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88)] 시인을 체포하라
로버트 단턴 저 | 김지혜 역 | 문학과지성사 | 264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의 신작 『시인을 체포하라』가 출간됐다. 이번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던 18세기 중엽의 파리 거리 한복판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1749년 봄,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가 거리에 나돌자, 시인을 체포하라는 왕명을 받든 경찰이 행동에 나선다. 은밀하고 대대적인 작전의 결과 대학생과 하급성직자 등 14인이 바스티유로 잡혀 들어간다. 이름 하여 ‘14인 사건’이다. 경찰의 수사 작전은 분명한 질문을 유발했다. 왜 파리 당국은 시를 추적하는 일에 그토록 열을 올렸을까? 이 책은 이 물음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 단서를 추적해가면서 당대의 의사소통망을 복원해낸다.
하지만 ‘14인 사건’이라는 낯선 이름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단턴이 다루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14인 사건’ 자체와 그 의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당대의 세평과 분위기이며 문맹률이 절반인 구어 세계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방식과 그 매체에 관한 연구이다.
로버트 단턴의 대표작 『고양이 대학살』은 프랑스 사회사에 대한 아래에서부터의 미시적 접근을 통해 역사 서술의 방법론적 논쟁을 야기시키며 학계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쉽고 흥미진진한 서사를 통해 대중적으로도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최근 한국에 소개된 『책의 미래』는 구글 도서검색 서비스를 배경으로 디지털 사회에서의 책의 미래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시인을 체포하라』는 두 책에서 드러난 단턴의 관심사가 맞닿는 지점이다. 꽤 오랜 기간, 역사책들이 쉽사리 다루지 않았던 민중의 목소리를 그려내는 동시에 그 주제를 현대사회의 화두인 정보와 의사소통 체계로 확장해 이야기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융·복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문맹률이 절반이던 18세기 중엽에는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았을까? 또한 오늘날의 우리가 그것을, 특히 250년 전의 사람들의 의도와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단턴은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파리 시립역사도서관 등에 소장된 방대한 사료를 조사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청각과 구어의 세계로 진입하는 대담한 시도를 감행한다. 당시에는 노래가 신문의 역할을 했다. 거리에 나돌던 소문과 세평들이 노랫말의 형식을 빌려 전파된 것이다.
단턴은 시와 노래라는 매체를 활용해 사건에 관한 정보와 그에 대한 논평들을 신속하게 전하고 소비하는 사회, 그것이 일종의 여론으로 기능하며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권력관계에 변화를 초래하는 사회, 형식은 낯설지만 기능과 메커니즘에 있어서는 확실히 우리 시대의 정보사회를 연상시키는 의사소통망을 낱낱이 밝혀내 분석한다. 노래와 시를 통해 구어 세계의 의사소통망을 재구성한 것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책의 역사’를 넘어선 ‘매체의 역사’를 시도한 점은 무척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 『시인을 체포하라』에는 단턴의 실험정신이 가득 담겼다. 의사소통망에 관한 연구를 탐정 작업과도 같은 면밀한 조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 또한 그것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하나가 웹사이트(www.hup.harvard.edu/features/darpoe)에서 당대의 노래들 일부를 샹송 가수인 엘렌 들라보의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이 책은 2차원적인 역사책이 아니라 눈으로 읽으면서 귀로도 들을 수 있는 입체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평면적인 사건 서술에 그치는 대신, 저자가 처음 세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단서들을 이리저리 추적해가며 퍼즐 맞추기처럼 책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책 말미에는 연구 과정에서 찾아낸 수많은 문헌들을 보기 좋게 정리해 첨부함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저자의 연구와 해석을 검토하고 평가할 수 있게 했다. 본문의 양을 육박할 정도로 방대한 부록은, 후배 연구자들에게 역사를 연구하는 자세와 방법에 관한 모범을 보여준다.
‘14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는 과한 측면이 있었다. 왕이나 권력자에 대한 조롱과 풍자는 흔한 놀이 중 하나였고 젊은 지식인들의 반항적인 태도 역시 체제를 전복할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경찰은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했을까? 또 검거 작전이 시의 최초 지은이인 ‘궁정인’에 미치지 못한 채 젊은 지식인들을 체포하는 수준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14인 사건’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서술하면서 1740년대 앙시앵 레짐의 사회 분위기와 권력암투를 꼼꼼한 사료 조사와 연구를 통해 충실하고 체계적으로 보여준 역작이다.
왕부터 궁정의 여러 대신들, 고등법원, 대학가의 젊은 지식인들, 시장통의 상인들, 거리의 가객들, 행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의사소통망 안에서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나, 그 과정에서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만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는 점을 강조한 것 역시 흥미롭다. 또 여론의 형성과 역할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프랑스 혁명을 역사의 필연적인 단계로 보는 도식적 설명을 해체하고 역사의 우연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 나아가 역사와 이론의 관계를 대립이나 종속이 아니라 대화의 관계로 설정하는 것 모두 너무나 단턴다운 서술이라 하겠다.
『시인을 체포하라』는 빈틈없는 책의 구성과 체계적인 논증, 그리고 이 책에서 선보인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쉽고도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단턴이 독자들에게 주는 매력적인 종합선물 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 로버트 단턴 소개
1939년 미국 뉴욕 출생. 1954년부터 필립스 아카데미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1년 동안 「뉴욕 타임스」 기자로 근무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수많은 저서와 논문, 왕성한 학회활동과 학술지 편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힌 『고양이 대학살』은 11개국에서 번역되었으며, 특히 1996년에 미국비평가협회상을 받은 『책과 혁명』은 5개국에서 번역되었다. ‘책의 역사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2000년 미국역사학회장에 취임하면서 「초기 정보화 사회」(An Early Information Society)라는 명강연을 하기도 했다. 다른 저서로는 『앙시앵 레짐 시대의 문학적 지하세계』 『조지 워싱턴의 틀니』 『로버트 단턴의 문화사 읽기』『시인을 체포하라』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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