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마라톤, ‘제2의 정봉수 감독’ 나와 새로운 도약할 때
[시사타임즈 = 김원식 스포츠 해설가] 정봉수 감독(1935-2001)은 한국 마라톤이 발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명, ‘신기록 제조기’다. 그는 1953년 한국전쟁 중 군에 입대하여 장기 하사로 근무하며 육군 원호단(상무 육상팀) 감독을 역임했다. 1987년,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의 지원 아래 코오롱 마라톤팀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15년간 팀을 이끌었다. 1990년대 황영조,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 지영준 등 굴지의 선수들이 그의 지도 아래 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암흑기에 있던 한국 마라톤을 광명으로 이끈 것이다.
‘독사’라는 별명을 가진 정봉수 감독은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과 식이요법 등 철저한 규율을 지키기로 유명했다. 한때 선수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마라톤팀을 이탈해 혼돈에 빠진 적도 있다. 훈련 방법을 배우려는 외국인이나 전문가들에게 정봉수 감독은 신비의 대상이었고, 세계 마라톤계에서는 숭배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2년 한국 마라톤이 침체기를 겪고 있을 때, 정봉수 감독과 코오롱 그룹의 이동찬 회장이 만나 의기투합했다. 이동찬 회장은 선수들에게 파격적인 포상을 내걸었다. 대회에 출전해 2시간 10분의 기록을 깨는 선수에게 1억 원, 2시간 15분 기록을 깨는 선수에게 5천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1984년 3월 18일에 열린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이홍열이 2시간 14분 59초를 기록해 마의 15분 벽을 허물면서 단 1초 차이로 포상금 5천만 원까지 거머쥐었다. 이 기록은 10년 동안 깨지지 않던 한국 신기록으로 한국 마라톤에 새 바람이 되었다.
포상금 이벤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이어져 선수들에게 큰 동력이 되었다. 드디어 1992년 2월 일본에서 개최된 벳푸 오이타 마라톤 대회에서 황영조가 2시간 8분 47초의 기록으로 10분 벽을 깨면서 포상금 1억 원을 지급받았다. 이후 한국 마라톤은 일약 도약하여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을 했고,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하는 등 한국 마라톤의 저력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올림픽의 꽃’ 마라톤은 그 어떤 반칙이나 편법이 통하지 않는 종목으로 온몸으로 전 과정을 빈틈없이 관통해야 한다. 그 어떤 물리적인 공간, 시간적인 여백도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마라톤이다. 그래서 훈련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정봉수 감독은 마라톤에 관련된 많은 서적과 비디오테이프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연구에 매진하였다. 훈련에 스포츠 과학을 꼼꼼하게 접목해 선수의 잠재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다양한 환경과 코스 등을 대비하였다. 점점 빨라지는 세계 마라톤 기록 앞에서 한국 마라톤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2의 정봉수 감독’이 절실하다. 한국 마라톤이 긴 밤에서 깨어 우렁차게 일어날 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글 : 김원식 스포츠 해설가
前 올림픽 마라톤 국가대표(1984년 LA 올림픽 마라톤 출전)
前 MBC ESPN 마라톤 해설위원
現 전남 함평중학교 교사
現 제주 MBC 마라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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