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지금, 이탈리아 소설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름은 에리 데 루카다. 1950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로마로 이주해 적극적으로 정치운동을 했고, 소설가가 되기 전에 기계공, 트럭 운전기사, 미장이로 일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에는 보급단의 운전기사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마흔이 되었을 때 스무 살에 써 두었던 소설 『지금, 여기서는 아닌』을 출간했다. 그 후 해마다 한두 권씩 지금까지 5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21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얼굴”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에리 데 루카는 언어를 다루는 장인이다. 공방에서 닦고 문지르고 쓰다듬고 분해하고 조립한 말들이 그의 소설을 이룬다. 한 편의 산문시와 같은 소설. 그의 작품이 속도가 아닌 깊이로 읽히는 이유다. 그는 소설 이외에 시를 짓고, 시나리오를 쓰고, 성서를 번역하고,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며, 암벽 등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여전히 맹렬하게 정치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고문이기도 하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에리 데 루카가 2011년에 발표한 소설로 그의 근작들 중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열 살 소년이 자연과 문학,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터득해 가는 과정을 시적인 언어로 빚어냈다. 에리 데 루카의 소설은 크게 성장소설과 종교소설로 나눌 수 있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그의 성장소설 중에서도 자전적 성격이 가장 짙은 작품으로 첫사랑과 바다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잔인함에 눈뜨는 열 살 소년의 여름날을 그린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의 주인공은 열 살 소년이다. 소년은 “미로 같은 유년기를 소리 없이 막 마감”하고 엄마와 함께 나폴리 근교의 섬으로 여름휴가를 보내러 왔다. 혼자 책 속에 파묻혀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소년은 조숙하고 냉소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몸이 정신의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소년을 갑갑하게 만든다. 소년은 육체의 껍질을 벗고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소년에게 중요한 문제는 몸을 탈출하는 것이다.
소년은 열 살이 되기 전 이미 『돈키호테』를 단숨에 읽고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런 소년은 어느 날 해변에서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게 된다. 동물을 사랑하고 그 행동을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소녀는 소년과는 또 다른 생명력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소녀는 소년에게 당돌하게 사랑을 제안하고 삶의 정의와 감정에 눈뜨게 한다. 그때까지 소년에게 ‘사랑’이란 어른들이 과장해서 사용하는 감정 표현이었으나 이제 소년은 그 감정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홀로 자신의 몸과 사투를 벌이던 소년은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감정이라는 세계에 눈을 뜬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한 소년의 성장을 그리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리 데 루카 자신의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억의 세밀한 부분을 담는다. 60세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 퍼즐을 맞추듯 50년 전 뜨거웠던 여름의 사건들을 하나씩 재구성해 나간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과 현실 속 에리 데 루카의 시간이 오차 없이 겹쳐진다.
에리 데 루카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열여덟 살에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고향 나폴리를 떠나 로마로 이주했다. 그 후 주인공이 걸어온 인생의 여정대로 에리 데 루카 또한 어느 도시의 공사장에서 곡괭이를 쥐고 힘겹게 일했고, 시위하는 군중에 섞여 전투적인 정치운동을 벌였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 이렇게 소설과 실재가 중첩되면서 이 작품은 단편적인 성장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에리 데 루카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마치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암초 사이로 기억의 파도가 넘실거리듯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틀에 담았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삶과 자연, 문학과 사랑이라는 눈부신 순간의 기억을 망막에 새기기 위해 “시로 쓴 자화상” 같은 소설이다.
작가 에리 데 루카 소개
소설가, 시인, 성서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 “21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얼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고 연극 무대에 오르고 영화에 출연하며 암벽 등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 나폴리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마로 떠났다. 로마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이어서 ‘투쟁은 계속된다’라는 이름의 정치운동 그룹에 참여했다.
이탈리아와 그 밖의 유럽 국가에서 기계공, 트럭 운전기사, 미장이로 일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보급단의 운전기사로도 활동했다. 1989년 마흔이 되었을 때, 스무 살에 써 두었던 소설 『지금, 여기서는 아닌』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5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 프랑스 ‘페미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라파니엘로의 날개』를 비롯해 『나비의 무게』 『식초, 무지개』 『세 마리의 말』 『행복의 하루 전날』 『양탄자 구름』 『예수의 마지막 소식』 『어머니의 이름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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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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