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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2

톈산 풍경 읽어주는 남자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모든 길의 끝은 톈산을 오른다. 멀리 아득히 보이던 흰 눈이 덮여있는 첩첩한 봉우리는 이제 눈에 선연히 가까워지고 이빨 빠진 칼날 같은 드러누운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산허리를 휘감고 언덕은 점점 가팔라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싱그러운 율동이며 귀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천상의 화음이다. 달리며 한 편의 스팩타클한 영화를 보듯, 거장의 명화가 전시된 미술관을 관람하듯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광을 바라보며 그것이 품고 있는 세월과 생령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멋진 일이다. 매일 42km씩 똑같은 장소에서 달린다면 뇌와 근육조직은 심심해할 것이다. 뇌가 심심하면 뇌에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단백질 같은 노폐물이 쌓이고 뇌 크기가 위축되면서 기억력이 떨어진다.

 

달리면서 시시때때로 바뀌는 풍광을 즐기노라면 뇌는 신이 나서 연결망이 활성화되며 건강한 뇌 활동을 하게 된다. 건강한 뇌 활동은 몸을 강건하게 유지하게 도움을 준다. 9개월 가까이 매일 42km씩 달리면 과부하가 걸려 무슨 사달이 났어도 진작 났어야 했는데 나의 근육조직은 아직도 이상이 없다. 이상이 없을 뿐 아니라 피로가 누적되면 늙고 병이 든다는 기존의 의학적 상식도 나로 인해 깨어지는 것 같다. 모든 조직은 심심하면 늙고 약해지고 병이 든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호기심과 모험심과 사랑으로 채워진다면 인체의 기관과 조직은 다시 젊음을 되찾는다. 나이가 들면 뇌도 노화된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나는 지금 첩첩한 톈산을 넘으면서 젊음의 한가운데를 질주하고 있다. 나 같은 체력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어쩌면 평범 이하인지도 모른다. 나는 늘 열등감 속에 살아왔으니까.) 이런 세계적인 도전을 수행하면서 지금껏 잘 달리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조화와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펼쳐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의 뇌와 근육조직을 젊고 생생하게 유지해주는 비밀인지도 모르겠다.

 

신이 만든 산, 톈산산맥은 중국 북서쪽의 끝 파미르고원에서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까지 2,900km에 걸쳐 뻗어 나간 산맥이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하늘과 맞닿은 채 동서로 길게 뻗어있다. 나는 장엄하고 웅대한 이 산을 한 달 이상을 바라보면서 달려왔다. 바라보면서 닮아 간다고 했는데 나는 왜 아직도 티끌만도 못한 사소한 일에 핏대를 올리고 있는가? 어제도 국도에서 40km 이상은 속도를 내지 않는 중국인 운전기사에게 그만 핏대를 올리고야 말았다. 톈산의 포베디봉은 7,439m로 세계 7m 이상 높은 봉우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은 그 스스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늘 제자리에 있으나 아무도 눈여겨 담지 않는 그런 것들이 천천히 달리며 심장이 뜨거워지고 마음은 경건해지고 고요해지면 거장의 명화처럼 뇌리에 그려지는 풍광으로 다가온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열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식견이 트인다. 내가 아름다운 별 위에 서 있다는 사실, 그토록 안달복달하며 경쟁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동양의 사상은 천지 산하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귀의의 대상으로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삶의 근간으로 삼았다. 자연을 업신여긴 인간의 삶은 부자연스럽고 엉망이 되었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곳은 내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경이로움으로 넘쳐났다. 푸른 하늘에 맑은 구름이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의 풀 내음 진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초원에 핀 꽃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 위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 울음소리 먼 듯 가깝다. 푸른 초원에 하얀 양의 점과 바위의 점이 섞여 멀리서 구별이 안 될 때도 늑대를 기다리는 목양견의 눈매는 매섭게 빛난다. 초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먼 길 발걸음이 바쁘다. 날개를 한껏 펴고 하늘에 둥근 원을 그리며 나는 솔개는 기필코 배를 채울 것이다.

 

작고 한적한 마을 앞에 한 노인이 소 댓 마리 풀을 먹이고 있다. 내가 옆에 있는 강교무에게 저 노인은 소일거리가 있어서 좋아 보이네요.” 초고령화된 도시의 하릴없는 노인들을 생각하며 말을 건넸더니 잠시 뒤 한 노인이 양 열댓 마리 몰고 가는 걸 보더니 저분은 양일거리가 있어서 좋아요!” 하여 우리는 오랜만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공터의 아이들이 양처럼 말처럼 뛰어논다.

    

 

가끔 마주치는 이국적인 여인의 미소가 치명적인 유혹이 아니라도 모든 유혹은 흥미진진하여 내 마음을 산만하게 만든다. 멀리 유목민의 텐트에서 모닥불 피는 연기가 조금씩 흔들이며 곧게 올라간다. 양 떼 사이에 지팡이를 든 주름진 노인의 꼬나문 담배 연기가 구름이 산허리에 걸치듯 주름 위에 걸친다. 성찰 없는 개발 때문에 산하가 피 흘리고 신음하던 모습을 동공의 초점을 잃고 바라보던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니 알 수 없는 아련함이 스며온다. 사람의 기척을 듣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오소리의 실루엣이 내 생각을 머나먼 곳으로 이끌어 마치 여러 전생 전에 이곳에서 뛰어놀던 친근감이 든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저 멀리 초원이 끝나는 곳에 만년설을 머리에 인 톈산은 하얀 히잡을 쓰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이곳 후이족 소녀의 모습같이 다소곳하고 경건하다. 만년설이 녹아서 흐르는 계곡물은 굽어들다가 내뻗고, 고여서 숨죽이다가 터지듯 뻗쳐 흐른다. 여기서는 하늘의 푸른빛이 깊고 가깝다. 가까운 듯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는 중국의 전통악기 의 가락처럼 심금을 울린다. 소 울음소리 말 울음소리가 저음으로 화음을 맞추고, 수많은 무리 중에 어미를 찾는 아기염소의 아리아가 울려 퍼지면 산중의 음악회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엊저녁 미친 듯이 날뛰던 폭풍은 간데없고 산들바람에 포플러 잎새들이 춤을 춘다.

 

설산을 배경으로 북향으로 다소곳이 자리 잡은 몇 개의 게르는 언제든 떠날 것을 예보한 연인처럼 가슴 아프다. 강렬한 태양 아래 바싹 마른 말똥, 소똥이 타는 난로 연기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주고,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듯 하늘에 오른다. 어디서나 아련한 풍광은 우주적 우수를 불러일으킨다. 낮은 물가에 발을 담그고 서서 먹이를 기다리는 백로는 선의 삼매경에 빠졌을까? 움직임이 없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큰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간다. “북명(北冥 북극해)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이 커서 그 길이가 몇천 리가 되는지 모른다. 이 곤()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이 붕()의 등골은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모른다.” - 장자. 백로의 날개를 타고 내 마음도 금방 천리만리 날아간다.

 

계곡물은 여울물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나는 가뿐 숨소리를 내며 뛰어 올라간다. 개울물을 따라 포플러나무가 간간이 서 있을 뿐 여기선 내 키가 제일 커서 기분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낮 동안 그림자를 거느리는 호사를 누리는 것은 포플러나무 뿐 빛의 통치는 지엄하다. 수많은 생령과 자연현상은 서로 독립적이며 상호 복잡하게 어울리고 서로 교차하며 조화로운 평화가 유지된다. 이런 곳에서는 시간과 삶이 그대로 흐른들 두렵지 않고 시간이 멋대로 흘러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슬픔과 절망도 다 위로받을 것 같다. 내 정갈하고 경건한 기도도 여기에 섞이니 희망의 노래로 변주된다.

 

슬픈 현실이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변해간다는 것이다. 새 옷도 금방 싫증이 나고 사랑의 맹세조차도 변한다. 물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른다. 오래전 무너진 토담은 세월 따라 스치고 간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을 뿐 아무리 귀 기울여도 아무 이야기가 없다. 풀밭에 솟아난 하얀 버섯처럼 게르 몇 채가 보일 뿐이다. 수만 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톈산을 마주 보고서니 내 마음의 결기 다시 다져진다.

 

무언가로부터 혹은 나 스스로 억압했던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은 자유를 느낀다. 열을 받아 비명을 지르며 터져야 비로소 제맛을 내는 팝콘같이 이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속엣 것을 터뜨려버리고 나면 나도 제맛을 낼 것 같다. 밝은 하늘 빈 들판 억세어진 가슴 활짝 열고 달리면 들꽃은 해맑게 웃으며 맞으리! 풀잎은 기쁨에 넘쳐 춤추리! 푸른 하늘 푸른 들판이 맞붙은 희망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리! 발걸음 늦어져도 동행이 있고 내 수고를 덜어주려 가쁜 호흡 마다치 않고 함께하여주어 몸과 마음 가벼워지니 나 신선이 듯싶어라.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 아름다운 초원에서 발이 묶이지 않아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풀을 뜯는 말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의 어린 새끼가 집에 묶여있으므로. 자신의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이 말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나와 강석준 교무의 발길도 그렇게 조국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 가슴에는 말들의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를 바라보는 예사롭지 않은 눈길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칭기즈칸의 군대는 한밤중에 이곳에 도착했다. 밤새워 험한 골짜기를 타고 넘어온 병사들은 피곤에 절어 곤한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떴다. 동이 트자 펼쳐지는 그 아름다운 초원과 계곡의 풍광에 놀라 나리티(나랍제那拉提)라고 감탄을 자아냈다. 속세의 천국이런가! 그 후로 이곳의 지명은 나리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라티초원은 우루무치까지 460km의 구간에 펼쳐져 있다는 세계 41급 초원 중의 하나다. 나는 앞으로 그 구간을 원 없이 달려갈 것이다.

 

! 맑고 깨끗한 물이다. 이 맑고 깨끗한 물을 마셔서 내 몸에 흐르게 하고 싶다. 두 발을 벗고 흐르는 물에 담근다. 눈 녹은 물의 차가움이 전류처럼 가슴에 전해진다. 두 손을 모아 골을 만들어 물을 담아 입으로 가져간다. 이번엔 상쾌함이 가슴으로 퍼져가며 내 몸에 태고의 맑고 깨끗함이 흐른다.

 

해발 2,500m까지는 초원과 가문비나무숲이 이어지고 그 지점을 넘어서면 다시 초원이 펼쳐진다. 3,500m가 넘어서면 초원도 사라지고 생명을 가진 식물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산을 덮은 눈이야말로 톈산 주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나 식물들, 무릇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생명줄이다.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은 식수로, 농업용수로 이 땅 위의 모든 생령들을 풍요롭게 해준다.

 

바람에 풀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풀은 늘 바람과 맞서 헤쳐 나가지만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사유하지 않았다.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에 무심했던 나도 지금 동쪽에서 세계의 질서를 뒤바꾸어 놓을 큰바람이 묻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조금씩 요동치다가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바람이다. 한동안 거친 저항에 부딪히겠지만 누구도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귀인을 만나러 가듯 그 바람을 만나러 조곤조곤 걸어 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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