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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76)] 이런 이야기

[책을 읽읍시다 (476)] 이런 이야기

알레산드로 바리코 저 | 이세욱 역 | 비채 | 472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이런 이야기』는 비아레조 상과 팔라초 알 보스코 상, 그리고 메디시스 상을 수상한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내놓은 여섯 번째 소설이다.

 

‘자동차’로 상징되는 물질문명을 처음으로 맞이한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주인공 울티모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정비소를 세운 아버지 리베로와 일하며 소년 울티모는 길이 선사하는 마법에 매혹된다. 그는 길을 보고 걷고 달리며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길을 하나 짓겠다는 꿈을 품는다.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사고와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쟁, 친구의 배신, 어긋난 사랑을 꿋꿋이 겪어내며 울티모는 인생의 한 굽이 한 굽이를 길의 굽이로 그려 넣는다. 독자를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가장 우아한 방법을 알고 있는 작가 바리코의 탁월한 이야기가 빛나는 순간이다. 군더더기 없는 음악처럼 섬세하게 골라진 작가의 문장들 속에서 모든 것은 특별한 땅이 되고 영원한 그림이 되고 고스란한 자취가 된다.

 

『이런 이야기』를 읽는 방식은 다양하다. 처음에는 ‘역대 최강의 라이더’라 불리는 모토 레이서 발렌티노 로시를 기리는 뜻에서 구상됐다. 이 소설은 길과 인생의 대비, 여정으로서의 삶, 사소한 오해들로 엇갈리는 인연들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바리코 자신이 그간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해온 주제의 총집합이자 작은 세계를 만나는 감동을 선사한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신문에 실린 서평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이 기념비적 작품을 해석했다. 자동차 산업의 초창기와 랠리에 초점을 두는가 하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카포레토 전투를 진지하게 성찰한 매체도 있었다. 더러는 아버지 리베로와 아들 울티모의 삶과 꿈을 뜨겁게 비교했고 울티모와 엘리자베타의 엇갈린 사랑을 중요하게 다룬 서평도 있었다.

 

소설가이자 음악학자, 극작가, 영화감독, 문예창작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알레산드로 바리코.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논하면서 바리코를 뺄 수는 없다. 움베르토 에코나 안드레아 카밀레리 같은 앞선 세대의 작가들만큼이나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걸어가는 길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의 문제에 특별하게 대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들려준다. 메디시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주목받은 첫 소설 『분노의 성』에서 모놀로그 『노베첸토』와 『이런 이야기』를 거쳐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바리코는 매번 특이하고 참신한 문학적 실험을 시도해왔다.

 

대가로 자리 잡은 지금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새로운 방식을 쉬지 않고 고민하고 선보이는 작가 바리코는 그러나 ‘느린 사람’을 자처한다. “서른 살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마흔 살에 결혼했으며 마흔한 살에 첫 아들을 얻었다. 열네 살 때에는 열 살짜리 소년이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그의 새로운 길은 역설적이게도 느림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바리코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박한 기쁨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그 기쁨을 가장 먼저 고려해 스토리 라인을 직조하는 작가이다.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듯 다양한 목소리를 결합해 풍부한 울림을 구축하는 작가 바리코. ‘들려준다’는 이야기의 본질에 집중함으로서 바리코는 인류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음악성을 일깨운 것은 아닐까.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 소개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음악학자, 극작가, 영화감독, 문예창작교수. 1958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아도르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음악원을 다녀 피아노 분야의 학위도 받았다. 몇 해 동안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서 음악평론가로, 〈라 스탐파〉에서 문화시평가로 활동했으며 철학적 사유와 음악에 대한 식견을 결합한 음악 에세이를 발표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991년 출간한 첫 소설 『분노의 성』이 캄피엘로상 결선에 오르면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이어 메디시스 외국문학상을 받으면서 앞서 수상한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등의 계보를 잇는, 프랑스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세계 작가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에 몰아닥친 동결의 찬 기운 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단순한 기쁨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가 드물던 당시 문학계에 나타난 바리코의 소설은 바로크적이면서도 생기 넘치고,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작은 은하와도 같았다.

 

1993년 두 번째 소설 『오케아노스 바다』로 비아레조 상과 팔라초 알 보스코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컬트 작가’가 된다. 같은 해 TV에서 음악 프로그램과 문학 프로그램을 맡아 눈 밝은 길잡이로도 나섰는데, 방송이 나간 다음날이면 수천, 수만의 독자들이 그가 소개한 책을 구하려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베를루스코니 집권 후 방송계를 떠나기로 결심한 바리코는 1996년 세 번째 소설 『비단』을 출간, 극장에 청중을 모아놓고 작품 전체를 낭송하는 이채로운 행사를 벌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비단』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99년 발표한 네 번째 소설 『시티』역시 혁신을 추구하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야기들이 동네가 되고 인물들이 거리가 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발상과 독자를 전개에 참여시키는 서사도 참신하지만, 작가가 텍스트를 낭송하는 ‘시티 리딩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그 결과를 책에 담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5년, 바리코는 여섯 번째 소설 『이런 이야기』를 발표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포함한 전유럽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역대 최강의 라이더’라 불리는 이탈리아 레이서 발렌티노 로시를 기리는 뜻에서 구상한 것이지만, 자동차 경주와 길, 서킷,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비로운 계기, 우정과 사랑, 꿈의 실현 등과 같은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걸작이다. 그 후로도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의 테마를 다룬 소설 『엠마오』(2009), 독창적인 발상과 서사 기법을 보여주는 소설 『미스터 귄』(2011)과 『새벽에 세 번』(2012)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바리코는 연극과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94년 발표한 모노드라마 ‘노베첸토’(비채 근간)는 연극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1998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영화화되었고 한국에서도 독특한 형태의 음악극으로 만들어져 공연되었다. 1997년에는 재즈 연주를 닮은 연극 〈토템: 읽기, 소리, 수업〉을 무대에 올렸으며 2008년에는 시나리오 집필은 물론 감독까지 맡은 영화 〈스물한 번째 강의〉를 발표했다.

 

문예 창작 교육 분야에도 남다른 관심과 열의를 쏟고 있는 그는 1994년 문우들과 함께 ‘홀든 학교’라는 문예창작학교를 창설, 20년 동안 젊은이들에게 서사 기법을 가르치고 있다. 또 축구 애호가이기도 해서 이탈리아 작가 축구팀 ‘오스발도 소리아노 축구 클럽’을 창설, 등번호 10번을 달고 미드필더로도 활약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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