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41)] 20. 오스트리아(Austria)-1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41)] 20. 오스트리아(Austria)-1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비엔나의 모차르트 동상 앞에서, 2006.6 (c)시사타임즈
▲< 국기 > 적색의 2줄과 백색의 1줄로 구성. 가장 오래전(13세기)부터 사용된 적백색 국기중 하나. < 국장 > 중앙에는 문장, 낫은 농업, 망치는 산업, 끊어진 사슬은 사회주의 독재로부터의 자유를 의미.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중앙유럽, 알프스 산맥 동부에 있는 나라로 수도는 빈이며, 독일어가 공용어이다. 9개주로 이루어진 연방국이다, 국토의 65%가 알프스 산지이며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지만 노이지들러호(Neusiedlersee), 아터호(Attersee), 트라운호(Traunsee), 독일, 스위스와 함께 공유하는 보덴호(Bodensee) 등 큰 호수가 많다. 서쪽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북서쪽은 독일, 북쪽은 체코, 동쪽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쪽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등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고전파 음악의 본고장인 음악의 나라이며 노벨상 수상자를 20명으로 배출한 과학, 문화국이기도 하다. 우리와는 조선시대인 1892년 ‘조ㆍ오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The Republic of Austria is a landlocked country in Central Europe. Austria's terrain is highly mountainous due to the Alps. The origins of modern-day Austria date back to the time of the Habsburg dynasty During the 17th and 18th centuries, Austria became one of the great powers of Europe. Austria was occupied by Nazi Germany. In 1955, the Austrian State Treaty re-established Austria as a sovereign state, Since then, Austria became permanently neutral.

  

1. 국명(Country) : 오스트리아

(Republic of Austria)

2. 수도(Capital) : 비엔나 (Vienna)

3. 면적(Territory) : 83,855㎢

4. 인구(Population) : 8,414,000명

5. 국민소득(GNI) : US$46,330불

6. 언어(Language) : 독일어 (German)

7. 독립일(Independence) : -

 

산강의 나라, 오스트리아

 

동쪽왕국 오스트리아

유럽 심장

여덟 나라에 둘러싸여

역사의 소용돌이 온 몸으로 겪었네

 

바다가 없다고 가엽다 마오

우리에겐 노이지들러, 아터, 트라운호

그리고 보덴호도 있다오

 

신비롭다 알프스 영봉

상상봉은 그로스그로크너 3798m

3000m 고봉만 100여개이네

 

다뉴브강 동으로 흘러 전국을 적셔

라인강 엘베강은 북으로 가네

 

아름답다 빌렌도르프 비너스여

찬란한 할슈타트 켈트인이 이뤘네

로마 훈족 아바르 스라브 마갸르

그리고 게르만 바바리아 차례로 주인 되네

 

비엔나는 음악도시

낭만주의, 바로크, 궁정음악 꽃피우고

현대 음악 아우른다

베토벤,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하이든, 체르니,

잘즈부르크의 모차르트, 카라얀 나도 있소.

 

자유와 경건함은 우리의 덕목

근면한자 희망이 넘치나니

나가자 용감하게

새 시대를 향하여!

 

Land of Mountains and Rivers, Austria

 

East Kingdom, Austria

Heart of Europe

Being circled by eight countries

They've faced the turbulent tide of history without fear

 

Never look at us with sympathy for no sea

We have Neusidlersee, Attersee and Traunsee

More, Bodensee, too

 

How mystic, the superb Alps peaks

Highest Grossglockner being 3798m

More than one hundred peaks higher than 3000m

 

Danube flows east watering the whole land

Rhine and Elbe flows north, together.

 

How beautiful, Vinus at Bilendorf

How bright, the Hallstatt culture by Celts

Rome, Hun, Avar, Slav, Magyar

At last German Bavaria, they've been players

 

Vienne, the City of Music in the world

Romantic, Baroque, Court music bloomed

They are prominent at Modern music, too.

Beethoven, Strauss, Schubert, Hyden and Cherny

Mozart at Salsbourg,

It's me, Karayan, here I am, too

 

Freedom and devotion are our virtues.

Diligence will bring hope to us

March on bravely

For a new era!

 

1. 오스트리아 약사

 

선사시대부터 역사가 시작되어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이다.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할슈타트 문화의 중심이 되어 고대에 켈트족과 라틴족, 슬라브족이 이곳으로 오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인종이 형성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프랑크 왕국에 속해 있다가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설립된 행정관구인 오스트마르크(Ostmark)가 오스트리아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크 왕국에서 동프랑크 왕국이 분리되었고 후에 게르만 왕국을 거쳐 신성 로마 제국을 형성하며 발전하였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를 근거지로 성장하여 전 유럽에 걸쳐 강대한 세력을 형성시키고, 15세기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帝位)를 독점적으로 세습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왕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겸하였다.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으로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함께 당대 문화와 정치를 주도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갈라지게 되는데 1700년 초반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면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고 1740년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개입해 이탈리아 지역의 일부를 얻었으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양도한다. 이를 대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자로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가). 1804년,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승격하여 신성 로마 제국과는 다르게 국가를 수립하였고, 나폴레옹에게 패배함으로써 신성 로마 제국은 1806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민족들 간의 분쟁이 많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그 50년 동안 경제 성장과 근대화 및 민주화 개혁을 추진했다. 프로이센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패한 이후 발칸 반도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그 결과 1914년 6월 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을 암살한 사건인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14년 7월 28일에 세르비아 왕국에게 선전 포고함으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동맹국으로 참전하였으나 연합국의 승리로 패전되어 제국의 영토는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이탈리아, 폴란드에게 할양당하고 남은 영토마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로 나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사라지고 오늘날의 영토로 유지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제국은 해체되고 공화국을 선포하여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탄생했다.

 

1934년 제1공화국은 파시스트가 이 정권을 장악하여 오스트리아 연방국 성립으로 유지되었다. 1938년 3월 12일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로 진군했고 같은 해 4월 10일에는 오스트리아 병합을 선언했다.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에 나라를 되찾았으나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으로 유지됨에 따라서 나치 독일의 일부로 패전국이 되었기 때문에 1955년까지 연합군에게 분할 점령되었다. 1955년부터 현재까지 현재의 영토로 남아 1995년부터 유럽 연합의 회원국으로 있다. AIIB와 OECD의 창립 회원국이기도 하다.

 

2. 오스트리아에서 (1)

 

▲잘츠부르크 고성에서, 2006.6 (c)시사타임즈

나는 1991년 스위스에 업무차 출장 갔을 때 귀로에 오스트리아 들려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를 잠깐 여행한 적이 있다. 도시가 조용하고 아름다워 아내와 같이 와서 시간을 갖고 여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2006년에야 프랑스를 여행하고 독일 월드컵을 구경하기 직전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기회를 만들었다. 프랑스 여행을 몽마르트언덕에서 마치고 성심장 성당 계단에 앉아 아내에게 물었다. 시간이 4일 밖에 없으니, 핀란드, 스페인, 오스트리아 3나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아내는 주저 없이 오스트리아를 선택하였다. 허긴 음악 감상이 전공이고 취미이니--- 그러고 2시간 후에 아내와 나는 비엔나행 오후 6시 열차에 올라탔다. 타기 직전에 오스트리아 김성환 대사에게 내일 아침 9시에 비엔나역에 도착하여 전화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잘츠부르크)

 

그리고 열차에 몸을 실은 후, 긴 여정에 피로했던지 아내와 나는 기차 2층 칸에서 잠에 떨어졌다. 그런데, 잠결에 여기는 잘츠부르크라는 기내 방송 소리를 듣고 나는 잠에 빠져있는 아내를 깨워 가방을 급히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새벽 5시 반이었다. 예정에 없이 꼭두새벽에 잘츠부르크에 내린 것이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먼저 잘츠부르크 고성에 올랐다. 1077년에는 게브하르트 공의 명령으로 요새가 건설되었으며 15세기 후반에는 유대인들이 도시에서 추방된 역사도 있다. 1803년까지,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의 통치자였다.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도시’라는 말이며 19세기 까지는 암염체굴이 주산업이었다. 고성에서 보이는 시내풍경은 아름다웠다. 강이 시내 중심부를 흐르고,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빼곡하고 멀리 산이 둘러 있었다.

 

고성에서 내려와 대성당을 관람한 후 모차르트 생가를 방문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는 관심이 많아 피아노며 모차르트의 소품에 이르기까지 관심 있게 살펴봤다. 1770년에 태어나 37세에 요절한 모차르트의 곡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또한 잘츠부르크는 20세기 음악의 거장 카라얀 지휘자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우리는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 정원인 미라벨 정원을 구경하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바로 그 정원이다. 이 영화는 나치체제를 탈출하는 오스트리아 예비역 대령 가족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과 알프스를 배경으로 그리고 주옥같은 노래로 그려진 영화였다. 1969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상영되었을 때 나도 2번이나 보았지만, 나의 고교 친구인 김윤수는 12번이나 보았다. 그만큼 그 영화는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한참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정말 도레미송과 에델바이스 노래가 흘러 나왔다. 고 1 때 보던 Sound of Music 속으로 아내와 나는 빠져 들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에서 웨딩사진 촬영 중인 아름다운 예비신부와 신랑에게 축하해 주는 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그 예비신랑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한국여인을 직접 보니 아내에게 너무 아름답다고 그 아름다운 신부 옆에서 말해 주어 우리는 한참을 재밌게 웃었다.

 

▲영화 ‘Sound of Music’ 촬영지로 유명한 잘츠부르크 미라벨 공원에서 (c)시사타임즈

(비엔나 시내)

 

그리고 오후 4시 비엔나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비엔나 호텔에 예약하였다. 그리고 8시에 도착하여 김성환 대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 일이 잘못된 줄 알았다. 오스트리아 대사관에는 나의 이라크 전우인 정광진 참사관이 근무하고 있었다. 나의 비엔나 방문일정을 알게 된 정광진 참사관이 마침 토요일이라 아침 9시에 기차역으로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예정된 기차에서 나오질 않자 정 참사관은 실망하고 귀가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예정에 없이 잘츠부르크를 구경하고 늦게 오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고, 내일 아침에 만나자고 했다. 그러자 김 대사님은 이라크 전쟁터에서 근무하는 KOICA 소장을 고려하여 대사공관에 방 하나를 준비했다면서 기어이 공관으로 오라고 하며 조금만 역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30분 후에 정 참사관이 차를 가지고 기차역에 다시 나와 우리를 공관으로 안내했다. 대사와 참사관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정 참사관은 아르빌 근무 때에도 KOICA 인력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하더니, 비엔나에서도 나를 위해 수고가 많았다. 정 참사관은 부부 외교관으로 부부가 같은 공관에 근무한 첫 사례로 유명한 외교관부부였다.

 

당시 나와 이라크 아르빌에서 같이 근무하던 문승현 공사는 김 대사가 가장 아끼는 후배였는데, 외교부에서 근무하기를 가장 꺼려하는 이라크 아르빌에 자원하여 갔다면서, 외교부와 KOICA 그리고 자이툰 부대가 손발을 잘 맞춰 이라크 재건에 기여하라고 당부 말씀을 하였다. 김 대사와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어 사모님과 아내도 잘 아는 사이여서 둘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하며 즐거워했다.

 

▲비엔나에서 대사 사모님과, 2006.6 (c)시사타임즈

마침 다음 날이 일요일이어서 김 대사 내외분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 도시인 비엔나를 함께 구경했다. 유럽 제일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600년 이상 터전을 잡았던 이곳은 길모퉁이 돌 때마다 수백 년 된 멋스러운 건축물이 시선을 끌었다. 둘레 4㎞쯤 되는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도시 전체가 중세와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고 도시 절반이 녹색 지대인 친환경 도시라고 사모님이 설명해 주었다.

 

도심 중앙에 800년 전 지어진 슈테판 대성당이 있다. 높이 137m 첨탑과 25만개 벽돌로 이뤄진 모자이크 지붕을 가진 이 성당에서는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린 장소로 알려져 있다. 슈테판 대성당이 고딕 양식이라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인 벨베데레 궁전은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그림 한 점에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신부’를 비롯해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 등 그림이 전시돼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이 살았던 쇤브룬 궁전은 1441개의 방과 거대한 정원이 있는 곳이다. 강력한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된 그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과 초상화도 있었다.

 

무료 개방하는 쇤브룬 궁전의 정원에는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십여 갈래 오솔길이 있고, 도시 중심의 시립공원과 프라터 공원에도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비엔나는 카페 문화가 발달해 있었고, 우리나라만큼 카페나 레스토랑 그리고 편의점이 많았다. 달걀을 입혀 굽거나 튀긴 고기 요리 ‘슈니첼’과 초콜릿 케이크 등이 유명하였다. 빈의 커피 문화는 그 자체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00년 이상 커피나 음식을 팔아온 카페들이 즐비하다. ‘카페 첸트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트로츠키가 자주 와서 커피를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빈에는 우리에게 유명한 ‘비엔나커피’가 메뉴판에 없었다. 커피와 거품 낸 우유를 반반 섞은 부드러운 맛의 커피가 있었는데, 이 이름은 ‘멜랑쥐’였다.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수질 좋은 물로 만든 비엔나에서의 커피 맛이 유달리 맛이 그윽했다.

 

(베토벤 오솔길)

 

베토벤은 20대 중반에 청력을 잃기 시작했는데 30세가 넘을 무렵에는 그의 청력은 거의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때 청력회복을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로 가서 수년 동안 요양을 하였는데 절망에 빠진 베토벤에게 푸른 숲과 조용한 오솔길, 잔잔한 시냇물 등은 그를 세계적 대작곡자로 만들어 주었다. 이 오솔길은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엄마 같은 존재였고 그의 청각장애를 치유해주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베토벤은 1808년 여름에 ‘전원’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교향곡 6번 전원’과 교향곡 5번 ‘운명’은 거의 동시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교향곡이지만 이 두 교향곡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극히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교향곡 5번 ’운명’은 인간 그 자체를 표현한 남성적인 면을 갖고 있다면 교향곡 6번 ’전원’은 아름다운 대자연을 표현하였으며 여성스러운 느낌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향곡 5번 ’운명’은 집중적이고 응집된 작품이라면 전원은 자연의 주는 안정감과 풍요로움이 넘쳐흐르는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토벤 오솔길에서, 2006.6 (c)시사타임즈

지금도 비엔나 ‘하일리겐슈타트’에 가면 ‘베토벤강’이라는 유명한 오솔길이 있는데, 나는 1991년도에 그 길을 거닐며 정겨운 노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꼭 아내와 같이 오고 싶었다. 드디어 15년이 흘러 아내와 같이 이 베토벤강을 거닐었다. 왼쪽으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고즈넉한 오솔길이다. 이 오솔길 초입에는 베토벤을 기념하기 위한 조그마한 그의 동상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으로 포도농원이 줄지어 있다. 평지에서 저 언덕까지 온통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었다.

 

저녁노을에 솔숲 사이 이 오솔길에 들어서면 맑고 고요한 정기가 온 몸을 휘감는다. 길가 민들레 하얀 솜털 꽃씨 발길 따라 미풍에 실려 가볍게 숲을 흐르는 것이 보인다. 나는 베토벤처럼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바람에게 묻는다. 너 200년 전에 만난 베토벤을 기억하느냐고…….

 

한 구비 돌아 호젓한 길이 이어지고 숲속 오솔길에 베토벤이 걸어가고 있다. 잡초 같이 헝클어진 머리칼과 주름진 얼굴에 추억에 잠긴 눈동자…전원 교향곡이 들렸다.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흘러가는 흰 구름 소리도 들려오는 듯 했다. 세상을 초월한 영혼의 빛 소리, 마침내 낭만주의음악을 열어젖힌 위대한 음악가가 저기 걸어가는 듯 했다. 이 아름다운 곳을 산책하며 베토벤은 불후의 명곡을 완성했고, 아내와 나는 지금 그를 기억하며 그의 선율을 떠올리며 말없이 걷고 있었다.

 

베토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일리겐슈트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베토벤이 유서를 작성한 집이다. 빈 오페라 극장 앞에서 전철을 타고 한참 동쪽으로 가서 만나는 전철역 이름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30년 동안 비엔나에 살면서 30번 정도 이사를 하였다 한다. 그런데 이 집에서 유독 2번이나 살며 유서를 쓰기도 하였다.

 

{리히노프스키 공이 주신 악기들은 너희 중 하나가 보관해다오. 그러나 그 때문에 다투지는 마라. 돈이 더 도움이 된다면, 팔아 쓰도록 해라, 죽어 무덤에 누워서라도 너희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쁠 것이다. 죽음이 언제 오든 기쁘게 맞으리라. 내가 가진 예술적 재능을 모두 발휘하기 전에는, 설령 내 운명이 아무리 가혹하게 괴롭히더라도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음이여, 용감히 너를 맞으리니 언제든지 오라. 안녕히. 내가 죽은 후에도 나를 잊지 마라. 일생 동안 그 정도는 너희에게 해주었다.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너희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니 행복해라.

 

1802년 10월 6일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 카를과 요한에게 남기는 유서}

 

*베토벤은 둘째 동생 요한을 싫어해 그 이름을 쓸 자리를 그냥 비워두었다고 한다.*

 

나흘 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일리겐슈타트, 1802년 10월. 이것으로 너희에게 작별을 고한다. - 진실로 슬픔에 잠겨 - 그래, 이곳에 올 때는 어느 정도 치료되리라는 가슴 뛰는 희망이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가을 잎새들이 시들어 떨어지듯, 내 희망도 사라졌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그렇게 나는 떠난다. 아름다운 여름날에 샘솟던 용기도 사라져버렸다. 오 하느님, 제게 단 하루라도 순수한 기쁨의 날을 내려주소서. 가슴이 환희로 가득 차던 때가 너무나 오래되었습니다. 아 언제, 아 언제, 거룩한 분이시여, 자연과 인간의 전당에서 그 환희를 다시 맛볼 수 있을까요?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내가 죽은 뒤 읽고 실천해주기를, 동생 카를과 ……에게}

 

▲음악도시 비엔나를 배경으로 (c)시사타임즈

(20번째 나라 오스트리아 이야기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 iysong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