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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98)] 군주론



군주론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저) 지음
출판사
리더스하우스 | 2014-06-1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마키아벨리의 빛나는 문장과 철학을 이미지로 읽는다! 정치 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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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498)] 군주론

마키아벨리 저 | 박덕건 역 | 리더스하우스 | 72쪽 | 9,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정치 철학의 고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간결한 문장과 이미지로 옮긴 만화 작품이다. 원작의 의미와 은유를 충실히 살리면서 일반인들 혹은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 작품은 작가 클레스터의 철저한 고증과 열정 그리고 뛰어난 상상력의 결과물로 16세기 초 마키야벨리가 살았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모습과 분위기를 이미지로 재현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쉽게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어려울 수도 있는 마키야벨리의 원작을 작가 클레스터의 도움으로 편하게 읽어가다, 어느 순간 마키아벨리의 폐부를 지르는 듯한 빛나는 문장과 클레스터의 그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룰 때 느끼는 공감은 원전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감동이다.


1513년 마키아벨리가 탈고했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5년 뒤인 1532년 출간된 국주론은 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정치적 또 학문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작품이다. 당시에는 물론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올 만큼 이 작품은 기존의 상식과 통념, 종교적 교리와 도덕적 윤리 규범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숨겨진 의도’에 대한 해석을 두고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허나 그가 당시 가톨릭 세계관의 윤리에서 벗어나 인간본성과 인간관계의 실체적 모습을 파악하고 이해하려 하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통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권력이며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지키기 위해선 종교나 도덕의 윤리 규범에 구애됨 없이 어떠한 모략을 사용해도 좋다”고 주장하는 단순한 현실주의적 전략가일 뿐인지 아니며 민중의 권력을 중요시한 민주주의의 선구자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다만 군주론을 통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그 구절구절들이 너무나도 현실의 실체적 진실에 가깝고 설득력이 있어 독자로 하여금 쓴 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누구나 한번은 이 작품을 직접 읽고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나가는 현실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허나 군주론은 현대인들의 이해가 부족한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이 배경이라는 점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의 중의적 표현으로 일반인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 재미있고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기획한 만화판 군주론의 가치가 있다.


그리 길지 않은 26개의 장들로 구성된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는 새로이 권력을 잡게 된 이름 없는 군주에게 자신의 신민들을 성공적으로 통치하는 방법에 대해 시니컬하나 실질적인 충고와 조언을 한다. 마키아벨리는 각기 다른 형태의 군주국들의 각기 다른 통치 스타일의 미세한 차이들을 이야기하고, 군사 개입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군주는 ‘사랑의 대상이 되는 편이 좋은가,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현명한가’ 혹은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 하는가’와 같은 리더십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에 대해 숙고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철학적 판단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고대사와 당대 이탈리아의 정치적 사건들 속에서 사례들을 인용하고 있다.


만화로 개작하면서 클레스터는 마키아벨리의 원래 문장과 함께 그 문장의 의미를 추상화한 흑백 톤의 만화 스타일을 사용했다. 그는 각장에서 전달하는 충고와 지혜들을 함께 섭렵해 나가는 캐릭터로 마키아벨리와 어린 군주를 등장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클레스터는 자신의 작품을 원 텍스트의 단순한 이미지화가 아닌 원작의 의미를 설명해내는, 자신의 창의적인 시각적 메타포로 승화시켰다.


때론 자신의 케릭터들이 마키아벨리의 옛스러운 문장과 유머러스하게 교감하는 대사를 선보이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클레스터의 그림은 마키아벨리의 글에서 드러나는 냉소적인 톤을 사실적으로 포착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독자의 독서 경험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만화적 기법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겠다.


결코 단순화의 과정이 독자들을 기만하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원작이 제공하는 재료에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그의 그림 스타일은 유쾌하고 유머가 넘치며 단순하지 않고 중의적이다.


이 작품이 원작의 메시지와 스타일을 충실히 전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각화하는데 성공했다 해도 일부에서는 원 텍스트를 상당부분 축약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원작의 26개 모든 장을 담아내고 있으나 각각의 장은 핵심 주제를 담아내도록 편집됐다. 분명 원작에 포함되어 있는 디테일은 빠져있다 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원작의 정수는 그대로 담겨있다.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소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자, 음악가, 시인 그리고 희곡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운동이 최고봉에 달했던 15세기 중반, 1469년 5월 3일. 마키아벨리는 ‘유럽의 꽃밭’이라 불린 피렌체에서 법학자인 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와 바르트로메아 데 네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98년 약관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1500년 7월에 처음으로 외교사절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던 그는 3년 뒤에 로마로 파견되어 체사레 보르자의 도움으로 교황에 선출된 율리우스 2세가 무모할 정도의 단호한 행동으로 세력을 직접 확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512년 스페인에 의해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해 메디치 정부를 몰아내려다 실패로 끝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고 투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메디치 가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에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것은 실제 정치 이론을 반영 묘사한 그의 단편 The Prince [군주론]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그의 사후인 1530년대 초반에 인쇄되었는데,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친구들에게 작품을 돌렸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6세기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을 받는 등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책, 군주론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후대에 냉혹한 정치, 술수 그리고 권력 추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위대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며, 군사전략가이자 사상가이며, 저술가이자 문학가였다.


정치가로서의 그의 명성은『군주론』을 통해 형성되었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프랑스의 루이 12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황제, 교황 율리우스 2세,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를 직접 만난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군주가 이탈리아의 내부 분열을 종식시키고 조국의 안정을 찾아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기대를『군주론』이라는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탄생시켰다. 무릇 정치사상이란 그 사상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는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살던 피렌체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 그가『군주론』을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즉 혼란했던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의 질서가 차츰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군소 국가들 간의 대립, 외세의 침략 등 어지러운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이 강력한 군주로 등장해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 피렌체를 구해 줄 것을 염원하는 바람이 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는 담겨 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문예의 토양을 바탕으로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대표적 문학작품인 희곡 『만드라골라』를 통해 부패한 지도층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만드라골라』는 이탈리아 연극 사상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내 영혼보다 조국 피렌체를 더 사랑했다.”고 고백한 그는 관대하고 열정적이며, 정직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였으며, 성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마키아벨리는 1520년 『피렌체사』집필을 시작하여, 1527년 메디치 군주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복원되었으나 6월 21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여러 나라로 분열되고 외세의 지배를 개탄, 강력한 군주 아래 통일되기를 열망하며 『군주론』, 『전술론』, 『로마사론』등의 명저를 남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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