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62)] 33. 러시아(Russi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62)] 33. 러시아(Russia)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상트 페테르브르루크에서 “One Korea!”를 외친 대학생들과, 2018.4). ⒞시사타임즈
▲< 국기 > 백색은 고상과 성실, 청색은 정직과 순수, 적색은 용기와 사랑을 의미. < 국장 > 적색의 방패위에 머리 두 개 달린 황색 독수리. 중앙의 방패는 성 조지를 의미.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러시아 연방은 유라시아 북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이다. 동쪽은 태평양과, 서쪽은 노르웨이, 핀란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와, 남쪽은 조지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중화인민공화국, 몽골, 북한과, 북쪽은 북극해와 접한다. 국토는 지형에 의해 3대 구역으로 구분된다. 즉 서부의 동유럽 평원, 동부의 서시베리아 평원 그리고 예니세이 강 동쪽의 산악지대이다. 민족은 대다수가 슬라브계 민족이고 공용어는 러시아어이며 수도는 모스크바이다. 전신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1991년 해체 후 친 서방 정책을 취하고 있다. 종교는 러시아 정교회가 다수이고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등이 있다.

 

The Russian Federation locates in northern Eurasia. Russia is the largest, covering more than one-eighth of the Earth's land. Russia spans nine time zones. Russia has the world's largest reserves of mineral and energy resources. Russia has the world's largest forest reserves and its lakes contain one-quarter of world's fresh water. The Russian Federation became the successor state of the Russian SFSR following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in 1991.

 

 

1. 국명(Country) : 러시아(Russian Federation)

2. 수도(Capital) : 모스크바 (Moscow)

3. 면적(Territory) : 17,124,442

4. 인구(Population) : 150,300,000

5. 국민소득(GNI) : US$12,500

6. 언어(Language) : 러시아어 (Russian)

7. 독립일(Independence) : 862

 

백곰의 나라, 러시아

 

동서 길이 지구의 절반

국내 시간차 11시간

넓구나 러시아, 두 대륙을 품었네

 

우랄산맥, 유라시아 가르고

깊고도 풍요롭다, 초승달 바이칼호

볼가강, 만리 흘러 카스피해로 흐르네

 

이반 4세 카잔한국 물리쳤네

붉은 광장 바실리성당

지금, 연인들의 휴식처

 

러시아는 위대하다, 표토르 대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겨울궁전

시방 박물관 되어 만인의 궁전됐네

 

춥구나 동토의 땅 시베리아여

소냐에 이끌려 라스콜니코프 어디가나

라라 찾는 지바고 어디에서 헤매나

드넓은 시베리아 눈보라 친다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개방

동구가 자유 찾네

세계질서 새로 짰네

 

쌍두 독수리 왕관이 세 개

입법 사법 행정

나라와 국민을 지켜라

 

넓게 펼쳐진 이 공간에서

우리의 찬란한 미래를 펼치자

하나님이 우리를 보우하신다.

 

 

Home of White Bears, Russia

 

Almost Half of the Earth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National timelag is 11 hours

How wide, Russia, hugging two continents

 

Mts Ural dividing Eurasia into Europe and Asia

How deep and rich, Crescent Baikal, the pearl of Siberia

River Volga runs 4000km to the Caspian Sea

 

How brave Ivan IV, defeating Mongolia

How splendid St Basili Cathedral at Red Square

The place for young lovers, today

 

How great Russia, Pyotr the Great made it

Summer and Winter Palaces at St Petersbourg

Now, palaces for all, as a museum.

 

How cold, Siberia, the frozen land

Where Rascolnikov heads for, led by Sonya

Where Dr Zhivago wonders searching for Lala

How heavily it snows and winds at the wide Siberia

 

Perestroika, Reform and Open

Eastern European nations redeem freedom

A new world order being established

 

Two headed eagle with three crowns

Symbolizing the Legislature, the Jurisdiction, the Executive

Defend nation and protect people

 

Let's develop our bright future

In this widely stretched space

May god in heaven help us, forever!

 

 

1. 러시아 약사

 

동슬라브족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이다. 동유럽의 원주민들인 동슬라브인들 즉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들은 고대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온 튀르크 민족들에 정복당해 튀르크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동유럽의 동슬라브 원주민들은 5세기부터 투르크 민족 국가인 사바르 카간국의 동유럽 정벌에 의해 튀르크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후에는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그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이 아바르 카간국에 정복되었다.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이르는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동슬라브족 지배에 의한 투르크화의 영향력으로 동슬라브족 문화는 서유럽 문화와는 달랐다. 서유럽에서 프랑크 왕국 등 게르만족의 왕국이 형성되었을 무렵에, 북서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북게르만족 계열의 루스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해적·침략 행위 뿐만 아니라 발트 해·북해의 교역에 종사한 루스인은 발달된 항해술로 강을 타고 흑해로 들어가서 남쪽의 경제적으로 번영한 동로마 제국과 교역에도 나섰고, 또 이슬람 제국의 교역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두 개의 교역 루트를 통해 동슬라브족 사람들은 루스인과 튀르크인의 영향을 받아 루스인들의 카간국인 루스 카간국을 형성했다. 이 루스 카간국의 루스인들은 이후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들의 원형이 되었다.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원형인 키예프 루스는 862년에 류리크 왕조의 시조이자 루스 카간국의 마지막 카간인 류리크가 교역도시 노브고로드의 공작이 되어 키예프 루스의 왕조인 류리크 왕조를 개창한 이후 882년 노브고로드의 2대 공작인 올레그 베시가 키예프를 점령한 후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루스로 불리게 되고, 후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기원이 되었다. 현재 러시아 영토는 루스인들의 초기 국가인 키예프 루스의 북동부 지방이었다. 이 중세 국가의 수도는 키예프였다. 키예프 루스와 류리크 왕조는 현재의 스웨덴 영토에서 온 루스인들이 세웠으며 이들은 동슬라브인들에게 흡수되었다. 키예프 루스는 9세기에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문화를 수용하였고 10세기와 11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가 되어 후의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키예프 루스는 13세기 류리크 왕조의 분할 상속으로 인한 내부 분열과 몽골의 침략으로 붕괴되었다. 키예프 대공국이 붕괴된 이후에는 스몰렌스크 대공국, 블라디미르 대공국, 랴잔 대공국, 트베리 대공국 등의 군소 루스 공국들이 키예프 루스의 명맥을 이었다.

 

류리크 왕조 출신의 다닐 알렉산드로비치가 건국한 루스 공국인 모스크바 대공국(1283~1547)은 몽골 지배 하에서 루스인들이 칸에 납부하는 세금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고, 나중에 점차 실력을 길러서 15세기에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실질적으로 벗어나 루스의 통일을 추진했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이반 3(재위 1462~1505) 때 차르를 자칭하면서 루스 차르국으로 불리게 되며, 17세기 초에는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1613~1917)으로 발전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표트르 1(재위 1682~1725) 때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17세기에는 시베리아를 19세기엔 카프카스를 합병하여 유럽·아시아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갖는 대제국이 되어 유럽 열강의 일원이 되었다. , 해외 진출을 위해 필요한 부동항을 얻기 위해서 남하정책을 추진하여 오스만 제국 등 주변국들과 전쟁을 일으켰고, 영국과의 대립하였다. 극동에서는 연해주를 청으로부터 획득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세우고,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했다. 한편 1867년에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게 팔았다. 극동에선 일본과의 전쟁(러일 전쟁, 1904~1905)에서 패했다.

 

러일 전쟁의 패배로 국내가 흔들린 후, 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3월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무너졌다. 191711, 블라디미르 레닌이 지도하는 이른바 10월 혁명이 성공하자 일체 권력은 노동자·농민·인민의 대표자로써 조직되는 소비에트(평의회라는 뜻)’에 있음이 선언되고, 소비에트 정부가 출현했다. 이어 러시아 제국의 통치 밑에 있었던 여러 민족은 혁명을 계기로 독립했으나, 192212월에는 그 사이 독립하여 성장해 온 4대 사회주의공화국 즉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및 자카프카스 등이 연방조약에 조인함으로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이 성립했다. 제정 러시아 영토를 기반으로 한 소련은, 중앙아시아 방면의 여러 공화국이 소련에 편입하고, 1940년에는 몰다비아 공화국 및 발트해 연안의 3개 공화국이 편입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15개의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성되었다.

 

1941622일 나치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로 시작된 독소 전쟁으로 소련은 전쟁 초반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지원과 붉은 군대가 승리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계기로 총 반격에 나선 소련은 이후 중앙 유럽과 독일 동부지역, 만주와 한반도 북부까지 진격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주요 승전국의 일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 5개 국가 중 하나로 소련이 선정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에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여 미국과 냉전을 펼쳤지만 1970년대부터 소련의 경제는 침체되었다. 특히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를 심화시켰다. 19853월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대외적으로 '신사고'노선에 입각한 과감한 외교에 나서 냉전을 종결시키는 한편, 19862월 제27차 당대회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 노선을 선언하는 등 공산주의 체제의 정치적 부조리 척결과 경제회생을 위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분출하게 되었다. 198910월 제한주권론을 표방했던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공식폐기했고, 19902월 대통령제를 도입하여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917월 당 중앙위는 스탈린주의를 공식적으로 포기 선언하였다. 그 해 여름에 공산당의 고르바초프 축출시도가 실패하면서 19911225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소련은 붕괴되었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국가들은 독립국가연합(CIS)을 탄생시켰다. 러시아는 소련이 가지고 있던 국제적인 권리(상임이사국 등)와 국제법상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승계했다.

 

정보국장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1999년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 의해 총리로 지명되었으며 그해 1231일 옐친의 하야 선언으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으며 이듬해 326일 열린 대선에서 러시아연방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를 주창하며 혼란을 수습하고 러시아의 재건을 이끌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론 서방식을 구사하나,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으론 구 소련의 방식을 일부 운용하여 서방여론에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재선이후 3선 불가에 따라, 도전하지 않고 20083월 선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러시아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도록 도왔다.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정부에서 총리직을 맡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 했다. 2011년 러시아는 영토분쟁으로 조지아와 전쟁을 벌인 뒤, 남오세티야-압하지야에 군대를 주둔하고 조지아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했으며, 압하스 공화국과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했다.

 

20123월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여 푸틴은 다시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다. 2013년 겨울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위기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하자, 2014318일 주민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크림 공화국을 합병하였다. 합병 조약 이후에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별도의 연방관구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834선에 성공한 푸틴은 57일 제6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1. 러시아에서

(상트페테르브루크에서)

 

강명구 유라시아 횡단 평화마라톤의 8,000km 주파를 축하하는 타쉬켄트 평화대동제를 잘 마치고, 나는 2018.4.21에 비행기를 타고 밤 9시에 러시아의 상페테르부르그 공항에 도착하였다. 타쉬켄트의 빡빡한 일정으로 몸이 피곤한 나는 공항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생각하며 입국장을 나오는데 영어로 택시를 호객하는 자가 있기에 빨리 쉬고 싶어서 그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였다. 택시비 2~30불을 예상했지만, 기사는 110달러를 요구했다. 승강이 끝에 60불을 주고 내렸으나 기분이 찜질하였다.

 

호텔 조식을 끝내고 겨울궁전에 가기 위해, 호텔직원에게 교통편을 물어보니 택시비가 비싸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항까지는 20, 겨울궁전까지는 10불 정도란다. 그러나, 궁전까지 가는 122번 시내버스가 호텔 바로 앞에서 50m에 위치한 정류장에 있다고 알려줬다. 의당 택시를 타야했으나 어제 택시 바가지를 당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려 호텔문을 막 나왔다. 바로 그때 122번 버스가 나를 지나 그 정류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 버스를 탈 생각으로 전 속력으로 정류장을 향해 돌진했다. 아마 우사인 볼트가 베이징 올림픽 때 100m 결승전의 속력보다도 분명 빨랐을 것이다. 그렇게 30m쯤 달리다, 아뿔싸~~~, 나는 몸의 균형을 잃고 심하게 넘어졌다. 버스는 따나고 나는 일어서질 못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어나고 소지품을 수습하고, 호텔 로비로 겨우 돌아와 1시간쯤 쉬었다. 그리고 아픈 가슴을 견디며 택시를 타고 네바 강변에 위치한 겨울 궁전으로 향하였다.

 

겨울 궁전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있는 궁전으로서 제정 러시아 군주의 겨울을 위해 1754~1762년에 지어졌다. 로코코 양식을 표방한 궁전은 연둣빛의 색조였다. 1,786개의 문과 1,945개의 창문이 있다. 예카테리나 1세가 첫 번째 주인이 되었다. 궁전은 현재 회화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이기도 한 에르미타쥬 미술관 복합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의 2월 혁명 이후 겨울 궁전은 러시아 임시 정부 청사로도 쓰였다 한다. 볼셰비키 정권의 겨울궁전 급습은 10월 혁명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에서 마주친 러시아 미녀, 2018.4). ⒞시사타임즈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예술품을 골고루 소장한 에르미타주는 바로크 스타일의 기품 있는 궁전으로 제정 러시아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 궁전과 네 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궁전은 원래 이처럼 방대하지 않았지만 표트르 대제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은 후 제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의 딸 예카테리나 1(Jason)가 오늘날의 겨울 궁전을 건설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때 문화의 황금기를 맞았다. 그녀는 밖으로 실내 정원이 나 있는 시계의 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겨울 궁전을 프랑스어로 '에르미타쥬’(은둔지, 인적이 없는 방)라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에르미타쥬 명칭의 유래이다.

 

나는 가슴의 통증을 참으며 미술관 종료 때까지 소장품들을 관람한 후 걸어서 천천히 호텔까지 오며 시가지와 이삭 성당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가슴 통증이 계속되었으나 나아지겠지 기대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의 핀란드만에 있는 택시를 타고 여름궁전으로 향하였다. 여름궁전에 도착하여 택시기사에게 4시간 후에 정문에서 만나지니 그렇게 한단다.

 

여름궁전은 러시아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표트르대제의 명령으로 파티 장소로 쓰기 위해 만든 것으로, 1714년 착공된 이래 9년이 지난 후 완공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150년이나 지난 후에야 공사가 끝이 났다. 러시아와 유럽 최고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이 총동원되어, 20여 개의 궁전과 140개의 화려한 분수, 7개의 아름다운 공원이 만들어졌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여름궁전 1층에는 표트르 대제의 응접실과 서재, 침실 등이 있으며 2층에는 왕실 대대로 내려오는 가구와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가슴 통증이 계속 되었으나 천천히 걸으며 여름궁전 구석구석을 3시간 반 동안 구경한 후, 정문에 가니 정말 아침의 그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에서, 2018.4). ⒞시사타임즈

 

(모스크바에서)

 

호텔에 돌아와 하룻밤을 자도 통증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나아지겠지 하며, 모스크바행 기차를 탔다. 기차는 2층 침대였다. 그런데 가슴 통증이 심하여 2층 올라가기도 힘들어서 주위 사람들이 부축하여 겨우 올랐다. 9시간 여정 동안기차 밖을 쳐다보니 자작나무 숲이 계속되어 러시아 대륙의 광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슴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겨우 호텔에 도착하였다. 아픈 통증을 참으며 누웠으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니 통증이 더욱 심하여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호텔 직원에게 연락하여 우리 대사관 영사과에 연락 좀 해달라고 하였다. 나의 사정을 듣고 영사가 응급차와 함께 10시 반쯤 호텔에 왔다. 우리는 함께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가면서 나는 여행자보험을 안들은 것을 후회하며 하며 서 병원비가 많이 나올 것으로 걱정했다.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이라 애써 자위하며, 도우러 온 영사에게 고맙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문진을 하더니 갈빗대가 끊어진 것 같으니, x-ray도 찍고 3-4일 입원을 하며 추이를 보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진료비, 약제비, 보통 입원실비가 다 무료이며, 다만 병실은 선택적으로 특실(1박당 150), 고급실(1박당 60)만 유료라고 하였다, 나는 러시아에 세금 한푼도 내지 않은 사람이라 미안하고 고마워 고급실에 입원하였다.

 

▲(입원비, 치료비,약제비가 모든 내외국에게 무료인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병원에서, 2018.4). ⒞시사타임즈

 

나는 의료지식이 전혀 없어 심하게 넘어져 가슴통증이 있었지만 갈빗대가 부러진 것은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저 타박상이려니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X-ray를 찍어보니 갈비뼈 6번이 끊어졌단다. 그리고 특별한 조치는 필요 없고 3-4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입원해 있으란다. 영사가 서울 가족에게 연락해야 한다면서 가족 연락처를 물었다. 나는 가족들이 걱정할 것을 우려하여 친구 박민서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리고 담당의사는 뼈가 아물려면 2달 걸릴 것이니 조심조심하라며 3일 후에 퇴원을 시켰다.

 

나는 호텔에 돌아와서 하룻밤을 쉬고 다음 날부터 이틀을 러시아 특유의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붉은 광장, 성바실리 대성당, 크렘린 궁전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시내를 천천히 걷기도 하고, 이층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며 구경하였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2018.4). ⒞시사타임즈

 

갖가지 색깔로 소용돌이치는 양파 모양의 돔으로 유명한 성 바실리 대성당은 모스크바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은 단일한 토대 위에 모여 있는 아홉 채의 독립된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모두가 중앙의 첨탑을 둘러싸고 배열되어 노을에 비친 예수 열두 제자를 상징한 는 12개의 탑들이 신비롭도록 아름답게 비쳤다. 이 성당은 '잔혹한 황제'로 알려진 차르 이반 4세에 명에 따라, 1555년에서 1561년까지 그가 타타르 칸국을 정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유명한 성인인 '그리스도에 미친 바실리'의 이름을 따 성 바실리 대성당이라 명명하였단다. 이반 4세는 성당이 완성된 후 앞으로 성 바실리 대성당의 아름다움에 필적할 만한 건물을 다시 설계하지 못하도록 건축가 포스트니크 야코블레프의 눈을 멀게 했다고 전한다.

 

나는 모스크바 강을 거닐며 러시아 젊은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친절하고 발랄했으며, 그때가 4.27 판문점 남북회담을 바로 앞두고 있어서 한반도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치인들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아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강명구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과 KOICA가 지구촌에서 행하는 인류공영을 위한 사업들을 설명하며, KBS에서 4.209시 뉴스에 방송한 파일을 보여주니, 모두 원더풀을 연발하며, “One Korea!”“World Peace!”를 외쳤다. 이런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의 본산인 모스쿠바에도 이렇게 많으니, 나는 우리 한반도의 평화통일도 곧 이룰 수 있겠다는 희망을 공산주의의 본영인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갖게 되었다. 나는 몇 시간 후 판문점에서 있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하며 기분 좋게 핀란드 헬싱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4번째 나라 핀란드 이야기로 계속)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 iysong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