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32)] 밤, 호랑이가 온다
피오나 맥팔레인 저 | 하윤숙 역 | 시공사 | 376쪽 |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제64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소설로 떠오르며 전 세계 출판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밤, 호랑이가 온다』는 호주 출신 작가 피오나 맥팔레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당시 아직 출간 전인 원고 상태였음에도 그 자리에서 20여 개국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그해 도서전의 가장 뜨거운 화제작이었던 이 작품은 노년의 삶과 공포, 기억과 정체성에 관한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심리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아한 문장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장악력을 선보여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을 열광케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스는 70대의 할머니로 경제적으로나 지적으로 충분한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도 시작처럼 특별할 수 있기를 바랄’ 정도의 정신적 여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남편을 갑자기 떠나보내고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 살면서 ‘이 바람이 가망 없는 것’임을 이해할 정도의 냉정함도 갖추었다. 루스가 마지막으로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다면 아직은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일상을 독립적으로 꾸려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비정한 삶은 이런 소박한 자존심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날 밤 거실에서 들리는 호랑이 소리에 잠을 깬 루스는 당연히 호랑이일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자다 깬 듯한 ‘아들의 목소리에서는 잔잔한 피로감이 전해’질 뿐이다. 이튿날 아침, 프리다라는 낯선 여인이 ‘꼭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것처럼’ 루스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을 정부에서 보낸 공공 요양사라고 소개한다.
루스는 자신이 왜 정부의 보호 대상에 올랐는지 의아해하면서도 하루에 잠깐씩 찾아와 집안일을 해주고 자신을 돌봐주는 프리다가 싫지 않다. 사실 ‘누군가의 손길을 느껴본 지 오래’되었던 루스는 오히려 프리다가 늦는 날이면 창밖을 살피며 그녀를 기다린다. 하지만 프리다가 온 후부터 루스는 밤마다 ‘정글 같은 이상한 온실 열기가 후텁지근하게 가득 차는 것’ 같고 호랑이 소리가 들리는 날 역시 잦아지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가 가렵다며 프리다에게 고민을 털어놓던 루스는 자신이 몇 주일째 머리 감는 걸 잊었다는 걸 깨닫고, 거기다 하루에 잠깐씩만 자신을 방문하는 줄 알았던 프리다가 실제로는 자신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는다. 루스는 프리다를 비롯해 ‘온 집 안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가 없다. 밤마다 호랑이 소리를 듣는 자신이 아닌가, 머리 감는 것을 몇 주씩이나 잊는 자신이 아닌가.
객관적인 것처럼 제시되었던 서사가 실제로는 루스의 시점에 훨씬 가깝게 서술됐다는 것을 불현듯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만드는 이런 대담한 서사 기법은 미묘하고도 강도 높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 던져진 루스의 당혹스러움을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치매에 걸린 자신의 두 분 할머니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는 이 소설은 노년의 취약한 삶 속에 도사리는 위험을 그리면서도 노년의 삶 역시 개성과 감정과 자존심을 가진 개인이 자신만의 삶을 펼쳐가는 살아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때로는 섬뜩하고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일깨우고 있다.
작가 피오나 맥팔레인 소개
1978년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나 시드니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글을 쓰기 시작해, 〈뉴요커〉를 비롯한 유명 문학잡지인 『조트로프: 올스토리』 등 여러 매체에 단편을 발표해오다 2013년 말 첫 장편 『밤, 호랑이가 온다』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신인 작가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탁월한 서사 장악력과 유려한 문체로 이미 출간 전부터 전 세계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출간 후에는 호주의 주요문학상 중 하나인 ‘NSW 프리미어’ 작품상과 ‘시드니 모닝헤럴드’가 선정하는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지금도 LA타임스 북리뷰 상, 마일즈 프랭클린 문학상, 스텔라 문학상, 더비 문학상 등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거의 모든 상에 최종후보로 이름이 올라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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