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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80)] 유령의 시간

 

유령의 시간

저자
김이정 지음
출판사
실천문학사 | 2015-09-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죽도록 잊고 싶은 기억과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 남과 북...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780)] 유령의 시간
 
김이정 저 | 실천문학사 | 264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김이정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작가와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인 『유령의 시간』. 회주의라는 이념의 껍질 속 북한의 현실을 보고 다시 남으로 내려온 남자와 그를 쫓아 뒤늦게 북으로 간 아내. 휴전선이 가로막아 가족을 품에 안을 수 없게 된 남자는 재혼해 사남매를 낳도록 전 부인을 호적에서 지우지 못하고 옛 가족과 새 가족 사이에서 그리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남한 사회는 그를 사회안전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 가두어 인간다운 삶을 앗아가버렸다.


아내와 두 아들이 간첩으로라도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남자는 사망하기 얼마 전부터 자신의 일생을 기록하기 시작하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다. 세월이 흐른 후 그의 딸은 아버지의 헤어진 부인과 두 아들이 북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75년에 멈추어버린 아버지의 일기장을 꺼내 미완의 자서전을 완성한다.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북의 오빠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안부 편지에 ‘아버지는 평생 당신들을 그리워했습니다’라고 적는다.


오랜 세월 이어진 남북 긴장 관계는 한반도를 지상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겨두었다. 해방 70년을 맞이한 2015년에도 여전히 악화일로를 치닫는 분단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간혹 보이는 남북의 화해 제스처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가장 인도적인 행위’마저도 ‘가장 정치적인 사건’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그때마다 기댈 곳 없는 이산가족은 산산조각 난 희망을 가슴에 부여안고 하염없이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1970년대 초반 처음으로 남과 북 정권이 협상 테이블에서 만나 ‘남북한, 자주 평화 통일 원칙 합의. 서울 평양서 4반세기 첫 정치 협상. 7개항의 공동성명 동시 발표’라고 신문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한 남북 회담을 했지만 정기적으로 추진하자던 이산가족 상봉은 이후 수시로 연기됐다. 오히려 유신체제라는 엄혹한 정치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섭은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도 숨이 막혔다. 연좌제에 걸려 본인은 물론 사촌의 자식들까지 공직에 나가지 못했다. 10월 유신이 단행되고 계엄과 긴급조치가 번갈아 거리를 점령했으며 사회안전법이 공포되자 20년간 어렵사리 일군 삶이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듯했다. 사상범을 재판도 없이 재수감할 수 있는 괴물 같은 법령이 남한 사회에서 활개 치자 더 이상 발 붙여 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이섭은 해방 30주년을 맞는 광복절 아침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공포와 억압의 손아귀를 떨쳐버리지 못한 그는 돌연 뇌출혈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낡은 책상에는 스물두 장 셋째 줄까지 쓴 미완의 자서전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30년 가까이 되던 어느 날, 지형은 아버지의 두 아들이 북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북작가대회의 일원으로 방북길에 오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안부 편지를 보내며 ‘아버지는 평생 당신들을 그리워했습니다’라고 적는다. 하지만 편지가 그들 손에 전해질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사실을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그녀는 호텔 창밖을 보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비명을 지른다. 오래전 아버지의 책상 서랍에는 1972년 어느 날의 신문이 들어 있었다. 신문의 1면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여기는 평양…… 가랑비가 오고 있다.’


아버지 이섭과 딸 지형의 시점이 번갈아 교차되는 이 소설은 못다 쓴 아버지의 자서전이자 딸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국가의 대결이 만든 비극을 개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불행한 남북 이산가족에게 이데올로기의 격랑이 안긴 참혹한 상처는 지금도 곪아터지고 있다. 휴전 60년이 넘도록 남과 북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람들, 끊임없는 형벌을 받아야 하는 그들의 운명이 잃어버린 가족과 자식들에게도 되풀이되고 있다. 싸운 시간보다 더 고통스러운 휴전의 시간이 계속되는 오늘날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서 수형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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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