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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04)] 포피

 
 
[책을 읽읍시다 (704)] 포피
 
강희진 저 | 나무옆의자 | 248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포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인물의 구술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화자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자 ‘포피’라는 닉네임으로 키스방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이다. 키스 매니저인 그녀가 자신의 삶에 관심 가지고 찾아온 소설가인지 난봉꾼인지 모를 손님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구설(口設)이 이 소설이다.


화자(포피)는 신분이 약간 의심스러운 소설가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북한에서 보냈고 중국에서 머물다가 남한에 정착해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여느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해 일자리를 찾지만 탈북자라는 신분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아 키스방에서 일하게 됐다. 포피의 삶의 과정은 적지 않은 탈북 여성들이 걸어온 길이다. 다만 포피에게 키스방은 단순한 돈 버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을 떠돌면서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 속에 있는 모든 욕망을 신랄하게 뱉어냄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화자는 숱한 얘기를 쏟아내면서 자신의 과거까지 하나씩 떠올린다. 그녀는 어렵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상태이고 이는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무의식의 선택이었다. 그만큼 화자에게 과거는 끔찍한 트라우마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북한에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엄마와 장마당에 나가 두부밥과 아편(포피)을 팔면서 살았다. 아버지는 양귀비를 키워 아편을 생산하는 집단 농장의 농원이었지만 제대로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해 엄마의 장사에 의존해서 먹고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배급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아사의 상황이 닥친다.


막내 삼촌의 도움으로 화자와 엄마는 무사히 남한에 온다. 한국에 들어온 엄마는 막내 삼촌을 불러주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정착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머리가 비상한 화자는 공부에 매진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여기 생활에 적응하지만 엄마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명문대생이 된 화자는 탈북자라도 노력만 하면 남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문화와 사고의 벽은 넘기 힘들었고 대다수 탈북자에게 ‘탈북’은 사슬이었으며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록 남한 사회에서 대접 못 받아 키스방이나 전전하지만 천국에 대한 꿈이 있다고 말한다.


포피는 자신의 인생 역정 중 일부는 기억하고 일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탈북 과정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친지들이 꿈속에서 변형, 혹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더구나 큰아버지의 공개처형 장면은 흐느낌, 비명 소리, 고함 소리로 나타나 끝없이 그녀를 괴롭힌다. 악몽 같은 지난날과 잃어버린 기억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구원하는 것은 수다다. 말을 쏟아내는 행위로 그녀는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고 기억을 온전히 복원하면서 고통에서 차츰 벗어난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작가는 전작 『유령』에서 온라인 게임에 빠진 탈북 청년을 내세워 탈북자의 소외와 분단 문제를 다뤘다면 『포피』에서는 키스방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인민의 삶이 붕괴된 북한 체제와 남한 소비자본주의의 윤리적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 강희진 소개


경남 사천에서 출생, 그곳에서 성장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즐겨 대학 때까지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문학보다 영상에 더 끌려 영화판을 기웃거렸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영화 시나리오로 썼던 작품이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 몇 년 동안 다큐드라마를 집필했다. 그 당시 취재차 만났던 여러 사건의 주인공들―연쇄살인범, 사형수, 사기꾼, 성전환자들로부터 많은 충격과 영감을 받았으며, 그때의 경험은 이후 소설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각종 문학상 공모 본선 및 최종심에서 미역국을 먹은 지 만 10년. 대한민국 최다 본선 진출 작가로 끝날 줄 알았다. 마지막 응모라고 생각하고 탈고한 『유령』으로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제7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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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