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인 듯 보이는’ 독특한 종류의 소설『코스모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그로테스크한 환상의 세계로 펼쳐 낸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마지막 작품이다. 곰브로비치 자신이 “스스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 정의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작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주인공이 마주하는 그로테스크한 상황과 사람들, 그로부터 생겨나는 기묘한 감정들을 묘사하면서 20세기 사상들을 반영하고 또 동시에 해체하는 철학 소설이다.
화자인 ‘나’(곰브로비치와 마찬가지로 이름이 ‘비톨트’이다.)는 푹스와 함께 자코파네라는 한적한 곳의 외딴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특별한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지만 비톨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기이해 보인다. 숲에서 발견한 목매달린 참새와 집주인 레온의 딸 레나의 새하얀 다리, 하녀 카타시아의 윗입술에 난 상처는 점점 그의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어 그를 불안하게 한다. 곰브로비치의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불완전한 의식, 미완성의 정신세계”는 『코스모스』에서도 주요한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계는 인물들의 무의식 속에서 점점 “낯설고, 모호하고, 기괴하며, 음험하기까지” 한 상황으로 변해 간다.
비톨트는 레온의 집에서 사소하지만 결코 쉽게 넘겨 버릴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그는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은 집 안에서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무언가를 부서져라 내리치는 소리나 담벼락에 매달아 놓은 막대기 같은 것들에 집착하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 찾으려 애쓰기 시작한다. 그가 세계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과정이 『코스모스』의 주된 흐름이며 그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가 쓰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톨트의 편집증과 불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사로잡고 그의 무의식은 조금씩 균열되기 시작하며 결국 머릿속에서 나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경에 이른다. 레나에 대한 집착은 그녀의 고양이에게로 미치게 되고 레나 부부의 침실 창문을 훔쳐본 어느 밤, 그는 그 고양이에게 손을 뻗기에 이른다. 모두 함께 떠난 소풍에서 만난 신부(神父), 그가 입은 카속, 그가 먹는 모습까지도 비톨트의 신경을 건드린다.
곰브로비치의 다른 작품 속 인물들과 마찬가로 비톨트 역시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쓴 가면과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자아의 균열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극적인 불균형에 맞서 맹렬하게 저항”하지만 결국 그 갈등은 자기 자신마저 집어삼킬 지경까지 그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이 폭발하기 직전에 다른 현실, 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또 다른 세계에서.
곰브로비치는 “문학이란 아마도 다른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열려 있고, 가장 자유로운 장르일 것이다. 문학 속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가장 자유롭게”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 극단적인 실험을 감행했고,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창조해 냈다.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 소개
1904년 폴란드 남부의 말로시체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뜻에 따라 귀족적인 가톨릭 학교를 거쳐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법학에 흥미가 없던 차에 대학 졸업 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철학과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곧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하고 귀국했다.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는 틈틈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서 1933년 첫 작품집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평단의 비난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받으며 작가의 길을 결심하고 희곡 「부르고뉴의 공주 이보나」와 첫 장편 『페르디두르케』를 발표했다.
1939년 아르헨티나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다음 날 2차 세계 대전 발발 소식을 듣고 귀국을 포기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나치에 의해 긴 판금에 들어갔다. 지방 신문사와 은행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리면서 두 번째 장편 『트란스 아틀란틱』을 완성했다.
1933년부터 잡지 ‘쿨투라’에 관여하면서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자 다시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1957년 폴란드 자유화 운동의 결과 일시적으로 검열이 약화되면서 몇몇 작품들이 출간되었지만 정치적 성향을 이유 로 다시 금서로 묶여 1960년대 중반까지 판금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고국 폴란드에서와는 달리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세 번째 장편 『포르노그라피아』를 발표한 후 1963년 포드 재단의 기금을 받아 아르헨티나를 떠나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네 번째 장편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코스모스』를 발표하고 1968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1969년 프랑스 방스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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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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