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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3)

내 섹시한 종아리를 사랑한 호텔 여주인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늘 옳은 길을 가려고 했다. 옳은 길은 선택하기 위해서 사전에 조사도 하고 다른 사람의 조언도 들었다. 일단 갈 길이 결정이 나면 묵묵히 달렸다. 작은 걸음이지만 바른길을 달리다 보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커다란 발자취도 남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때론 비에 흠뻑 젖어서도 달리고, 때론 눈보라를 맞으며 달리고, 사막의 모래 폭풍을 뚫고도 달렸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달리면서도 마음이 충만했었다. 곧고 옳은 길이라 생각한 길도 때론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었다. 판단을 잘못해서 길을 잘못 들은 적도 있었지만 금방 훌훌 털고 되돌아 나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톈산산맥은 위대했다. 나는 이 산맥을 넘기 위해서 한 달, 어쩌면 두 달 이상을 계속 오르막길을 달려왔다. 톈산산맥의 자락의 기세는 수천 km에 뻗쳐있어서 나는 완만하게 펼쳐진 그 길을 달려왔다. 아마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나는 그 기운을 처음 느낀 것 같다. 설산이 오른쪽으로 보이면서부터는 톈산산맥의 자락을 달리고 있었으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중국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을 반사막, 초원 그리고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섰다. 칭기즈칸의 군대가 톈산을 넘어 이리로 향했다. 때는 4월 꽃피는 봄이지만 산중은 눈보라가 몰아쳐 동상을 입으며 쓰러져 죽은 병사들이 속출했는데 산마루 하나를 넘자 눈앞에 살구꽃이 우리의 진달래 동산처럼 만발한 초원이 펼쳐지고 맑는 강물이 흘러 별유천지에 온 것 같아 탄성을 지른다.

 

산은 다양하며 변화무쌍하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가혹해서 예상치 못한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이곳에 아스팔트가 깔리긴 했지만 옛 모습 그대로의 삶이 남아있다. 해발 2,000m가 넘어서자 호흡이 가빠지고 계곡의 물흐름은 우리의 호흡보다 더 가쁘게 숨소리를 내며 흐른다. 옆에서 달리는 강 교무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에로틱하게 들린다. 계곡의 휘어지고 구부러져 흐르는 모습이 또한 에로틱하다. 6월 초의 숲속은 온통 연애질하느라 바쁘다. 새들은 짝을 찾느라 교성을 내지르고 꽃들은 화류계 여인의 분 냄새보다 진한 향을 뿜는다. 말들도 춘정을 못 이겨 수말이 암말에 올라타려 하고 암말은 앙탈을 부린다. 감정을 가진 자 이렇게 유혹적인 숲속에서 대자연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니리라!

 

1년의 강우량이라야 우리나라의 하룻밤 비에도 못 미친다는 곳이다. 내륙 깊숙한 곳이라 구름도 찾아오기 힘든데 그나마 찾아오는 구름은 톈산 산꼭대기에 걸려 눈으로 내려 쌓인다고 한다. 건조한 이곳에서는 지붕도 흙으로 덮어서 지붕 위에도 풀이 자라난다. 그 무더운 더위와 그 사나운 추위에 흙집만큼 유용한 집도 없겠다. 이곳의 숲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북향의 산 사면은 가문비나무 숲을 이루고 남사면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 초원의 산이다. 그 희한한 대조가 이질적이며 신기하고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힘든 것마저 잊고 28km쯤 달려가다 숲속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이제 톈산의 8부 능선을 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곳은 후이족이나 카자흐족의 거주지역으로 회교도들의 거주지역이지만 한족 여행객들이 많아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한족 음식점들을 가끔 찾을 수 있다. 그곳에서는 돼지고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무튼 중국에서는 음식이 비교적 입맛에 맞아서 음식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중무장한 경찰특공대 4명이 식당 안에 들어선다.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은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침착하게 그들을 대할 수 있었다. 그들도 침착했지만 그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허가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권위주의 국가의 공무원처럼 정확한 설명을 생략했지만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발군타이 지역에 소요가 일어난 것 같다. 아니면 일어날 것 같은 징후가 보이거나.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문제도 많은 모양이다. 이곳 신장위구르지역에서 중국은 목에 가시가 걸린 호랑이처럼 어쩌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그들이 내게 던져준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한 10km 정도 돌아가서 그곳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방법, 그 길은 일주일 정도 있어야 열리니 기다렸다 가던지, 일 년에 불과 5~6개월 정도만 길이 열려있다는 이 길은 11월부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통제되어서 다닐 수가 없다. 이곳에서 300km를 왔던 길을 돌아가서 다시 400km를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여 그곳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맥없이 이 자리에서 일주일을 쉬면서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마저도 시민들의 편의를 전혀 고려치 않는 공안들의 결정이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차로 700km를 이동하고도 애초 예상했던 길보다 150km를 더 달려야 하니 나흘 정도 계획에 차질이 생긴 셈이며 톈산은 계획대로 못 넘는 형국이 돼버렸다.

 

이제 내일이면 톈산산맥 정상을 달려서 넘어서 다시 끝없이 펼쳐진 중국 내륙 깊숙한 곳을 내가 한국인임을 자랑하며 신명 나게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일이면 내가 혜초의 후배임에 자부심을 느끼며, 고선지와 한 핏줄임을 상기하며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살지 못하는 험한 곳을 넘은 기쁨을 강교무와 만끽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산 톈산’을 두 발로 달려서 넘는 것을 하늘은 허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그것은 후배 도전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지만 드러나는 짙은 아쉬움을 속으로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이 길을 이렇게 기를 쓰고 달리는 이유는 뻥을 치기 위해서이다. 친구들에게 뻥을 치고 후배들, 후손들에게 뻥을 치기 위해서이다. 뻥을 치는 것보다 재미있고 삶에 환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뻥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내 말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귀 기울여주고 웃고 박수쳐주는 일 말이다. 힘들 때마다 나는 친구들과 술잔을 마주하면서 목소리를 저음으로 깔면서 유라시아를 달려온 이야기, 톈산을 넘어온 이야기를 뻥을 더해서 이야기하는 상상을 하면서 고비를 넘기곤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말재주는 없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강당에서 뻥을 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신라에서 중국으로 갔다가 광저우에서 해상 실크로드를 타고 인도에 갔던 혜초는 그의 나이 20세 때인 727년 가을, 구도여행을 마치고는 육상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왔다. 톈산산맥을 넘으면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한 수 읊는다.

 

“길은 거칠고 산마루는 엄청난 눈으로 덮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떼가 들끓는구나.

새는 날아가다가 깎아지른 산을 보고 놀라고

사람들은 좁은 다리 건너기를 두려워하는구나.

평생에 울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눈물을 천 줄기나 뿌리도다.”

 

달마대사도 이곳 톈산을 넘어갈 때 큰 장애를 만났다. 흔히 이런 고승들에게는 전설과 뻥이 반반씩 섞여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남인도의 어느 왕국의 왕자로 머리가 영특하고 타고난 미남이었다고 전해진다. 선종을 전달하기 위해 험난한 톈산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 깎아지른 듯 험한 톈산을 넘는 중에 커다란 죽은 뱀이 길을 막고 있어 지나갈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뱀의 사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달마대사는 유체이탈하여 자신의 육체를 벗어버리고 뱀의 몸속에 영혼으로 들어가 뱀이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자신의 육체로 다시 와보니 자신의 멋진 육체는 어느 놈이 훔쳐가고 흉악하고 못생긴 남자의 몸이 그 자리에 있었다.

 

산도적이 잘생긴 그의 육신이 탐이나 훔쳐가고 자신의 육체를 벗어놓고 가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달마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아무튼 달마도 이 톈산을 넘어갈 때 애를 먹은 건 사실인 모양이다. 중국에 도착한 달마대사는 숭산의 소림사에 찾아가 동국에서 9년간 면벽 수도를 하였다. 중국사람들은 못생긴 달마대사의 모습을 그려서 모시는 달마도는 좋은 기운을 주고 액운을 막아 복과 재물과 건강은 준다고 믿었다.

 

다시 어제 잤던 이리주 이녕으로 갔다. 호텔에는 직원들을 쭉 세워놓고 군대식 점호를 취하고 있었다. 한 여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엎드려뻗쳐 자세에서 팔굽혀 펴기를 한다.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아서 언짢았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이 군대식이다. 로비에 들어서다 친절하게 대해주던 호텔 여사장이 보내고 너무 섭섭했는데 다시 와주어서 너무 고맙고 반갑다고 하면서 나의 종아리를 슬쩍 만진다. 그리고 방 열쇠를 내주면서 얼른 씻고 내려오면 저녁은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녀는 어제 호텔에 들어와 공안에 등록하느라 기다리는 동안에 내가 유럽 끝에서 차를 타지 않고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고하니 믿지 않아서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내 종아리를 내밀며 한번 만져보라고 했더니 가만히 만져보더니 단단함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었다. 내 종아리를 만지면 호텔비를 깎아주어야 한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했는데 정말 호텔비를 반값으로 깎아주었다.

 

얼른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근사하게 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 식당은 한족식당이라 호족인 운전기사는 혼자 호족식당을 찾아갔고 강교무와 내가 그녀와 자리에 앉았다. 긴 하루였지만 이국의 아름다운 호텔 여사장이 따라주는 ‘이리’산 붉은 와인이 목젖을 타고 가슴으로 퍼져 나가자 피로가 확 가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년쯤에는 한국에 꼭 여행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인사로 내 종아리를 한 번 더 만졌다. 여행자는 잠시 머물고 쉬이 길을 떠난다!

 

이녕은 텐산의 중부지역으로 해발 2200m 고지대이며 오늘 갔던 곳은 3천m가 넘을 것이다. 이곳은 에로부터 오손, 돌골족, 몽골 등 유목민족의 근거지였으며 지금은 카자흐족의 자치구로 청나라의 이리장군이 통치하였다고 하여 지명이 이리가 되었다. 이곳은 겨울이 춥지 않고 여름이 덥지 않고 풍부한 일조량과 설산의 눈 녹은 물이 풍족하게 흘러 포도가 달고 맛있다고 한다. 이곳의 포도주는 프랑스 와인보다 더 고가에 팔려나간다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산을 넘은 얼마나 많은 병사가 포로로 잡혀서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병이 들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여행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 산을 넘게 만들었을까? 교역? 전쟁? 외교? 호기심? 방랑? 도피? 그 이유도 여행자 수만큼 다양했을 것이다. 지금 혜초가 이 산을 넘은 지 1300여 년이 지난 이 봄, 다만 먼 산에 만년설을 바라보일 뿐이다. 혜초를 괴롭히던 도적 떼도 사라진 이 산, 잘 닦인 도로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만 톈산에 평화의 봄이 오지 않아서 넘지 못해서 나는 마음의 눈물을 천 줄기나 뿌린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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