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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674)] 마그누스

 

마그누스

저자
실비 제르맹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4-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계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길은 오로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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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674)] 마그누스  

실비 제르맹 저 | 이창실 역 | 문학동네 | 308쪽 |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함부르크에 가해진 대규모 폭격으로 기억을 잃고 모든 것을 새로 배워나가던 소년. 독일이 패망한 후 그는 존경하던 부모가 나치에 동조해 유대인들을 학살한 전범이었으며 자신의 친부모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은 참혹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잔혹한 진실.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실비 제르맹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마그누스』는 제르맹이 천착하는 주제인 ‘악의 수수께끼’에 대한 탐구에 더해 무력한 개인과 폭압적인 세계와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신비스러운 시적 언어와 함께 파편적 글쓰기라는 독창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매혹적인 소설은 강렬하면서도 우아하다. 『마그누스』는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의 독일, 프란츠게오르크는 어린 시절 함부르크에 가해진 대규모 폭격, 일명 고모라 작전으로 인해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는다. 그는 존경받는 의사인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사랑하며 그들에게서 세상을 새로 배워나간다. 소년은 음악 애호가이며 아름다운 베이스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를 경외한다. 프란츠게오르크는 평범하고 화목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안락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전쟁이 종말로 치닫고 히틀러 총통이 최후를 맞이하자 그동안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난다. 아버지는 나치의 앞잡이로 유대인 학살 최전선에 있었던 의사이며 히틀러를 신봉한 어머니 역시 이 범죄의 간접적인 가담자였던 것. 평화로웠던 가정은 순식간에 부서지고 그들은 도망자가 된다. 프란츠게오르크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시인을 자처하던 아버지의 친구들이 그런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소년을 무엇보다 혼란스럽게 한 것은 그동안 자신을 증명해주었던 이름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소년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떠난 멕시코 여행에서 함부르크 폭격 당시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고 그동안 부모라 여겼던 사람들이 자신의 친부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년은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유일하게 지니고 있던 물건인 곰인형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마그누스로 바꾼다. 그는 삼촌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멕시코에서 만난 연인 메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살아온 삶의 사분의 일은 망각 속에 녹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길고 긴 거짓으로 오염되어 있다.

 

『마그누스』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 뒤에 이어지는 장의 이름은 ‘단장斷章 2’이다. ‘장’도 아닌, ‘단장 1’도 아닌 ‘단장 2’. 소설은 서른한 개의 단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 약주略註, 속창續唱, 가필加筆, 신도송信徒頌, 연보, 삽입, 메아리 등의 요소들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단장에서 이어나가는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이 일종의 작은 장들은 단장들 사이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가 하면 중반에 ‘단장 1’이 난데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파편적 글쓰기’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다. 제르맹의 이러한 서사 진행 방식은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주인공의 특수한 상황, 시간마저 분절시켜버리는 세계의 압도적인 폭력을 형상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실비 제르맹 특유의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들도 이러한 소설의 주제의식을 더욱 강화한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 신비주의 철학에 큰 흥미를 느낀 그녀는 그와 같은 시적 언어들로 소설에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소년의 이 비극적인 여정은 제르맹의 마법적인 문장들로 인해 매혹적인 한 편의 신화가 된다.

 

작품의 배경이 된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이 세계는 폭력으로 둘러싸여 있다. 믿을 수 없이 거대하고 위험한 이 세계 안에서 개인은 위태로운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이러한 현실과 삶의 진실 앞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몰두하는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누군가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마그누스』는 그 질문에 대해 이 압도적으로 폭력적인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는 길은, 그곳에서 우리를 영영 잃어버리지 않는 길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폭압적인 세상과 무력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화해에 이를 수 있을지에 대한 실비 제르맹의 답변, 혹은 또다른 질문이다.

 

 

작가 실비 제르맹 소개

 

1954년 프랑스 샤토루에서 태어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81년부터 틈틈이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1984년 장편소설 『밤들의 책』으로 여섯 개의 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작품세계를 창조해왔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숨겨진 삶』 『분노의 날들』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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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