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45)] 23. 불가리아(Bulgari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45)] 23. 불가리아(Bulgaria)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 국기 > 위로부터 하양·초록·빨강의 3색기. 하양은 자유와 평화를, 초록은 삼림을, 빨강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피를 의미 < 국장 > 빨강 방패 안에는 왕관을 쓴 금색 사자, 위는 왕관, 양쪽에는 왕관을 쓴 금색 사자, 아래에는 참나무 가지와 열매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동부 유럽 발칸반도의 남동부에 있는 나라로서 북쪽은 루마니아, 서쪽은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쪽은 그리스와 터키, 동쪽은 흑해에 접해 있다. 수도는 소피아다. 터키의 동유럽 진출 통로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1396년부터 500년간 오스만투르크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1878년 러시아· 투르크 전쟁 결과 자치공국이 되었고 1908년 불가리아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1945년 공산당이 집권하고 1946년 왕정제를 폐지하여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1989년 동유럽 민주화의 영향으로 1991년 신헌법을 채택하여 불가리아 공화국이 되었다. 불가리아 정교회가 82.6%, 무슬림이 12.2%, 개신교가 1.1%, 가톨릭이 0.8%이다.

 

The Republic of Bulgaria in Southeast Europe is bordered by Romania to the north, Serbia and Macedonia to the west, Greece and Turkey to the south, and the Black Sea to the east. The capital and largest city is Sofia. Bulgaria is a member of the European Union, NATO, and the Council of Europe. The topographical features are the Danubian Plain, the Balkan Mountains, the Thracian Plain, and the Rhodope Mountains. The southern edge of the Danubian Plain slopes upward into the foothills of the Balkans, while the Danube defines the border with Romania.

 

1. 국명(Country) : 불가리아 (Bulgaria)

2. 수도(Capital) : 소피아 (Sofia)

3. 면적(Territory) : 110,994㎢

4. 인구(Population) : 7,250,000명

5. 국민소득(GNI) : US$9,120불

6. 언어(Language): 불가리아어 (Bulgarian)

7. 독립일(Independence): Sept 22, 1908년

 

발칸반도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여

 

동유럽 남단에

흑해를 동쪽에 끼고

중앙에 발칸산맥 동서로 달려

국토를 남북으로 가른다

 

북은 다뉴브강 동서로 흘러

도브루자평원 적시고

남은 로도피산맥 무살라산 품고

삼림지대 푸르구나

 

681년 볼가불가스왕국 건설

동로마 터키 독일 쏘련 오간 후

드뎌 1989년 푸른 혁명

불가리아공화국으로 거듭 나다

 

푸르구나 숲정원 도시 소피아

거리마다 악사들 나그네를 반기고

비토샤광장에 레닌 대신 성 소피아

오른손에 월계수 왼손엔 올빼미

지혜 평화 승리를 외친다

 

싸빠레바바냐에서 리프트 반시간

천하절경 세븐레이크

호수 7개 길 트레킹

금강산 상팔담만이 나의 친구다

 

중세도시 벨리코 투르노보에 가보자

무너진 성터, 옛 영광 말해주고

랄라수도원 예수탄생교회 성모승천교회를 품고

불가리아정교를 고고히 지켜왔다

 

비만 물렀거라 불가리스 요구르트 여기 있소

장수촌 여기저기 건강백세 기본이요

99세 처녀 붉은 장미 머리 꽂고

100세 총각 사랑노래 부른다

 

영원하라, 발칸반도 붉은 장미, 불가리아여!!!

 

 

Balkan's Red Rose, Bulgaria

 

In the southern tip of Europe

Holding Black Sea to the east

Mts Balkan runs east to west in the middle

Dividing the land, south and north

 

River Danube flows east to west

Watering Plain Dobrudja in the north

Mts Rodofi hugging Mt Musala of 2925m

How thick, the forests in the south

 

In 681, Kingdom Volgabulgas established

Since then, East Romans Turks Germans and Soviets came

In 1989 at last Green Revolution brings Bulgaria Republic

 

How green Sofia, City of Forest Gardens

Where street musicians greet travellers

St Sofia instead of Lenin at Vitosha Square

With laurel in right hand and owl in left hand

Shouting wisdom, peace and victory

 

Half hour lift-riding at Sapareva Banya

What a picturesque sight, Seven Lakes there

How fantastic Trekking along it

Only Mt Diamond in Korea is my match

 

Let's go to Veliko Tarnobo, the medieval city

Fallen forts tell the old glory without words

Monastery Rila with Nativtiy Church and Mary's Assumption Church

How loftly they have kept Bulgarian orthodox

 

Get away fatness, Bulgarian yogurts are here

Longevity villages here and there

Healthy 100 years is a basic

100-years lad sings a love song

To 99-years lass with a red rose in the hair

 

Be forever, Rose of Balkan Peninsular, Bulgaria~~~

 

1. 불가리아 약사

 

665년에 불가리아인들이 불가리아의 조상이라고 하는 고대 불가리아를 세우고, 681년에 아스파루흐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군주로 즉위하고 국호를 볼 가불가스왕국이라 하였다. 10세기 초에는 불가리아 제국의 시메온 1세 황제가 5차례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할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떨쳤으나, 1395년~1879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879년에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 태에서 불가리아 공국 수립되고, 1908년 9월 22일에 불가리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13년에 제2차 발칸전쟁의 패전으로 도브루자를 루마니아 왕국에, 마케도니아 지방을 그리스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에 할양하고,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에 가담하여 약 34만 명의 불가리아군 전사하고 패전하여 서트라키아를 그리스에 할양하였다. 1944년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중립국이 되고, 소련군의 침공으로 9월 9일, 조국 전선 정부(후에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가 수립되어 나치 독일에 선전 포고하고 연합국으로 전환하였다.

 

1947년에 시메온 2세(훗날 불가리아 공화국 총리 역임. 2001년~2005년)가 소련군에 폐위당하여 공산국가인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출범하였다. 1989년에 35년 동안 불가리아를 통치한 토도르 지프코프 공산당 서기장이 퇴진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민주화되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의 유혈 혁명과 구분지어 ‘푸른 혁명’이라고 부른다. 2007년 1월 1일에 루마니아와 함께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였다.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48년, 대한민국과는 1990년 3월 23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에 불가리아는 186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그해 11월에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불가리아 상공회의소는 상호무역사무소 개설에 합의하였으며, 1989년 4월에는 소피아에 7월에는 서울에 양국 무역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90년에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1994년에 문화협정, 1995년 항공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1996년 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불가리아에 진출한 대한민국 기업으로는 삼성물산, LG전자, 현대중공업, (주)아이피에스 등이 있다. 양국에 각각 상주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현재 약 200여 명의 한국인이 불가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2. 불가리아에서

 

공산주의 국가에서 1989년 푸른 혁명으로 민주국가로 태어난 나라, 장미의 나라 그리고 장수의 나라로 알려진 불가리아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겐 여전히 먼 나라가 불가리아였다. 그런데 2017년 11월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외치며 유라시아 횡단 대장장애 나선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세르비아 중반을 넘어 달릴 때부터 불가리아는 1달간 서울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김수임 가족 8명이 평화마라토너를 응원하기 위하여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세르비아까지 차를 몰고 김치와 우족탕을 싣고 달려온 것이다.

 

김수임 가족은 페이스북에서 평화마라토너의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그 목적과 도전정신에 감격하여 생업과 학업을 중단하고 그를 응원하러 500km를 찾아 온 것이다. 그때 평화 마라토너는 출발한 지 80여일이 지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영양상태가 나빠 첫 위험한 고비를 맞은 시점이었다. 그 응원단에는 네팔에서 산악인에게 안마를 해주는 양준호 이사도 있어서, 평화마라토너에게 큰 힘이 되었다. 김수임의 조부는 독립투사였으며, 그 가족은 네팔과 불가리아에 터를 잡은 해외동포였다. 그 가족은 2014년도에 김철한 감독의 “아리랑”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김수임의 동생 김나라가 주연을 맞고, 그녀의 부모님과 온 가족이 조연으로 열연하는 등 가족의 명운을 걸고 올인하였다. 영화는 완성되고 시연을 했으나 당국의 집요한 상영 불허로 많은 시민이 보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영화는 2012.12월 대선을 안기부의 조직적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 영화로 유명하다. 2014년도는 우리 일반국민에게는 최순실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시기이고 2016년도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데, 그러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수임 가족은 소피아에 거주하는 집을 살 때, 건축연도가 1905년이라는 것을 알고, 한 푼도 깎지 않고 매입하고, 바로 담벼락에 커다란 글씨로 “1905년 을사늑약 무효”라고 적어 소피아 시민들에게 일제침략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김수임 가족은 평화마라토너를 2주일 동안의 불가리아 구간만 차량으로 따라가며, 음식수발하며 응원할 생각이었단다. 그러나, 그가 너무 자랑스럽고 보고 싶어, 세르비아 깊숙이까지 마중 나왔으며, 불가리아 전 구간은 물론 터키에 들어와 보스포러스를 넘어 이스탄불을 지나 아시아의 땅끝 우스크다라까지 32일을 응원하며 음식수발을 하고 응원을 하였다. 그러한 날마다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카톡을 통하여 문자로 영상으로 평화마라토너를 응원하는 지구촌 각처의 수만의 응원객들에게 전파되어 불가리아 소피아가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는 평화마라토너가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하여 3-4천km를 주파하는 과정이었으나, 단신으로, 생필품 80kg을 쌍둥이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달리고 있었다.

 

하여튼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는 천신만고 끝에 15,000km를 달려 16개국을 주파하여, 2018.10.6. 중국 단동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북녘땅 입경허가를 받지 못하고, 압록강을 건너지 못해, 신의주-평양-개성-판문점-서울 구간 달리기는 훗날을 기약하였다. 그와 나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북녘땅 입경허가를 기원하는 천제를 올리고, 그는 강은도 교무와 함께 배를 타고 11.15일에 강원도 동해에 도착하였다. 바로 그와 나는 동해-고성-휴전선-임진각까지 500km를 함께 달려, 2018.12.1.일에 경기도 도청의 이재명 지사님을 대신한 이화영 평화부지사님과 많은 시민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훗날 평양에서 휴전선을 넘어 광화문까지 달려오면, 박원순 서울 시장이 삼송리로 마중나와 10km를 우리와 동반주하며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서울시 주관 성대한 환영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는데…….

 

 

3. 불가리아를 달리며 –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 La Maritza 강변과 대동강변의 추억 >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실비 바르탕의 ‘마리차 강변의 추억’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면서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내가 마리차강이 아직 계곡물에 불과할 때부터 그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며칠을 달리면서 흥얼거렸듯이 말이다. 이 노래를 전체적으로 따라 부를 수는 없었지만 이 후렴구를 흥얼거리노라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해지곤 했었다. 실비 바르탕의 감미롭고 우수에 찬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마리차강’은 늘 몽상에 사로잡혀 살던 소년에게 피안의 강이었다. 그 소년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서 아직도 소년 같은 체력으로 소년 같은 꿈을 안고 그 강변을 달리고 있다.

 

“센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마리차는 나의 강이다. 내 나이 열 살일 때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지, 그 흔한 인형도 없었고, 어린 시절 추억은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지, 아버지가 낮은 소리로 흥얼거리는 후렴구 밖에는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내 강의 새들은 우리 모두에게 자유를 노래하고 있었지!” 그녀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외곽 산골 마을 이스크레츠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던 해에 소련의 침공으로 불가리아는 공산화되었다. 8살 때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내 아버지의 가족이 공산주의를 피해 남한으로 야반도주하다시피 이주했던 것처럼. 그녀의 어린 나이에 고국을 등져야 했던 회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음악이다.

 

그녀의 가슴에 마리차 강물이 언제나 애처롭게 흘렀듯이 공산주의를 피해 남한으로 온 내 아버지의 가슴엔 대동강물이 평생을 격랑을 일으키며 흘렸다. 잠시 피해있으면 모든 것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갈 줄 알고 기다리다 못내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회상과 시(詩)를 통해서 대동강도 나의 마음에서 흐르며 나의 강이 되었건만 눈을 뜨면 대동강은 여전히 피안의 강으로 남아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해 11월 불가리아에서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1990년 7월 민주주의 신헌법이 채택되고 그해 10월 마침내 실비 바르탕은 38년 만에 고향 불가리아를 방문해 소피아 국립극장에서 벅찬 가슴을 누르며 억지로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었다. “센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마리차는 나의 강입니다.” 8살 때 프랑스로 아버지를 따라 망명해서 17살에 이미 프랑스의 아이돌 가수가 되었던 그녀에게도 세느강은 당신의 강이었고 마리차강은 나의 강이었다.

 

소피아를 벗어나서 첫날은 42km를 달리고, 끝마칠 시간쯤 가진이네 식구들이 차로 달려와 그 차를 타고 그 집으로 가서 자고 와서 다음날 어제 마친 지점까지 와서 다시 뛰고 둘째 날도 그렇게 했다. 셋째 날은 그러기엔 너무 멀어 근처의 허름한 여인숙을 찾아야 했다. 발칸산맥 산자락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왔고 이 마을은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마리차강이 시작되는 깊은 산속 마을이었다. 숙소를 찾느라고 동네 꼬마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여남은 명이 쭈르르 앞장서 간다. 아이들을 따라 좁은 골목길을 몇 번 꾸불꾸불 갔더니 허름한 여인숙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이 신기한 듯 가지 않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며 놀다 주인에게 쫓겨나간다. 아이들은 마리차강을 가슴에 품고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김수임 가족, 양준호 이사와 평화마라토너, 2017.11 (c)시사타임즈

 

 

간혹 만나는 숲속 마을들의 흙벽돌 집들은 가난하여 작고 허름하지만, 풀을 뜯는 양 떼와 목동의 모습에서 걱정과 근심을 읽어내기란 하루 42.2km씩 달리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마리차 강변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나를 멀리서 발견하고는 달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깡충 걸음으로 함께 달린다. 아이들의 뒤에는 개도 두 마리 신이 나서 쫓아오고 있었다. 몸이 가벼운 아이들은 내 정도 속도의 달리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지구력이 없다. 쌀쌀한 날씨에도 티셔츠가 땀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는다. 내 티셔츠 한가운데는 한반도기가 그려져 있다. 가슴에 있는 한반도기가 내 열정을 태운 땀에 절었다.

 

▲평화통일 소녀 김어진과, 2017.11 (c)시사타임즈

 

녀석들의 얼굴에는 흙이 묻어있고 몇몇은 코를 질질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중에 허름한 뉴욕양키스 모자를 쓴 아이가 골목대장인 것 같다. 녀석은 제법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One Korea!” “One World!”를 외치라고 제의하자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멈칫했다. 골못대장이 뭐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선창하자 우리는 함께 “One Korea, One World!”를 함께 외치게 신나게 마리차 강변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다시 흙벽돌 집이 너덧 채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날 때 물건이라야 별 것 없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좁은 가게에 아이들도 따라 들어왔다. 가게 안에는 뜨네기가 반갑지 않은 쥐들의 불편한 움직임이 더 많았다. 과자를 사서 먼저 내가 하나 꺼내 먹고 아이들에게 한 봉지씩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어린 염소 높이 깡총깡총 뛰듯이 통통 통 뛰어 왔던 길로 사라져 간다. 녀석들 작별인사나 나누고 가지! 아마 실비 바르탕이 ‘마리차 강변의 추억’을 부르던 나이가 되면 이 마리차강을 추억하며 오늘 나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뛰어갔던 일을 생각하며 웃음 지을 것이다.

 

 

나는 단풍이 곱게 물든 마리차 강변을 대동강을 가슴에 품은 또 다른 가족과 함께 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상관없이 “평화 통일”이란 구호를 외치며 달리고 있다. 불가리아 전통 음악의 한 장르는 아카펠라와 비슷한 무반주 여성 합창 음악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이다. 여성 특유의 발성과 비브라토가 영성을 자극하는 불가리아 음악의 특성을 보여준다. 불가리아 산악지역에서는 음악이 일종의 의사 소통 수단으로 느린 저음의 신비로운 리듬을 탄다. 석양 무렵 새들이 모두 희망의 나래를 펴고 힘차게 솟아오르며 지지배배 노래할 때 나도 이들과 함께 대동 강변을 힘차게 달리고 싶다. 내가 혼자 달리며 외롭고 힘들어 지쳐 쓰러져 갈 때 일으켜 세워주고 힘을 준 이들과 마리차 강변의 달린 일들이 추억이 되었을 때 그 후렴구를 같이 흥얼거리며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함께 달리고 싶다.

 

플로브디프, 마리차강의 운치를 품어 안은 불가리아 제2의 도시이다. 오랜 역사의 제2의 도시다운 풍모를 갖췄다고 느껴지진 않아 조금 아쉬웠다. 이곳에 원형극장 일부의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 고적 탐사대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 아니었으므로 미련 없이 지나쳤다. 이 도시는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점령되면서 이름도 필리포의 폴리스라는 의미로 필리포폴리스로 불리다 플로브디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의 고도의 무너진 산성에서 평화를 지키다 쓰러진 옛사람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동양에 가까워 로마의 원형극장이 있는가 하면 오스만의 유적지인 금요 모스크와 성 엘레나 교회와 성 마라나 교회 등 동방정교의 교회들이 함께 있다. 이제 서양 평화 순례길이 마무리되어간다. 이제 며칠 후면 터키로 들어간다. 서양의 정신과 문화의 근간은 기독교이다.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된 것은 시대적 배경이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예수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가 활동하던 1, 2세기는 로마제국의 황금시대이다. 그 시절 전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 평화가 찾아왔다.

 

인류 역사상 드물게 찾아온 평화가 기독교 포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왕래는 자유롭고 여행은 비교적 안전했다. 사람의 왕래가 자유스러우면 문화와 종교와 사상의 교류가 자유로워진다. 아쉽게도 이런 평화는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유럽의 시각으로 교육을 받아와서 그리스 정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스 정교에서는 ‘정통’을 가톨릭에서는 ‘보편’을 강조하였다. 두 종파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다가 1054년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 뒤 비잔틴 제국과 동유럽 문화의 중요한 바탕이 된 그리스 정교는 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제례 의식을 보다 중시하며, 자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의 권위가 그리 대단치 않고 나라별로 자립화가 되었다. 그리스 정교는 그 후 발칸반도에서 러시아로 넘어갔다. 지금은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러시아 등에서만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정교 국가들은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에 걸쳐 모두 오스만튀르크에 정복을 당하게 된다. 이들 국가는 서구 여러 나라의 지원을 받아 몇 번이나 오스만군과 결전을 벌이지만 번번이 대패하고 말았다. 이들 나라가 터키로부터 완전 독립을 이룩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이다. 이들은 암울한 식민시대에 그리스 정교를 민족 고유문화로, 동질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누구나 가슴 속에 흐르는 강을 품고 살아간다. 센강이 에디트 피아프의 강이라면 마리차강은 실비 바르탕의 강이다. 대동강이 아버지의 강이라면 한강은 나의 강이다. 실비 바르탕의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후렴구가 있었다면 나의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긴 한숨 같던 후렴구도 있었다. 대동강이 그립던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을 데리고 가까운 한강을 가곤 했다. 거기서 낚시도 하고 물장구도 치고 아름다운 돌도 주으러 다녔다. 그리하여 한강은 나의 강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강은 되지 못했다. 한강에 가서 고기 잡고 물장구치고 보트를 타던 어린 시절의 기억뿐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에는 주말이면 왕숙천이나 뚝섬, 여의도를 달리면서 유라시아횡단 마라톤 준비를 하던 강이다. 내 기억 속의 한강은 평화의 강이기도 했지만 일순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거친 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거슬러 올라가고픈 곳은 태어나가도 전에 유전자의 어느 곳을 타고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대동강 어느 기슭이다. 눈물은 입을 틀어 막아도 새어 나오고, 그리움은 가두어 놓아도 담을 넘는다. 평화는 소리도 없이 강을 넘고 철조망을 뚫는다. 다소 느리긴 하지만……. 내 달리기는 그리움을 찾아 나선 맹구의 모험 같은 것이다. 그것은 내 아버지 열일곱살에 고향을 떠나면서 시작되어 평생 허공에 떠돌다 내게 전이되어 이제 이렇게 유라시아를 헤매고 다니며 대동강 어느 기슭에 닿고자 하는 것이다. 내게 대동강은 그냥 대디를 적시며 달리는 평범한 강이 아니다.

 

마리차 강변을 달리면서 나의 발걸음이 대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나는 직감한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다시는 못 밟은 그 대동강의 솔밭 언덕을 대를 이어서라도 기필코 가야겠다는 것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회상과 시(詩)를 통해 내 피 속에서 강물이 되어 흐르는 유전자인 것이다. 내가 그 길을 달리는 것은 실비 바르탕이 38년 만에 귀국하여 소피아 국립국장에서 공연하는 감동과 비견이 될 것 같다.

 

(24번 째 터키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 iysong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