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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17)] 바다와 독약



바다와 독약

저자
엔도오 슈우사꾸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2-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전쟁의 기억, 일본인의 죄의식 부재를 드러낸 문제작일본을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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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417)] 바다와 독약

엔도오 슈우사꾸 저 | 박유미 역 | 창비 | 204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일본을 대표하는 엔도오 슈우사꾸의 장편소설 『바다와 독약』이 창비세계문학으로 선보인다. 엔도오 슈우사꾸는 전후 일본인에게 드러나는 죄의식의 부재 문제를 일관되게 작품화한 가톨릭 작가로서 초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에서는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 포로에게 행해진 생체해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생체해부라는 선정적인 사건을 리얼하게 묘사하면서도 이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죄의식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있다.

 

소설은 전쟁이 끝나고 10여년이 흘러 한창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새로운 주택지로 이사한 ‘나’가 기흉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간 의사 스구로는 미군 포로 생체해부 실험에 가담했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같은 동네의 주유소 주인은 중국에서 저지른 학살을 떠벌리고 다니고, 헌병이었다는 양복점 주인은 전쟁 때 많은 살인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과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과거에 저지른 죄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전후의 평온한 일상생활을 보여준 뒤 소설은 생체해부 실험이 행해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암울함과 불안감이 지배하는 2차대전 말기, 오랜 전쟁으로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사람들의 삶과 마음은 나날이 피폐해져간다. 밤마다 계속되는 공습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이지만 대학병원에서는 차기 의학부장 자리를 두고 권력다툼이 한창이다. 미군에 대한 생체해부 역시 이러한 권력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진다.

 

작가는 스구로, 토다, 우에다라는 세 인물이 어떻게 생체해부에 가담하게 되는지를 중심으로 그들 내면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의학도인 스구로는 양심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생체해부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실험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소심한 스구로는 불참을 선택하지 못한다. 이런 그의 태도에는 체념과 무기력이 자리하고 있다. 깨진 파편과 같이 미약한 인간은 넘실대며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에 맞설 수 없으며 검은 바다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체념은 동료인 토다와 간호사인 우에다에게도 공통적으로 보인다. 토다는 어릴 때부터 영악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을 속인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때 사촌 누이와 간통을 저지른 적이 있다. 또 대학생 때 자신을 돌봐주던 하녀를 임신시켰다가 직접 소파수술을 한 뒤 집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을 생체해부 실험으로 내몰며 자신의 마비된 양심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간호사인 우에다는 결혼 후 아기를 사산한 뒤 부정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인물로 별다른 가책 없이 생체해부 실험을 돕게 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력감이나 피로감을 느끼는데 오랫동안 이어져온 비인간적인 전쟁이 ‘독약’처럼 퍼져 양심과 정신을 마비시켜버렸음을 말해준다. 작가는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이나 윤리, 합리적 사고가 얼마나 힘없이 무너지고 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 엔도 슈사쿠 소개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집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 발표한 『하얀 사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고 일본의 대표적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엔도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유럽의 〈신의 세계〉를 경험한 〈나〉가 결국 동양의 〈신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자전적 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했는데, 그 6개월 뒤에 『백색인白い人』을 발했다. 또 6개월 뒤에 『황색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백색인으로 1955년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아덴까지』의 작품 의식을 기반으로 한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 역시 엔도가 유럽과 동양의 종교문화의 차이로부터 겪은 방황, 갈등의 요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또한 〈백색인〉과 〈황색인〉은 인간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악과 선의 대립만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신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 서구인 〈백색인의 세계〉에서도 그 신을 믿는 인간과, 그 신을 부정하는 인간이 상호 존재하고 있으며, 이 둘 역시도 항시 대립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설혹 신을 부정하며 신과 격렬히 투쟁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투쟁을 통해서 이르게 되는 어떤 섭리에 대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작품은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66년에 『침묵』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종교소설과 통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예수의 생애』,『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등 다수가 있으며 1996년 9월 29일 서거. 東京 府中市 가톨릭 묘지에 잠들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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