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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489)] 의식



의식(Rituelen)

저자
세스 노터봄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4-05-0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거장 세스 노터봄의 구심점이 되는 작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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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489)] 의식

세스 노터봄 저 | 김영중 역 | 민음사 | 284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유럽 문단의 대표적인 지성 세스 노터봄. 그는 1955년 스물둘의 나이에 첫 소설『필립과 다른 사람들』을 발표하자마자 문단의 일약 스타로 올라서며 화려하게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과 시, 희곡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산티아고 가는 길』 등 여행 작가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의식』은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1963년『기사는 죽었다』 이후 이십여 년 만에 쓴 소설이라 특히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보다는 여행기로 이름이 높아가던 때 발표한 이 소설은 세스 노터봄을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작가가 아닌 거장의 반열로 올려놓으며 그의 작가 생활에 큰 획을 그었다.


『의식』은 동서양의 대표적 의식(儀式)인 가톨릭교의 미사 전례와 성찬식, 그리고 다도를 소재로 하여 세계 대전, 한국 전쟁, 경제 공황과 경제 발전, 신자유주의, 히피 운동, 환경 오염 등 20세기의 거대한 역사를 아우른다.


노터봄은 이 소설에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암스테르담 한복판으로 독자를 이끌고 들어가, 사회 적응을 거부한 채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으며 방황하는 인니, 아르놀트, 필립 세 남자의 묘한 인연을 보여 준다. 물질적인 발전이 정점을 이루었던 시대, 발전에 뒤따르는 성찰의 부재로 인해 정신적인 결핍을 겪으며 대안을 찾아 나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강렬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담아 낸『의식』은 끝없는 레일 위를 빠르게 질주하듯 보낸 지난 세기를 반성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비사회적이고 무능력한 청년 인니 빈트롭은 집안과 절연한 채 학교도 퇴학당하고 잡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고모 테레제가 그를 찾아와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유산 상속 과정에서 만난 고모의 옛 연인 ‘아르놀트 타츠’라는 남자는 그의 새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젊은 시절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전쟁을 겪으며 인간 세상을 혐오하게 된 아르놀트는 현재 세상일에 거리를 두고 지내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인니에게 모든 경험과 감각을 기억 속에 뚜렷이 기록해 둘 것을 가르쳤고, 그의 서양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판 의식과 실존주의적 입장에 젊은 인니는 큰 영향을 받는다. 노터봄은 아르놀트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를 비관하고 극단적인 인간 혐오주의에 빠져 은둔해 버린 지식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낸다.


모임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르놀트는 가톨릭교에 대해 신부와 격앙된 토론을 하고, 인니는 그 상황을 피해 고모의 집 하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그 쾌락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다. 이런 도피 방식은 이후 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데, 일시적인 쾌락을 통해 현실을 잊는 방식의 태도는 에피큐리언적인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 유산 상속 후에도 인니는 가끔 아르놀트 타츠와 편지를 주고받지만, 어느 날엔가 테레제 고모에게서 그가 예전부터 꿈꿔 온 대로 산속에서 얼어 죽는 방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 이후 서양 사회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한 사건들을 겪었다. 이것은 동시대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적, 내면적 후유증을 남겼다. 전후 20세기의 문학 역시 실존주의 소설에서 출발해 칙릿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와 인간을 묘사해 왔다. 그중에서 노터봄은 지나간 20세기를 엄중한 시선으로 뒤돌아보며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사회 속 개개인의 정신적 피로와 공허에 대안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가톨릭 제례나 다도 같은 종교적, 사상적 의식, 혹은 섹스라는 육체적 의식에 기대어 해답을 갈구하는 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지난 세기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빈곤했는지를 뼛속 깊이 느끼게 된다. 노터봄은『의식』에서 문학적 허구를 통해 역사의 흐름 속 개인의 정신적 고뇌를 치밀하고 고상하게 풀어내는 대가의 면모를 보여 준다.



작가 세스 노터봄 소개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네덜란드의 대표 작가다. 1933년 7월 3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다. 가출한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중 헤이그 시내에 집중 투하된 폭탄에 맞아 사망한 후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의붓아버지에 의해 가톨릭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졌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가출을 일삼는 등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이때부터 문학적 기질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파리로 건너간 이후 이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정처 없이 방랑하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1955)을 출간했다.


이 작품의 발표 직후 안네 프랑크 상을 수상하면서 세스 노터봄은 스물둘의 젊은 나이에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색다른 경험은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죽음, 세계와 자아의 내면 성찰, 현실과 이상과의 관계 탐구 등 뚜렷한 작품 주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부루아에서의 어느 오후』(1963), 『베를린 수기』(1990), 『산티아고로 가는 길』(1992) 등 여러 편의 여행기를 출간했다.


시와 소설, 에세이와 여행기, 희곡과 시사평론, 샹송의 작사와 번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글을 두루 써 온 노터봄은 1982년 미국의 페가수스 상을 비롯하여 유럽 문학상(1993), 독일의 괴테 상(1992), 네덜란드의 페이 세이 호프트 상(2004)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1991), 문학예술훈장(2003) 등을 수여받았다. 또한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미국 현대 어문협회의 회원으로 임명되었는가 하면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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