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452)]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저 | 최인자 역 | 문학동네 | 476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살아 있는 미국문학의 대모,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가 새로운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1987년 출간 당시 퓰리처상, 미국도서상, 로버트 F. 케네디 상 등 미국소설에 주어지는 거의 모든 명예를 얻은 『빌러비드』는 21세기에 들어서며 20세기 미국문학의 정전으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뉴욕 타임스〉에서 작가, 비평가, 편집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1980년 이후 최고의 미국소설’ 1위에 선정됐다. 또 2008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조사한 ‘하버드대 학생이 가장 많이 구입한 책’에서는 2위에 꼽혔다.
미국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흑인문제를 노예제에서부터 현대의 인종차별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룬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에서는 특히 ‘여성 노예’에 초점을 맞추었다.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들의 참혹한 역사를 재조명하는 한편 박탈당한 모성애를 되찾은 도망노예의 과격하고 뒤틀린 사랑과 그로 인한 자기 파괴를 이야기한다.
1856년 1월, 켄터키 주의 한 여성 노예가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로 도망쳤다. 우여곡절 끝에 친척의 집에 몸을 숨겼지만 뒤따라온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의 추격에 끝내 붙잡힐 위기에 처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한 후, 두 살배기 딸의 목을 베었다.
『빌러비드』의 부분적인 줄거리이기도 한 이 실제 사건은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방증하는 사례로 노예제 폐지 운동의 역사에 남은 실화다. 토니 모리슨은 이를 『빌러비드』의 모티프로 차용하면서 어머니가 영아를 살해하게까지 한 노예 경험을 독자의 피부에 와 닿게 묘사한다.
사건 이후 십팔 년이 지나고, 제 손으로 딸을 죽인 여인 세서가 사는 124번지는 죽은 아기의 원혼으로 가득차 있다. 과거는 최대한 덮어둔 채 세서는 유령의 장난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의 육신을 입은 죽은 아기 ‘빌러비드’가 돌아온다. 빌러비드는 세서에게 과거를 묻고, 이야기해달라고 조르고, 상기시킨다. 세서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빌러비드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과거에서 벗어난다. 너무 부어서 감각이 없는 발을 주물러 살려낼 때처럼 아프지만 차마 기억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과거를 ‘재기억’함으로써 그 상흔을 치유하는 것이다.
『빌러비드』는 소설 전체가 여러 인물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히지도 않는 과거는 그들의 내면을 파편화시켰고 파편화된 내면은 분절적인 이미지와 그 근처를 맴돌며 반복되는 말과 어구로 나타난다. 인물들이 용기를 내어 조금씩 더 꺼내놓는 과거의 기억은 되풀이되고 확장되면서 하나의 퍼즐을 완성시킨다.
『빌러비드』는 『재즈』 『파라다이스』와 함께 토니 모리슨 삼부작에 속한다. 시리즈의 이름은 지어지지 않았지만 세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는 각각 자식, 배우자, 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다. 노예제라는 비정상적인 제도하에서 모성애를 박탈당했던 세서는 자유의 몸이 되자 전보다 더 자식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과격하고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나 결국 그녀가 사랑한 대상과 그녀 자신을 파괴한다.
타인을 향한 지나친 사랑은 세서와 덴버, 빌러비드, 세 여자의 독백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서로를 ‘내 거’라고 주장하면서 세 사람은 급격히 자신의 모습과 정체성을 잃어간다. 그렇게 서로를 잠식해가서 모두가 자멸할 위기에 놓였을 때 덴버는 “네 몸부터 잘 챙겨, 덴버”라는 어릴 적 친구의 말을 듣고 갇혀 있던 세상 밖으로 나가 흑인 공동체에 편입되고 공동체의 도움으로 빌러비드는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세서가 자신을 되찾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폴 디의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라는 말이다. 제목의 ‘빌러비드’가 ‘사랑하는’이 아니라 ‘사랑받는’을 의미하는 수동태로 쓰인 것 또한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 토니 모리슨 소개
1993년 미국 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전 세계인의 이목을 흑인 문학에 집중시킨 작가이자, 타임지 선정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명' 중 하나로 꼽히는 작가로, 그녀는 작품속에서 흑인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소재를 정교한 문체와 서정적인 어구들로 아름답게 구현하여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정체성 회복에 많은 관심을 두어, 비난의 목소리를 담기 보다는 미국 흑인들의 뼈아픈, 그리고 잊혀진 역사를 작품의 틀로 삼고 이를 복원하고자 한다. 한 곡의 재즈음악을 듣는 듯한 유창한 서술,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흑인들의 깊은 절망과 한숨이 촘촘히 박아놓은 토니 모리슨의 언어 속에는 그녀 한 사람이 아닌,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1931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인 로레인에서 태어난 토니 모리슨은 미국 북부에서 자랐지만 유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남부적 전통을 지난 가계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백인을 증오하는 조선소 용접공이었고 어머니는 인종 차별과 그 역차별까지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토니 모리슨은 인종 차별은 물론이고 미국 사회의 다양하고 극심한 차별이 없어지는 날이 올 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컸다. 교육적이고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라던 어린 모리슨은 인디언 태생의 발레리나 마리아 톨치프를 우상으로 여겼다. 1953년 흑인을 위해 설립된 하워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코넬 대학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대학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를 연구했다. 시점 교차와 다중 화법, 현실과 비현실의 넘나듦, 전설과 이야기 등으로 특징되는 토니 모리슨의 작품 세계가 두 거장 소설가로부터 일정하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같은 작품이나 윌리엄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 같은 작품은 토니 모리슨 작품의 양대 축인 ‘여성’과 ‘인종’이라는 강렬한 소재의 원천이 된다.
코넬 대를 졸업 후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65년부터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텍사스 서던 대학교에 이어 하워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단편들을 발표했다. 백인 중심주의 문화와 그 이야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글쓰기를 한 그녀는, 특유의 복합적인 내러티브와 다중 화자(혹은 다층 시점) 방식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찾아내기 위한 흑인 소설가의 강렬한 자의식의 무기를 획득하였다.
우울증과 고립에 대한 자신의 치료법을 기술한 『가장 파란 눈』을 데뷔작으로 주목받았고, 모리슨의 이름이 점차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 출간한 『소중한 사람들』로 퓰리처 상을,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06년까지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F. 고힌 기금교수로 있었다. 이후 루브르 박물관 강의를 하였고, 2008년 프린스턴 대학으로 돌아와 '이방인의 집'이라는 세미나를 이끌고 있다.
『가장 파란 눈』은 인종적인 증오심, 역사적 기억, 현란한 언어 구사에 이르기까지 이후 토니 모리슨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어 모리슨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평을 받는다.
『소중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미국 언론 최고의 권위인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 한 여인이 자신의 딸이 노예가 되지 않도록 살해한 눈물겨운 얘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정열적이고도 현란한 언어와 서정적인 감동의 힘으로 구성, 경험에서 나온 진실과 비전을 섬세하게 교직 하는데 성공하였다. 환상과 암시적인 시적 문체를 사용하고 신화를 풍부하게 짜 넣은 그녀의 작품은 힘이 있고 구성이 치밀하다.
또한 그녀는 작가이기 전에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운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될 때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작가로서의 책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직접 체험한 감성을 바탕으로 동화책을 쓰고자 하였으며, 그 꿈을 아들인 슬레이드 모리슨과 함께 동화책을 쓰며 실현시켰다.
저서로는 『가장 푸른 눈』 『소중한 사람들(빌러브드)』 『술라』 『재즈』 『솔로몬의 노래』 『네모 상자 속의 아이들』 『파라다이스』 『얄미운 사람들에 관한 책』 『누가 승자일까요?』 『타르 베이비』 『A Mercy』『빌러비드』 등 다수가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읍시다 (454)]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0) | 2014.03.31 |
---|---|
[책을 읽읍시다 (453)] 언제나 일요일처럼 (0) | 2014.03.28 |
[책을 읽읍시다 (451)] 리스본행 야간열차(전 2권) (0) | 2014.03.26 |
[책을 읽읍시다 (450)] 젤롯 (0) | 2014.03.25 |
[책을 읽읍시다 (449)]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0) | 201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