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970)]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저 | 놀 | 396쪽 |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첩첩산중 두왕리, 일명 아홉모랑이 마을에 사는 강두용 옹은 막장 드라마를 보던 중 뒷목을 잡고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아홉모랑이 강씨네는 장례를 치르게 되고 효성 지극한 아들딸들은 시골집에 홀로 남을 팔십 노모가 걱정된다. 남편을 산에 묻고 돌아온 날 호박쌈을 한입 가득 욱여넣는 씩씩한 홍간난 여사 말이다. 아들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결정된 사항은 홍간난 여사의 손녀이자 집안 최강 백수 강무순을 시골집에 낙오시키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시작된 동거 및 유배 생활에 하루 만에 지루해진 무순. 너무너무 심심한 나머지 마당에 묶여 있는 강아지 ‘공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저 집에 개 끌고 돌아다니는 미친년이 산다’는 말을 듣는 동네에서 대체 무얼 하며 지낼 수 있을까. 수준 안 맞아서 나가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집 안에서 놀거리를 찾다가, 할아버지의 책장에서 15년 전 자신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지도를 발견한다. 보물지도에 그려진 대로 경산 유씨 종택을 찾아가 보물상자를 파낸 무순. 보물상자와 마주한 순간, 무순을 좀도둑으로 오해한 종갓집 외동아들 ‘꽃돌이’와도 맞닥뜨린다.
15년 전, 당시 최장수 노인의 백수 잔치에 온 마을 사람들이 버스까지 대절해 온천으로 관광을 떠난다. 어른들끼리 목욕도 하고 술도 마시는 자리에 어린 것들을 데려가기 ‘뭐해서’ 온 동네 아이들을 마을에 남겨 놓고 떠났다.
그날 밤 관광이 끝나고 돌아온 어른들. 마을이 텅 빈 사이, 네 명의 소녀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당시 사라진 것은 유선희(16)뿐만 아니라, 삼거리 ‘허리 병신’네 둘째 딸 황부영(16), 발랑 까지긴 했어도 평범한 집안 딸이었던 유미숙(18), 목사님 막내딸 조예은(7) 모두 네 명이다. 나이도, 학교도, 출신 성분도 다른 소녀 넷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경찰, 과학수사대, 심지어 무당도 포기한 전대미문의 ‘네 소녀 실종 사건’. 경찰의 추측대로 단순 가출일까? 아니라면 범인은 대체 누굴까? 자신의 딸이 외계로 갔다며 뒷산에서 매일 울부짖는 교회 사모님은 정녕 미친 것일까?
4차원의 최강 백수 강무순, 팔십 노인 홍간난 여사, 츤데레 꽃돌이. 이 얼렁뚱땅 탐정 트리오가 벌이는 황당무계한 탐정 놀이의 끝은 어디인가?! 박연선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가 뒤섞인 시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보다 스산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서울에서 시골 마을 두왕리에 유배된 강무순, 그녀의 범상치 않은 조모 홍간난 여사. 이 둘의 케미는 로맨틱 코미디 속 연인들의 그것보다, 전쟁 영화의 브로맨스보다 훨씬 찰떡같고, 때때로 개떡 같으며 심지어는 치명적이다. 바로 며칠 전 60년 넘도록 함께한 남편을 여의고도 씩씩하게 호박잎 쌈을 입에 욱여넣고, 칸트보다 정확한 시간관념으로 ‘남편을 죽게 만든’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는 홍간난 여사. 그녀는 게으른 백수 강무순의 뇌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의 소유자다. 해가 뜨기도 전에 밭일을 한 타임 뛰고, ‘입맛이 없다’며 아침 점식 저녁 삼시 세 끼에 새참까지 챙겨먹고, 아홉 시 뉴스를 시청하며 곯아떨어지는, 서울에서는 결코 만나기 힘든 ‘아침형 노파’다.
집안 최대의 골칫덩어리이자 자칭 삼수생이자 타칭 백수인 강무순. 그녀는 홍간난 여사의 기준에 갖다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쓰레기’다. 해가 ‘똥꾸녕을 쳐들 때까지’ 바닥에 눌어붙어서 일어날 생각을 않고, 넝쿨손이 손가락을 감는 광경을 목격하겠다며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미친 것’이기도 하다.
정녕 저게 내 새끼의 새끼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탄스러운 인물이지만 15년 전 그 사건만 생각하면 홍간난 여사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난다. 생때같은 내 새끼 무순도 잃어버릴 뻔했던 그 사건. 무순의 보물상자로 인해 그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의 케미는 폭발한다.
여기에 종갓집 외아들이자, ‘멋진 오빠’들의 필수 3요소인 꽃미모, 까칠함, 쓸쓸한 뒷모습을 겸비한 ‘꽃돌이’ 유창희가 합세하며 캐릭터만으로도 ‘넘나 재밌는’ 상황이 연출된다. 셋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물음표가 그려지는 조합이지만, 이 탐정 트리오의 활약이 꽤나 그럴싸하다. 강무순의 4차원적인 추리, 꽃돌이의 턱선 만큼 날카로운 시선, 유일하게 15년 전 사건을 알고 있는 홍간난 여사의 의뭉스러운 듯 저돌적인 수사까지! 이들의 수사 방향은 우리의 배꼽을 빠지게 하고, 범인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작가 박연선 소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잘 쓰는’ 작가이다. 2003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데뷔. 드라마 「연애시대」로 시청자들의 가슴에 수많은 명대사를 새겼으며, 「얼렁뚱땅 흥신소」로 수많은 ‘폐인’을 만들었다. 이후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폭한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진정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하던 어느 날 스토커 같은 편집자에게 잘못 걸려 소설 작가의 삶도 살게 되었다.
첫 장편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로 소설 작가로 데뷔했다. 16년 7월, 드라마 복귀작 「청춘시대」 방영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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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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