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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기독교의 이기와 코이노니아(koinonia)

[칼럼] 기독교의 이기와 코이노니아(koinonia)

 

 

[시사타임즈 = 장계황 박사]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 온 후 가장 힘든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기도로 이겨 낼 수 있다는 호기와 기독제국주의를 앞세운 반정부 운동이 사회와 단절의 시작이다. 이런 행태를 통해 기독교는 감염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대면 예배를 강조 하다 보니 사회로부터 집단 왕따 조짐이 보인다. 그들 스스로가 사회의 악이며 사탄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토학자 장계황 박사(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시사타임즈​

코이노니아 사상과 교회 커뮤니티

 

코이노니아는 헬라어로 ‘공유하다’ ‘남과 함께 나누다’ ‘공통’ ‘다 같이’ 등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일반 사회 용어로는 ‘공동체’를 말한다. 또한 성경에서는 이 말을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요일1:3), 인간 서로간의(성도 사이의) 친교(요일1:7) 등으로 쓰이기도 하다. 즉 다시 말해 교회 커뮤니티의 중심적 용어이다.

 

코이노니아 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라”는 것으로 교회 커뮤니티의 중심 사상이 되는데 최근 교회의 행태를 보면 단순히 예배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곳서 예배 후 식사는 기본이요, 자기들만의 커뮤니티 속에서 비즈니스 까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작은 사회이다. 우스갯소리로 순복음 교회 장로 한 명만 제대로 알면 못 파는 상품이 없다고 한다.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음악과를 졸업하고 일부의 연주자와 교사 외에는 취업이 사실 상 어려운데 그들 대부분은 교회 커뮤니티 속에서 찬양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취업의 길이기도 하다. 지금대형 교회는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가장 큰 또 다른 커뮤니티이다.

 

대면예배는 목숨보다 중요하다.

 

일부의 시각이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대면예배를 중시한다. 다르게 보면 자기들만의 교회커뮤니티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일부서는 헌금을 걷기 위해 대면예배를 주장한다고 하지만 그 보다 근본적인 것은 코이노니아 사상에 의한 교회커뮤니티를 깨지 않으려는 사상적 측면이 더 강하다. 기독인들의 정신적 문제이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기 위하여 부르셨는데 이 교제는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엡4:16)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들(형제)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한다(고전12장; 요일4:20-21)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코로나 19는 사람들 간 교제를 금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이 교제가 감염의 직접적 원인이 되다보니 금하고 있는데 대면 예배는 이에 반하다 보니 사회의 시각과 대치되는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 성경 말씀에도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의 말씀 중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너무나 많다. 이웃은 민족과 국가이다. 그로나 지금의 기독사상은 이웃과 금을 그어 단절을 하고 있다. 자기네들끼리 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 넘어는 악으로 규정하여 늘 사회 분파를 주동하곤 한다.

 

이는 기독교 사상의 태생적 한계이다. 유일신을 주장하다보니 같은 공동체 외에는 모두를 우상화로 이단 취급하기에 외부를 공동체로서 받아들이수 없는 사상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는 도저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기독공동체 외에는 적대시 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다. 즉 상충되는 현상이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시 기독교가 먼저 나서서 이를 주도해 나가야 하나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공동체를 이용하여 사회의 공동 이익보다는 기독사상에 입각한 이익을 우선 추구하여 문제를 야기한다.

 

지금 기독교는 기독사상의 본질 보다는 정치에 오염되어있다. 한국 기독교는 평양 중심에서 발전해 오다 보니 한국전쟁 이후 반공주의가 기독사상과 혼재 되어 기독교도들은 아주 특별한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미군정 시절을 거치고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구국기도회 등을 통해 사회 주류로 편입 되는데 반공을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이다.

 

이들은 반공보수주의를 통한 기독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진보나 민족 세력의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예수 사랑이 없다. 오직 적으로만 인식하여 최근 8.15 도심 집회에서도 정권을 무너뜨리려하고 있다. 이게 정산적인 일인가? 이에 동조하는 세력은 사실 북조선의 정권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를 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멀쩡한 정권을 이념의 가치가 맞지 않는다고 하여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행위는 정당성을 부여 받을 수 없다.

 

대면예배는 정신적 공허감을 채우는 질환

 

지금 시국에서 진정 ‘네 이웃을 사랑’ 한다면 절대 대면 예배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대면예배의 고집은 헌금의 필요성과 코이노니아의 공동체에 대한 서로간 확인이 주 요인일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 기독인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정신적 공허감 때문에 대면예배를 고집하는 것이다. 대면예배의 결과가 기독인들의 이웃을 해친다고 하는 것은 아마 그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리라.

 

다수의 목회자들은 교회라는 건축물은 허상이라고 말을 한다. 어디든지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양을 하는 장소가 사실 교회이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은 코이노니아의 공동체를 중시하고 헌금의 필요성 때문에 대면예배를 주장하는데, 민족과 국가라는 공동체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분명 사탄이고 악마이다.

 

종교의 본질

 

종교는 하늘을 바라보는 교육이다. 그것이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상관없다. 종교는 사회의 고통을 분담하고 낮은곳을 바라보아야 하며 어두운 곳에 볕을 쬐어주는 역할과 기능을 하여야 한다. 종교가 종교의 본질을 잊지말아야 세상이 밝아지며 종교는 세상에 소금과 빛을 역할을 해야 한다.

 

종교가 본질을 잊고 세속의 정치적 이념화로 무장하여 사회갈등에 앞장선다면 종교는 사회로부터 배척 당 할 것이다.

 

대면예배는 멈추어야 하며 종교는 종교적 사명을 다 해야 할 것이다.

 

覺永堂 學人

北村 장계황 /行政學博士

韓國歷史領土財團 理事長

 

글 : 김동진 논설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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