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11)] 허먼 멜빌 :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책을 읽읍시다 (711)] 허먼 멜빌 :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허먼 멜빌 저 | 김훈 역 | 현대문학 | 476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총 일곱 작품이 실린 이번 단편선은 유고작 「선원, 빌리 버드」(1924)를 제외한 여섯 편이 모두 멜빌이 가장 활발하게 집필을 한 1850년대에 쓰인 작품들로 그의 전성기이자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이 시기 문학에서 그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글들이다. 멜빌이 『모비 딕』의 헌사를 바쳤던 15년 연상의 호손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문학의 주요한 요소인 선과 악, 숙명과 자유의지의 문제에 완벽히 눈을 뜨지 못한 터였고 1861년 남북전쟁 발발 이후로는 염세적 두려움에 빠져 빈약한 시를 썼을 뿐 「선원, 빌리 버드」 전까지 눈에 띄는 작품을 내지 못했기에 1850년대 작품들은 매우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번 단편선은 또한 인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한 대표작 「바틀비」(1853), 「베니토 세레노」(1855), 「선원, 빌리 버드」를 한자리에 모아 발표 연대순으로 실었기에 그의 관심과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살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미국의 저명한 인문학자 앤드루 델방코가 “찰스 디킨스가 19세기 런던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었다면 동시대 미국에는 허먼 멜빌이 있었다”고 말한바 당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이를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멜빌의 탁월한 솜씨는 특히 단편에서 빛을 발했다.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는 날에 찾아와 피뢰침 구매를 강요하는 외판원이 등장하는 「피뢰침 판매인」(1853)에서처럼 때로는 재기 넘치는 유머와 위트로, 지적 도락을 누리는 상류층들의 삶과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이 대비되는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1855)처럼 때로는 냉소적인 비틀기로써 멜빌은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호쾌하게 통찰한다. 「바틀비」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 가의 한 사무실에 새로 고용된 법률서기 바틀비가 무슨 일을 시켜도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미국 문학사상 가장 기상천외한 캐릭터 중 하나인 바틀비의 이야기는 종종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비교되는 미국 부조리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한편 “포경선은 나에게 예일대이자 하버드대학”이었다고 말한 멜빌은 광활한 바다를 무대로 많은 작품을 썼으며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주요하게 다루었다. 「사과나무 탁자 혹은 진기한 유령 출몰 현상」(1856)에서는 백여 년 된 사과나무 탁자에서 나는 정체 모를 소리에 영적인 현상을 믿지 않던 화자가 혼란에 빠지고,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1853)에서는 대지를 울리는 신비로운 수탉의 울음소리가 ‘유럽 최초의 문명병’이라 불린 우울증에 빠져 있던 화자를 일으켜 세운다.


1799년 산토도밍고에서 일어난 흑인 노예 반란을 우화적으로 그린 「베니토 세레노」(1855)와 『모비 딕』 이후 멜빌이 쓴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 불리는 「선원, 빌리 버드」(1924)는 해양 현상과 법률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신화적 상상력이 한데 얽혀 탄생한 멜빌 해양문학의 걸작이다. 훗날 영화와 오페라 등으로 재탄생하기도 한 두 소설은 저마다 다른 입장의 등장인물들을 내세우면서 멜빌이 평생에 걸쳐 천착한 선과 악의 모호성 그 영원한 투쟁을 밀도 있게 그린다. 특히 멜빌이 죽기 직전에 다시 전성기로 돌아가 써낸 그의 ‘정신적 자서전’인 「선원, 빌리 버드」는 그 고독했던 문학적, 철학적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소설로서 의미가 깊다.


만약 『모비 딕』을 쓰지 않았다면 멜빌은 세계 최고의 단편 작가로 문명을 떨쳤을 것이라고 평가되듯이 그는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짧은 텍스트 안에 응축해 담아냄으로써 당시 근대적 원형이 갖춰지던 단편문학의 폭넓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문학적 위상에 이견이 없는 오늘에도 『모비 딕』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멜빌을 쉽게 접근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다채로운 단편들을 소개하는 이번 단편선이 허먼 멜빌의 탁월하고 심원한 문학 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작가 허먼 멜빌 소개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이 뭍어나는 작품을 쓴 하먼 멜빌. 살아생전에는 단순한 해양 탐험 소설을 썼다과 평가되었을런지 모르지만 현대에 와서는 친구 N.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멜빌은 미국의 소설가로 181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 포경선에서 탈주해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과 함께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타이피』(1846)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바다 생활을 담은 『오무』 (1847)에 이어 발표한 『마디』(1849)에는 철학적 논의들을 담았지만 평단의 차디찬 반응에 멜빌은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바다에서의 모험으로 돌아가 『레드번』(1849), 『하얀 재킷』(1850)을 발표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표작 『모비 딕』(1851)조차도 그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혹평에 시달린다. 시대와의 불화로 은둔하면서 단편 「필경사 바틀비」(1853)를 비롯한 중단편과 장편, 시편을 꾸준히 써낸 그는 마지막 소설 『빌리 버드』(1924)를 집필하던 중, 1891년 9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해브 선장이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룬『모비 딕(백경)』은 멜빌의 대표작으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작가 하수에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포경선 선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는 한편, 악·숙명·자유의지 등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담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인 『피에르』는 전작처럼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탈피하여, 시골의 부유한 평민 집안의 외아들 피에르가 이복누이 이사벨을 구하려다가 빠져 들어간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캘비니즘적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그 범주를 넘은 견해를 제시하여 인간심리의 착잡함을 비유적·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역시 오늘날에 와서 더욱 각광받는 부분이 되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