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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814)] 스윗 프랑세즈

[책을 읽읍시다 (814)] 스윗 프랑세즈

이렌 네미로프스키 저 | 이상해 역 | 문학세계사 | 544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스윗 프랑세즈』는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작가 이렌 네미로프스키가 전쟁과 박해를 피해 피신했던 한 시골 마을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또렷이 의식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구상하고 집필한 역작이다.


1942년 겨울, 2차 대전 당시 나치 괴뢰 정권 치하의 프랑스, 한 유대인 소녀가 황급히 가방을 싼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끌고 간 프랑스 헌병들이 이제 그녀와 동생을 잡으러 오고 있다. 어서 달아나야 한다. 잠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던 인형을 챙기던 아이의 손길이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는 곧 인형을 포기하고 엄마가 깨알 같은 글씨로 뭔가 열심히 채워나가던 공책을 가방 깊숙이 감춘다. 수도원과 지하창고를 전전하며 보낸 도피생활. 종전과 해방, 그리고 60년의 세월. 끝내 돌아오지 않은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그 공책을 꺼내 쓰다듬던 소녀는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됐다. 그리고 긴 망설임 끝에 마침내 미완성으로 남은 엄마의 유고작인 『스윗 프랑세즈』는 기적처럼 세상에 나왔다.


62년 전에 씌어진 작품이 망각의 서랍에서 기적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난해 프랑스 문단은 커다란 감동과 충격에 휩싸였다. 광기로 가득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그 시공 속의 부끄러운 한 단면을 복원시킨 이렌 네미로프스키의 『스윗 프랑세즈』는 역사의 수렁에 빠진 한 시대를 통찰하고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까지도 그려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버금가는 대서사시였던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이 작품에 대해 프랑스 문단은 르노도상을 수여한다. 생존작가에게만 수상 기회를 주는 관례를 깨고 사망한 작가에 문학상이 수여되는 첫 사례가 된 순간이었다.


저자는 1940년의 집단 탈주와 독일군에 의해 점령된 한 시골 마을의 묘사를 통해 패망하는 프랑스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프랑스인들이 펼치는 ‘인간 희극’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제1부 「6월의 폭풍」은 1940년 6월 파리가 함락되기 직전 앞다투어 피난길에 오른 다양한 인물들의 행로를 실시간 생중계하듯 추적함으로써 전쟁의 실상과 부조리,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맞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진면목을 그려나간다. 도도한 부잣집 마나님, 출세지향적인 소설가, 이기적인 탐미주의자, 자수성가한 은행가, 허풍만 남은 귀족 등, 소위 가진 자들은 전쟁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자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때로는 비굴하게, 또 때로는 파렴치하게 살아남는 일에만 몰두한다.


못 가진 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기존질서의 붕괴를 틈타 혁명을 꿈꾸고, 가진 자의 것을 강탈한다. 마땅히 자신들이 누려야 할 것이라고 정당화하며.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먼저 눕고 먼저 일어서는 풀잎의 지혜와 용기로 묵묵히 시련을 견뎌내는 은행 하급직원 미쇼 부부만이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번뜩이는 유머와 아이러니로 때로는 재미있게, 또 때로는 섬뜩하게 전쟁의 파노라마를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제2부 「돌체」에서는 한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전쟁이 파고든다. 그들에게 전쟁은 적과의 동거라는 형태로 다가온다. 하지만 전장으로 불려간 아들, 남편, 오빠, 동생 대신 당당하게 마을로 들어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적에 대해 마을 주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혼란스럽다.


독일군은 침략자인 동시에 그들과 다름없는 인간, 공포와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 전쟁의 도구인 동시에 희생자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골 마을을 무대로 당시 프랑스를 둘로 갈라놓았던 정치적 선택, 협력과 저항을 둘러싼 계층간의 갈등을 증언하고, 집단 광기에서 비롯된 전쟁이 개인들의 관계를, 그들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보여준다.


부록으로 첨부된 메모와 집필 계획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성찰, 그녀가 탐구하고 구상했던 소설 기법, 전체적인 줄거리의 대강이 드러나 있다. 또한 서신 모음은 작가가 체포될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과 작가의 남편 미셸 엡스타인과 지인들이 작가를 구하기 위해 기울인 눈물겨운 노력이 슬프도록 상세히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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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