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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89)]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책을 읽읍시다 (889)]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저 | 권수연 역 | 문학동네 | 180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파트릭 모디아노 장편소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소설은 작가 장 다라간이 사소해 보이는 한 사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그는 과거의 공간을 집요하게 더듬어가며 자신의 기억과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려 애쓴다. 하지만 서로 맞춰지지 않는 기억의 조각과 메워지지 않는 공백에 가로막힌다. 육십대가 된 작가 장 다라간의 현재와, 수상쩍은 사람들 틈에서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던 그의 유년 시절, 첫 소설을 써내려가던 청년 시절 등 세 시점으로 번갈아 서술되는 이 작품은 슬픔을 동반하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작가 장 다라간은 어느 날 오후 집필실을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다. 전화를 건 남자는 다라간이 잃어버린 연락처수첩을 돌려주겠다며 그에게 만나자고 한다. 자신을 질 오톨리니라고 소개한 마흔 남짓한 남자는 그보다 젊어 보이는 여자와 함께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 그는 다라간에게 수첩을 돌려주며 그 속에 이름이 적힌 기 토르스텔이라는 남자에 대해 묻는다. 사내는 어떤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데, 그 사건에 기 토르스텔이 연루되어 있다며 그에 대해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다라간이 언젠가 수첩에 무심코 적었을 이름, 그의 첫 소설에 등장하기도 한 토르스텔이라는 인물은 다라간의 기억 속에서 이미 까맣게 지워진 후다. 다라간은 그들에게서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오며 모종의 불안을 느낀다. 카페에서의 만남이 있은 뒤로 그들은 다라간의 잠든 기억을 깨우려는 양 그에게 집요하게 들러붙는다.


한편 질 오톨리니가 이틀 동안 파리를 떠나 있는 동안, 남자와 함께 왔던 샹탈이라는 여자가 ‘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다라간에게 따로 만나자고 청한다. 샹탈은 질이 경마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며, 기 토르스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서류철을 다라간에게 건넨다. 서류철 안에는 글자가 행간 없이 빽빽하게 타이핑된 종이 뭉치와 일곱 살가량으로 보이는 아이의 증명사진 확대본이 들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다라간은 살인 사건에 관한 짤막한 메모들을 뒤죽박죽 모아둔 듯한 종이 사본들을 읽어내려가다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하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이름을 떠올린다. 아니 아스트랑. 그리고 마침내 다라간은 서류철에 끼어 있던 아이의 사진으로 눈길을 돌린다. 뒷면에 ‘즉석 사진 세 장. 신원 미상 아동. 아니 아스트랑 수색 및 체포. 벤티밀리아 국경 검문소. 1952년 7월21일 월요일’이라고 쓰여 있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으로.


작가는 다라간의 현재와 유년 시절, 청년 시절을 번갈아 서술한다. 두 남녀가 불러일으킨 기억은 그를 1950년대 아니 아스트랑과 함께 살던 생뢰라포레 시절로, 그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1960년대로 이끌어간다. 육십대가 된 소설가는 어릴 적 생뢰라포레에서 머물던 시절로부터 한참 비켜서 있다. 그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잊어버리려 했다. “여태 고이 파묻혀 있던 슬픔이 마치 불붙은 완연(緩燃)도화선처럼 지난 세월을 타고 서서히 타들어가지나 않을까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베어무는 순간 프루스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마을 콩브레의 풍경을 떠올렸듯, 연락처수첩에 담긴 기 토르스텔이라는 이름이, 질이 썼다는 책 속 트랑블레 경마장이라는 단어와 다라간이 과거에 살기도 했던 그레지보당 단지에 있는 질의 집이, 청년 시절 다시 만난 아스트랑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샹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를 과거로 이끈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소개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인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다. 1945년 프랑스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972년 발표한 세번째 작품 『외곽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거머쥐었고, 연이어 1975년에는 『슬픈 빌라』로 리브레리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78년 발표한 여섯번째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1984년과 2000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각각 프랭스 피에르 드 모나코상,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았다. 또한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모디아노는 데뷔 이후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아왔으며, 그의 작품 중 『슬픈 빌라』 『청춘시절』『8월의 일요일들』 『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른 주요작으로 『도라 브루더』(1997),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이 있다.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은 항상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과거의 애틋한 흔적을 되살리는 데 바쳐진다. 아울러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으로 그의 소설은 유대인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추적과 기록의 면모를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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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