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 저자
- E. T. A. 호프만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2014-12-3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독일 낭만주의 소설은 호프만으로 대표된다. 그의 무시무시한 스토...
[책을 읽읍시다 (622)]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E. T. A. 호프만 저 | 박은경 역 | 문학동네 | 644쪽 | 17,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환상문학의 개척자로 꼽히는 E. T. A. 호프만의 대표작『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이 출간됐다. 이 소설은 허세 가득한 수고양이 무어의 자서전 안에 악장 크라이슬러의 미스터리한 전기를 병치하는 독특하고 현대적인 구성을 통해 지적인 풍자와 아이러니를 펼쳐 보인다. 유럽 문학에서도 가장 예술적 기교가 뛰어나고 유머가 풍부한 소설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기이한 걸작이다.
호프만의 작품은 환상적이고 기괴한 상상력으로 보들레르, 모파상,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고골, 포, 카프카 등 세계적 대문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차이콥스키, 슈만, 바그너, 오펜바흐 등 오페라, 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탁월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E. T. A. 호프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궁금해하는 점 중 하나는, 법조인으로서 직분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그토록 중요한 작품들을 그렇게 많이 창작할 수 있었는지다. 그는 법조계 집안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으며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잠시 관직을 잃었던 시기를 제외하면 죽을 때까지 법조인으로 일했다. 낮에는 관직에 근무하고 밤에는 창작에 몰두하며 일생 동안 예술과 직업, 환상과 현실 사이의 이중생활을 영위한 것이다.
가풍을 이어 법관이 되긴 했으나 호프만은 여러 예술 방면에서 눈부신 재능을 보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 실내악곡과 피아노곡, 교향곡과 미사곡을 남겼으며 그의 오페라 운디네는 독일 최초의 낭만주의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다. 본명은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이지만 그는 모차르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빌헬름’을 ‘아마데우스’로 바꾸기도 했다. 또한 그림에도 뛰어나 지역사회의 저명인사들을 풍자하는 캐리커처를 그려 배포한 사건 때문에 좌천된 일도 있었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원서 초판본의 표지 역시 호프만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천재적 재능은 문학에서 가장 만개했다. 현실과 초현실을 한데 담고 기묘한 환상과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결합한 그의 작품은 전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거기에 매료됐다.
호프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은 낭만주의 시대의 다채로운 특성이 돋보이는 소설로 손꼽힌다. 당대와 후대의 수많은 평론가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높이 평가했으며, 19세기 전반에 이미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번역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얻은 작품이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은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학문에 정진해 위대한 작가가 됐다고 자부하는 수고양이 무어의 자서전과 인쇄 실수로 함께 제본되어버린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전기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자서전의 주인공인 무어는 회색 수고양이로, “나의 자아야말로 모든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자신의 위대함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도 없는 이 자서전 작가가 유일하게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세상이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무어는 자신감과 우월감에 가득차 여러 수고양이 청년들이 자신을 전범으로 삼도록 자서전을 써내려간다고 당당히 밝힌다. 한 권 내내 자신의 작품에 감탄하고 찬탄을 아끼지 않을 후세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천재적 독창성을 내세우고 우매한 대중은 자기에게 매료될 것이라고 떠든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무어의 글은 모두 다른 이의 텍스트, 남의 말을 짜깁기한 글이다. 교양을 쌓는답시고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다음 그것으로 자신을 장식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사회의 관습에 순응하고 사회적 규범과 타협하는 교양 속물에 대한 묘사이며, 고전적 문화 자산을 대하는 독일 교양시민의 행태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한편 파지로 끼어든 전기의 주인공 악장 크라이슬러는 호프만 자신의 자화상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자아도취적인 무어와 달리 크라이슬러는 진정한 천재 예술가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자신과 세계, 예술과 삶, 지상적 존재와 더 높은 존재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균열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주위 세계와 충돌할 뿐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크라이슬러라는 인물은 예술과 세계의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관직을 잃은 크라이슬러는 대공의 악장직을 맡게 되자 몹시 기뻐했고 예술 속에 살면서 직위와 예술로서 마음속의 악령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공의 궁정에서 인간으로 완성되기는커녕 “몰취미한 딜레탕트들의 어리석은 짓들을 통해, 인공수족 인형들로 가득한 세계의 모든 미친 야단법석을 통해 점점 더 제 존재의 비참한 하찮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크라이슬러의 모습은 나폴레옹의 진군 때문에 관직을 잃고 음악가의 길로 나가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 호프만 본인의 이력을 연상시킨다.
고전적 형식 개념을 혁파하는 이 독특한 형식 실험은 작품의 결정적인 강조점이 내용에서 구조 및 구성 방식으로 옮아가는 현대적 소설의 경향을 선취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다중적인 심리에 대한 정신분석적 탐구와 흥미를 유발하는 범죄소설 방식의 줄거리 전개 역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 E.T.A. 호프만 소개
환상적인 작품 세계로 유명한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작가로 법학을 전공했고, 프로이센 법률관을 지냈다. 그 뒤 음악에 열중하여 밤베르크에서 악단 지휘자로 일하며 음악가로서의 평판을 쌓아 나갔다. 1806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숨을 거두기 전까지 8년 동안,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 ‘이중 생활’을 하여 ‘도깨비 호프만’, ‘밤의 호프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호프만은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펴냈다.
『호두까기 인형』이 가장 대표작으로 이 외 『악마의 묘약』, 『황금 단지』, 『브람빌라 공주』 등의 작품을 남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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