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번 오스노스 저 | 고기탁 역 | 열린책들 | 568쪽 | 19,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우리는 중국이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룸으로써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초강대국으로 발전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국가가 급격한 변화를 겪은 만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 또한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8년간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격변을 목격해 온 ‘뉴요커’지 기자 에번 오스노스는 이 책 『야망의 시대』에서 바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9년 5월16일 밤, 중국 연안에 인접한 어느 섬에서 스물여섯 살의 육군 대위 린정이가 초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물가로 향했다. 바다를 헤엄쳐 중국으로 망명하려는 것이었다.
린정이의 가족은 본토에서 건너온 초기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린정이는 1971년 타이완 최고의 명문 국립 타이완 대학에 입학했다. 그해 10월 국제 연합은 UN총회에서 타이완의 의석을 박탈하고 그 자리를 인민 공화국에 넘겨주기로 결의했다. 인민 공화국을 중국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린정이는 신입생 대표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공산당 강도들에 맞서 투쟁할 것을 외쳤다.
아무도 그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는 중국 본토에서 불과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최전방 지역인 진먼 섬(금문도)에 배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를 바라보며 린 대위의 역사의식은 바뀌고 있었다. 두 나라는 원래 하나였고 하나의 민족이었다. 그는 다른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혼란의 30년을 마감한 중국이 다시 일어나 번영할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중국과 함께 번영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중국 본토에서 도망치는 것을 생각할 때, 린 대위는 그 반대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망명에 성공한 후 린정이는 자신의 이름을 ‘불굴의 남자’를 의미하는 린이푸로 바꾼다. 오늘날 중국 최고의 경제 전문가 중 한 명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경제학자인 바로 그 린이푸다. 오스노스가 그에게 망명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의 망명이 이상주의에 입각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중국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이자 ‘개인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권위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들에게 부와 번영을 주겠다는 약속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있지만 국민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것이 체제 자체의 생존에 최대의 위협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노스는 이 점을 서구 민주주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즉 오스노스는 그것을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늘날의 중국을 주어진 현실로서 받아들이는 관찰자의 시선을 최대한 유지한다. 그 대신 오스노스는 부와 진실, 믿음을 좇는 개인들의 야망이 여전히 국민을 통제하려고 하는 국가와 충돌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이 나라가 처한 모순과 아이러니, 복잡성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한다.
그러나 오스노스가 우아한 문체로 묘사하고 있는 현대 중국은 모순과 불안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스노스가 보기에, 21세기에 도금 시대를 맞이한 현대 중국의 사람들은 더 이상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지닌 한계를 뚫고 나아가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언제든 국경을 넘고 이름까지 바꿀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는 가운데 길을 잃는 순간도 존재한다. 중국 최남단 도시의 한 시장에서 일어난, 차에 치인 두 살배기 아이를 6분이 넘게 지나가던 행인들이 외면했던 사건은 부를 추구하기 위해 질주하는 가운데 파탄 난 도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커질수록 이를 통제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노력도 비례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당의 선전과 검열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당이 허용하는 표현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중국 사회의 치부를 용감히 드러내는 언론인 후수리, 중국 사회의 부조리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도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등 오스노스는 공산당의 통제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몇몇 인물들의 삶을 추적한다. 인터넷은 이들이 품은 열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 나르며 중국 사회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종종 현대 중국인을 희화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조악한 중국 제품만큼, 중국인들의 인품도 조악하다는 것이다.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지만 시민 의식도 예의범절도 모르는 사람들로 매도하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온갖 인간 군상의 격정에 찬 삶을 감동적이고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는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는 이러한 편견을 교정하면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려 준다. 부와 진실, 믿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야망이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 에번 오스노스 소개
현대 중국에 정통한 「뉴요커」지 기자.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특파원을 지냈다. 그전에는 「시카고 트리뷴」지의 베이징 지국장으로 일했는데, 이때 쓴 연재 기사로 2008년 동료 기자들과 함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또한 아시아를 주제로 탁월한 저널리즘을 발휘한 기자에게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오즈번 엘리엇상, 젊은 저널리스트에게 수여하는 리빙스턴상, 그리고 뛰어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수여하는 미러상 등을 수상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쓴 이 책 『야망의 시대』로 2014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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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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