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84)] 천국보다 낯선
이장욱 저 | 민음사 | 276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대학 동창인 A의 부음을 듣고 K시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정’, ‘김’, ‘최’. 그들이 기억하는 A의 모습은 왜 모두 다른 것일까? 『천국보다 낯선』은 로드 무비의 모티프를 차용해 사건과 상황을 각각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변주하고 반복하는 이장욱 특유의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비스듬히 어긋나 있는 지점의 메타 소설인 동시에, 사랑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사유와 빼어난 문체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열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천국보다 낯선』은 정, 김, 최의 시선이 1장부터 12장까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장이 바뀔 때마다 매번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과 장면이 변주됨으로써 영화 ‘라쇼몽’처럼 서사에 이물감을 덧씌우며, 사람에 따라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다르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며칠 전 A의 반지하 방을 나와서 그들이 모두 제각각 다시 A를 찾아간 밤의 일어난 논산 분기점 3킬로미터 지점에서 목격한 교통사고에 관한 각각의 진술 등과 같이 김의 이야기는 앞서 정이 한 말이 빚어낸 상황 속에서 이해된다. 동시에 아직 말해지지 않았으나 앞으로 최가 할 이야기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내용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수축과 증식을 반복한다.
정에게 A는 아랍어나 희랍어처럼 ‘해독 불가능한 문자 같은 것’이라면, 김에게 A는 모든 면에서 아내인 정과 대비되는 여자로서 ‘여름의 팽창하는 대기’ 같았다. 또 최에게 A는 ‘비어 있어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자 ‘언제나 와전되는 중’인 소문 같은 것이다. A가 만든 영화 <천국보다 낯선> 역시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의 연쇄’인 동시에 ‘공포 영화의 관습을 따르지 않은 탓에 공포 영화인지조차 모호할 지경’인 호러로 읽히기까지 한다. 작품 속에서 마치 실체 없이 계속 미끄러지는 기표로 남아 있는 A는 과연 누구인가? A는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맞는가?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A를 모두 사랑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김, 최, 정,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등장하는 또 하나의 시선 ‘염’까지 소설은 예측하기 어려운 시공의 반전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즈음, 독자들은 현실을 살짝 비튼 충격적인 결말에 매혹된 나머지, 이야기 전체를 다른 시선과 다른 원근법으로 읽으며, 이야기의 결말에서 또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의 기원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가 이장욱 소개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과 소설집 『고백의 제왕』 등을 펴냈다. 단편소설 「곡란」으로 2011년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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