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교코 저 | 승미 역 | 예담 |312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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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나오키상을 비롯해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면서 발표작마다 주목받고 있는 나카지마 교코의 장편소설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작가 스스로 가장 “전력투구”했다고 말하는 이 소설은 어느 날 한 지붕 아래 4세대 여덟 명이 느닷없이 모여 살게 된 문제투성이 현대 가족의 바람 잘 날 없는 희망 생존 분투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헤이세이 대가족’이 원제인 이 소설의 주요 키워드 ‘현대사회’와 ‘대가족’은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도의 산업화와 정보화로 가족의 단위가 최소화된 오늘날, 나카지마 교코는 왜 하필 ‘헤이세이 시대의 대가족’을 이야기하게 됐을까? 그 질문에 작가는 현재 일본에서 쓰이는 연호 ‘헤이세이’를 통해 ‘대가족’이 성립될 수 없는 현대 일본 사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현대의 대가족이라니 리얼리티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만약 현대에 대가족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고 이야기했다.
이 소설 속에서 나카지마 교코는 저성장·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단위가 어떻게 다시 커져 대가족의 귀환으로 이어지는지, 히다 가족을 통해 전통적인 대가족이 아니라 현대 특유의 21세기형 대가족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낸다. 히다 집안의 세 남매는 성인이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혹독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매우 현대적인 문제들을 안고서 모두 집으로 돌아온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돌아와 각자의 문제만으로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함께 살아가는 데 다시 익숙해지느라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법 없이 와글와글 복닥거리면서 시끌벅적하다. 때론 웃음을 머금게 되고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히다 가족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읽노라면, 냉혹한 시대에 그래도 우리를 치유해주는 마지막 보루는 여전히 가족이 모여드는 집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92세 장모님을 모시면서 간호하는 72세 류타로와 66세 하루코 부부는 여전히 30세 아들까지 건사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유유한 노후를 보내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히키코모리로 옴짝달싹하지 않는 아들 가쓰로를 방 밖으로 쫓아내지도 못했는데, 평범하게 출가했던 딸들마저 돌아오게 되기 전까지는. 치과 의사와 결혼하여 가업을 물려받을 줄 알았는데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한 첫째 딸 이쓰코가 남편의 사업 자금으로 부모에게 빌려 간 돈까지 전부 말아먹은 채 사춘기 아들까지 데리고 다시 쳐들어오더니, 멀쩡히 잘 사는 줄 알았던 둘째 딸 도모에마저 돌연히 이혼을 선언한 후 뱃속에 아기까지 품고서 돌아왔다. 심지어 그 아기의 생부는 전남편이 아니라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개그맨을 꿈꾸는 열네 살 연하남이란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문제들로 나름의 불행을 앓고 있다. 하루코는 육 년 만에 나간 모임에서 자신에게 별안간 들이닥친 불행한 사정을 털어놓고 싶어 하지만 친구들은 제각기 훨씬 큰일을 들이밀면서 “너희 집은 평화 그 자체”라고 일축한다.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환상을 바랄 수도 없는 세상이다. 그래도 ‘제발 오늘만은 무사히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까지는 도무지 내려놓아지지 않는다.
92세 상노인부터 14세 소년까지 무려 4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다 보니 날마다 불만이 불거지고 이제껏 없었던 ‘사건’으로 이어진다. 손자 사토루가 별안간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 나가 정원 창고에 틀어박혀 지내는가 하면, 류타로는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히키코모리 아들에게 “식충아!”라고 소리를 지른다. 꾹꾹 눌러왔던 분노가 터져버린 것이다.
어느 날에는 낯선 청년이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반반 물들인 날라리 머리 꼴로 집 밖을 서성이며 둘째 딸을 찾는다. 그러나 어쩌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일들에서 촉발된 이런 왁자지껄한 사건들이 단순히 불행을 폭발시키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세상의 밑바닥으로 추락했다고 느껴질 때조차 가족만은 어떤 모습으로든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다. 그것이 나를 다시 날아오르게 해주는 가족의 힘이고 가족만이 일으킬 수 있는 행복한 기적임을 이 소설은 말한다.
꽤 묵직한 소재인데도 작가는 시종일관 유쾌한 어조로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작가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가족에게 숨겨져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지만 가장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가족이 제대로 기능한다면 사회적 토대를 상실하게 된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공유하고 그 문제에 대항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장이 되어줄 수 있다. 가족이 있는 집은 절망을 품고 상처를 보듬어,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를 인정하고 미래를 다시 꿈꿀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곳이다.
작가 나카지마 쿄코 소개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여자대학 문리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던 중 2003년에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蒲?)』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FUTON』으로 데뷔하여 노마문예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06년 『이토의 사랑』, 2007년 『긴의 실종』, 2008년 『관혼상제』가 3년 연속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2010년 나오키상을 받은 『작은 집』은 영화화되어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아내가 표고버섯이었을 즈음』으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외뿔!』로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과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긴 이별』로 주오코론 문예상을 수상하는 등 주요 문학상을 연이어 받으면서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 작가로 등극했다. 최근 작품으로는 『조망절가(眺望絶佳)』, 『천천히 걸어라』, 『파스티스』, 『그녀에 관한 12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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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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