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칼럼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천지창조 하시었고, 마지막 날에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었다. 그리고 인간들로 하여금 세상 모든 만물을 다스리도록 권리를 주셨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싶다.
이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을 넘어, 하나님의 영역까지도 감히 넘보게 된다. 과학의 원리가 창조의 섭리까지도 넘어서는 것 보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성역까지도 넘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 만물이 천지에 존재하고 있는 가운데 인간은 우주선과 인공위성을 만들고, 큰 건물과 도로와 대운하를 건설하는 기술과 능력을 갖췄다. 현대의학과 건강복지. 체력향상 등이 도모하면서 인간의 수명도 늘어만 가고 있다.
세상에는 이처럼 인간의 기술발달이 도모되면서 하나님의 권능까지도 초월하는 것처럼 나타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후에는 반드시 죽게 된다. 석가도 죽었고, 소크라테스도 죽었고 중국대륙과 몽골의 넓은 초원의 광야를 호령했던 진시황과 징키스칸도 죽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해 있던 모든 경제계 백만장자 부호들도 재력으로 자기의 생명을 살릴 수 없었다. 이는 때가 되면 죽는다는 원리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만의 신을 찾는다. 그 신을 앙망하면서 자기의 꿈과 소망과 행복을 바라는 것은 바로 신앙이 자기중심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교가 많은데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많은 종교가 저마다의 교리를 갖고 신앙심을 불태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별히 어떤 특정종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의 일부시대처럼 불교를 국교 로 정할 때도 일부 있었지만 이것은 왕과 지도자의 신앙의 뜻에 따라서 국교가 좌우됐던 왕도정치 시대의 일 이었다.
인간은 본래 아름답고 착하고 선하게 성경에 보면 하나님 품성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기술되어 있지 않은가? 어떤 특정종교라고는 하지 않겠다.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우리 나라 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했다. 내가 기독교를 선택 할 수 있고, 불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자기가 선택하고 열심히 그 종교에 심취하는 것은 바로 올바른 신앙의 자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신앙인 이기전에 종교는 양심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직언하고 싶다. 말 그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양심에 의거해서 선하게 생활해야만 자신이 참된 신앙인으로서 올곧음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종교인으로서 많은 언론에 오르내리는 곱지않은 신앙인들의 일탈을 보면서 과연 이 사람들이 신앙인으로서의 본질을 갖고 있을까 라는 강한 의구심이 머릿속에 남는다. 타인이 생각컨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한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할까? 앞서 직시한데로 신앙인은 신앙인이기 전에 책임질 수 있는 양심과 마음을 간직해야 된다. 모든 종교를 망라하고 악한 길을 인도 하지는 않는다. 선을 행하면서 사람의 약한 마음을 강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신앙의 원리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공통된 해석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약한 부분을 강하게 인도하는 것이 절대자의 권능과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인은 첫째도 타의 모범과 타의 귀감이 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일까. 그것은 바로 절대자들이 인간에게 추구 하는 참된 사랑이다. 수렁에서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건져주어 살려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나보다 남을 위하여 나의 열정과 땀을 쏟아내는 게 바로 조건 없는 참사랑이다. 이러한 사랑도 없이 신앙만 추구한다면 이는 진정한 신앙인이 아닐 것이다. 사랑 다음으로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덕이다.
남에게 덕을 끼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지만 덕은 쌀 한톨이 중요한 사람에게 내게도 부족한 쌀을 가난한사람에게 주는 것이 바로 덕을 준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사랑과 덕을 갖고 있으면서 타의 모범과 귀감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진정한 참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일부분 신앙인들 중에는 종교를 갈아타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자유다. 자기만이 갖고 있는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개종할 수 있다. 개종도 양심이 뒤따른다. 개종했다 해서 정죄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신앙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개종을 할 수 있다. 개종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개종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믿었던 종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목회자와 지도자가 맘에 들지 않아서, 상대의 종교가 구원이 있는 것 같아서 등 다양하다. 자신이 다녔던 교회, 성당, 절 등에 손가락질을 하고, 심한 막말을 한다든지, 볼썽사나운 행동과 태도를 하면서 개종 한다든지, 타인이 강제로 개종을 강요해서는 범죄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신앙은 자신의 내적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이지, 남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신앙인은 언제까지라도 책임과 양심이 뒤따른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대목이다.
결론을 이렇다.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는 내 종교가 귀하면 남의 종교도 귀하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양심과 행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올바른 신앙인은 누구 에게나 존경을 받고 이웃에게 사랑과 덕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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