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53)]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
코트니 밀러 산토 저 | 정윤희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 423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성년기의 대부분을 보낸 저자가 고조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했다. 작품의 주 무대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향긋한 올리브 숲에 위치한 힐 하우스. 그곳에는 평균연령 66.4세의 여성 5대로 구성된 초고령화 가족이 산다. 최장수 노인 타이틀을 거머쥔 중국 남자가 얼른 죽길 바라며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을 꿈꾸는 112세 ‘안나’, 네 아들의 출생 비밀을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겨온 89세 ‘베츠’, 진통제에 중독되고 사랑에 눈먼 65세 ‘칼리’, 사랑하던 남편에게 여섯 발의 총을 겨눈 42세 ‘뎁’, 오페라 가수를 그만두고 돌연 임신한 채 집으로 돌아온 24세 ‘에린’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작품은 켈러 가(家) 여자들의 장수 비결에 인류의 노화를 멈출 열쇠가 숨어 있다고 굳게 믿는 홀아비 유전학자 ‘하시미 박사’가 힐 하우스에 찾아드는 데서 출발한다. 하시미 박사는 가족들의 혈액을 채취해 DNA를 분석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범인을 취조하듯 온갖 질문을 퍼붓는다. 이에 켈러 가의 최고 어른인 안나, 그리고 베츠는 실험용 쥐가 된 듯한 불쾌감을 감수하며 가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하시미 박사에 맞선다. 인간 생명연장에 대한 사명감을 지닌 하시미 박사와, 비밀은 비밀로 묻어두는 편이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 안나/베츠가 대치하는 상황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독자들의 몰입도를 배가시킨다.
하시미 박사가 켈러 가 여자들의 장수 비결을 밝혀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인류의 염원인 젊음과 영원한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얻게 된다. 이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에 못지않은 이 소설의 독특한 매력이다. 나이 드는 것, 늙는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지닌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힌트들이 숨어 있다.
여러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특히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지닌 인물은 바로 안나이다. 이 책의 원제 ‘올리브나무의 뿌리’가 상징하는 바를 한 가지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 5대의 시작인 안나는 켈러 가의 생물학적/정신적 뿌리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신예답지 않은 내공으로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지혜로운 안나의 입을 통해 작품 곳곳에서 ‘가족’에 대한 의미심장한 생각거리들을 건넨다. 남들보다 거의 두 배나 긴 인생을 산 안나의 경험에 투영된 작가의 주제의식은 책장을 덮고 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새로운 가족소설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른 특정 작품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코트니 밀러 산토는 전통적인 가족소설이 담고 있는 고전적 의미를 드러내는 대신 끝없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만의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여성 5대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대 생활 변화사가 머리에 속속 들어온다. 유전학자가 쓴 논문과 강의록을 통해 ‘나이 듦’의 생명과학적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 호주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안나네 가족이 맨땅에 올리브나무 묘목을 심은 이후, 백여 년 동안 올리브 과수원을 일궈나가는 모습은 한 개인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대대로 장수하는 켈러 가 5대 여성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올리브 숲 바람결에 실려 보낸 비밀들을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풀어낸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은 세상 모든 어머니와 딸들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마법 같은 이야기이다.
작가 코트니 밀러 산토 소개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성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워싱턴앤드리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러시아학을 공부하면서 글쓰기를 배웠고, 졸업 후 한동안 버니지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팩트(fact)를 전달하는 기자보다 픽션(fiction)을 쓰는 작가가 오히려 더 많은 진실을 알려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소설가로 전향했다. 멤피스대학교에서 소설 전공으로 MFA(인문학 석사)를 취득하고 소설과 시를 써왔다. 고조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그녀의 첫 장편소설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은 아마존 브레이크스루 소설상’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다.
현재 가족과 함께 테네시에 살고 있으며, 멤피스대학교에서 창의적 글쓰기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가장 아끼는 물건은 바로 자신을 포함한 집안의 여자 5대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라고 한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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