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418)] 자저실기 : 글쓰기 병에 걸린 어느 선비의 일상
심노숭 저 | 안대회·김보성 등역 | 휴머니스트 | 764쪽 | 3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자저실기-글쓰기 병에 걸린 어느 선비의 일상』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을 살았던 효전(孝田) 심노숭의 자서전인 『자저실기(自著實紀)』를 완역한 책이다.
심노숭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듯이 일상적으로 글쓰기에 집착하며 수많은 문집을 남겼다. 그 문학적 수준이 높고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책들이 번역돼 소개되지 못했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고풍스러운 시문보다 소품문 창작에 큰 재능을 보였던 심노숭은 자신의 일상과 시대의 이야기뿐 아니라 과거의 풍속 등을 세밀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심노숭의 문집 『효전산고(孝田散稿)』 중 33책과 44책에 수록되어 있는 『자저실기』는 자신의 일상과 사건 사고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폭로한 문제작으로 당대 일상 문학의 정수를 담았다. 이 책은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던 심노숭의 기록벽 즉, ‘글짓기 병’의 산물로, 산뜻하고 해학 넘치는 그의 산문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가 들려주지 못한 당시 지배층 사회 이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심노숭은 인생에서 특별한 일을 겪을 때마다 반드시 붓을 들어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지금까지 읽혀온 다른 문집들과 같은 후대의 평가를 의식한 자기검열을 찾아볼 수 없다. 심노숭은 자신의 일상생활 속 치부와 솔직한 감정 그대로를 오롯이 글로 옮겼다. 정욕이 남보다 지나쳐 패가망신할 뻔한 소싯적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고백하는가 하면, 심한 결벽증으로 어른들에게 매번 꾸짖음을 당했다고 소회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감각이라고 여기며, 시시콜콜한 인생사와 버릇, 성질까지도 적나라하게 고백한 것이다. 점잔 빼며 가식을 부리는 글쓰기를 넘어,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려고 하는 묘사의 진실성은 바로 『자저실기』는 를 관통하는 작가적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자저실기』는 는 용모, 성격과 기질, 예술, ‘문견내편’과 ‘문견외편’으로 구성돼 있다. 자신의 용모와 성격을 능력으로 고백한 다음, ‘내편’에서는 한평생 목도한 현실 정치와 사회상을 묘사했다. 또 ‘외편’에서는 선배들과 동시대 사대부들의 일화와 사건을 서술했다. 『자저실기-글쓰기 병에 걸린 어느 선비의 일상』에서는 전체 내용을 글의 성격에 따라 4부로 나누어 재구성함으로써 과거 일상의 기록이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했다. 원문을 함께 수록해 연구자들의 편의를 도왔다.
심노숭은 노론 시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늘 지방관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정치 현황에 대한 높은 안목으로 정국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사회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세계관을 오롯이 옮겨놓은 『자저실기-글쓰기 병에 걸린 어느 선비의 일상』은 뚜렷한 자기 주관으로 조선 후기 지배층 사회의 심층부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흔히 영·정조 시대는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고 미화되지만 정치적으로는 분쟁이 격화되고 상대 당파를 대거 살육하는 육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때였다. 정조 초기부터 언론과 관련한 벼슬에 있으면서 반대편 정객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던 아버지 심낙수와 마찬가지로, 심노숭 역시 시파의 입장에서 당대 정치 상황을 현장감 있게 묘사했다. 객관적인 시각을 내세우기보다 직접 목도한 한 장면 한 장면을 상세히 옮기는 방식을 취했다.
『자저실기-글쓰기 병에 걸린 어느 선비의 일상』은 정적의 추악함에 대한 폭로를 넘어 자신이 목도한 양반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길거리에 굶주려 쓰러진 지방 지식인의 참상, 근친상관과 화간 등 성적으로 문란한 명문가 관료들의 이야기,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양반의 황폐한 인간상 등을 여과 없이 실었다.
『자저실기』는 물론 자신의 선배들로부터 배웠으면 하는 사연은 물론, 마음에 간직하면 좋을 미담과 문향 가득한 서정적인 사연이 수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나 기개와 고집으로 유명한 박세당과 박태보 부자, 호방한 기개를 지닌 정승 조현명에 관한 사연 등 각종 야사들도 담고 있다. 이처럼 어느 역사적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당대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의 지식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사료가 될 것이다.
작가 심노숭 소개
1762~1837. 정조·순조 연간의 학자이자 문인이다. 자는 태등(泰登), 호는 몽산거사(夢山居士) 또는 효전(孝田)이다. 정조 때에 강경한 정치적 입장을 견지했던 심낙수(沈樂洙, 1739~1799)가 부친이다. 심노숭은 1790년 진사가 되었으나 1801년부터 6년간 경상남도 기장에 유배되는 등 정치적 격랑 속에 불우한 장년기를 보냈다. 그는 젊은 시절 친구인 김조순?김려 등과 함께 명말청초의 패관 소품에 매료되어 창작에 열중했다. 그의 소품문은 신변잡사를 기록하고 풍속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문집 『효전산고(孝田散稿)』는 방대한 분량으로 38책에 달하며, 정치를 논한 편저로 『정변록(定辨錄)』을, 역대 야사를 필사한 총서 『대동패림(大東稗林)』을 남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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