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13)] 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저 | 강수정 역 | 반비 | 388쪽 | 16,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현대 사회에서 도시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발전이 가장 집약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자 그 폐해와 인간 소외 또한 가장 적나라하게 간직한 공간이다. 고속 성장을 기록하던 지난 시절 우리의 ‘달동네’가 그랬듯, 현란한 광고와 마천루의 뒤에는 발전의 소용돌이에 하릴없이 휘둘릴 뿐, 그 열매는 손에 쥘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뭄바이. 뭄바이의 화려한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공항과 특급 호텔들의 그림자 뒤에는 그 성장과 발전에서 비껴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동네 꼬마들도 “장미 꽃밭 사이의 똥 같은 존재”라고 자조하는 이 거대한 빈민촌 중의 한 마을 ‘안나와디’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 캐서린 부가 뛰어들었다.
여러 슬럼을 관찰한 끝에 저자는 안나와디를 집중 취재(immersion journalism)하기로 결심하고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약 4년 간 안나와디에 직접 머물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여러 인물들을 수십 차례 인터뷰하고 3000건이 넘는 공공 기록을 조사하며 도시 슬럼가의 비통한 현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의 기자로서 20년 간 갈고닦은 엄격한 취재 원칙과 타고난 문학적 감성을 결합해 안나와디 사람들의 삶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직조해냈다.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비참한 삶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과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른바 ‘팩트’라는 점은 감동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긴다.
저자는 안나와디 빈민촌에서 가난과 불행의 인간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세계화가 양산한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지 드러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작품의 무대인 뭄바이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만큼 발전하고 그만큼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어느 도시이든 또 다른 뭄바이가 될 수 있다. 19세기에 찰스 디킨스가 묘사했고 20세기에 조지 오웰이 묘사했듯, 21세기에 캐서린 부는 뭄바이라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 도시에 내재한 빈곤과 불평등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가장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외다리의 분신자살’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중심으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이야기를 전개한다. 외다리 파티마가 옆집과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분신 사건을 일으킨다. 이 사건의 가해자로 옆집 소년 압둘과 그 아버지, 누나가 지목돼 감옥에 갇히고, 가족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머니 제루니사의 힘겨운 투쟁이 시작된다. 부패한 경찰과 의사들은 이 비통한 사건에서 뒷돈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누명을 벗겨줄 재판은 기약 없이 미루어지기만 한다. 이 사건으로 부지런히 돈을 모아 빈민촌을 벗어나려던 압둘 가족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 난다.
저자는 탁월한 문학적 구성과 문장으로 이 모든 인물과 사건과 배경을 촘촘히 엮어낸다. 명확한 사실관계들을 모아 ‘슬럼가의 쓰레기 호수가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한 편의 잘 쓰인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글쓰기는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다.
이 책은 슬럼가에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책에서 아이들은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관찰자이다. 오랜 취재에서 어린이들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임을 발견한 저자는 아이들의 시선과 목격담,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실제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들은 모두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아이들은 관찰자인 동시에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아이들을 통해 사건을 취재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삶과 꿈 또한 주요한 취재 대상으로 삼았다. 돈이 없어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동에 내몰리고 생계유지와 부양의 책임을 떠맡는 아이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꿈을 좇으면서 끝내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자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이는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냉정한 고찰과 함께,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작가 캐서린 부 소개
<워싱턴포스트>를 거쳐 현재 <뉴요커>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기자로 일하는 20여 년 내내, 가난한 공동체를 탐구하며 빈곤 탈출과 기회 분배를 깊이 고민해왔다. 이를 주제로 한 기사들로 맥아더재단의 지니어스 보조금을 받았고, 미국잡지협회상 특집 기사 부문, 퓰리처상 공공 부문 등을 두루 수상했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빈곤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한 4년간의 장기 프로젝트가 맺은 결실로, 엄격한 취재 원칙과 천부적 문장력이 집약된 뛰어난 성과물이다. 21세기의 가장 불평등한 도시로 손꼽히는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을 수년간 밀착 취재하며 인도 경제 성장의 이면을 통렬하게 고발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인도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출간 직후 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됐다. 2012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현대 인도를 다룬 최고의 책이자, 문학적인 문장이 빛나는 논픽션으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캐서린 부는 빈민촌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경제 성장이 약속한 장밋빛 미래의 적나라한 현실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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