 사랑, 윤리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었던 『책 읽어주는 남자』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면 단편집 『사랑의 도피』는 보다 일상적인 사랑과 번민을 주제로,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친근하고 문학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 있는 그림 속 소녀와 사랑에 빠진 소년, 유대인 여자 친구를 위해 최고의 희생을 결심한 독일인 남자 친구, 세 곳의 집, 세 명의 아내와 동시에 가정을 꾸리게 된 어느 중년남자의 기막힌 사연,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임종까지 지켰지만 결국 아내의 죽음 뒤에 알게 된 그녀의 ‘다른 남자’를 통해 비로소 아내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된 남편의 이야기 등 작품집에 수록된 일곱 이야기 속 사람들은 모두 사랑 속으로, 혹은 사랑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사랑하는 이 곁에서 잠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허무함, 피할 길 없는 죄의식…… 무력감, 분노 혹은 용서와 이해,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책 읽어주는 남자』의 한나와 미하엘 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원죄이다. 가능하다면 그 상처가 이미 오래전에 아물어 고통조차 무뎌지기 전에 다독여주고 싶은, 하지만 그 시도들은 대개 실패로 끝나기 마련인.
슐링크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정상적인 삶 속에 감춰져 있는 삶의 허구성,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원초적 감정들을 [타임]지의 평에 따르자면 ‘매혹적이고 시적인, 그러나 지적이고 책임의식도 갖춘’ 손길로 복원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소개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1944년 7월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75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해 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본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1992년부터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정년퇴임했다. 1993년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1988년부터 2006년까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재판소 판사를 겸임했다.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7년 추리소설 『젤프의 법』을 발표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젤프의 살인』로 독일 추리문학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대표작이자 영화 <더 리더>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책 읽어주는 남자』는 출간 즉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독일 문학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뿐 아니라 독일의 한스 팔라다 상과 디 벨트 문학상, 이탈리아의 그린차네 카부르 상, 프랑스의 로르 바타이옹 상, 일본의 마이니치신문 특별문화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케 상 등 각국의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문학적 성취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48개국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여러 대학의 독일 문학과 홀로코스트 문학 과정에 커리큘럼으로 포함되어 있다. 2001년에는 그 문화적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다른 작품으로 장편 『귀향』 『주말』이 있고, 단편집 『사랑의 도피』 『여름 거짓말』이 있다. 현재 베를린과 뉴욕을 오가며 영화 시나리오와 차기 소설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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