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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임도건 칼럼] 크로아티아의 눈물

[임도건 칼럼] 크로아티아의 눈물




▲임도건 박사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임도건 박사] 오랜 기다림, 짧은 만남, 그리고 긴 여운.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아트사커(Art-Soccer)를 앞세운 프랑스가 430억 원의 상금과 함께 20년 만에 우승했지만 영광과 찬사는 크로아티아에게 쏠렸다. 아름다운 패배, 준우승이 더 빛난 한편의 서사시였다. 아드리아 해안의 보석, 크로아티아로 떠나보자.

 

스포츠 민족주의(Sports Nationalism)가 한물갔다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는 아직 스포츠만한 게 없다. 그 중에서 월드컵은 동·하계 올림픽을 제외한 단일종목으로는 세계최대축제. 적지와 아군의 땅을 오가며 승패를 가른다는 점에서 유럽의 전쟁사와 닮았다. 정복자는 상대진영에 골을 넣어 제국주의를 펼치고, 골을 먹은 피지배자는 식민지를 경험한다. 다소 비약적이지만, 축구 역시 민족주의의 흥망성쇠와 유사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축구도 애국심의 발로이자 정치권력의 선전장이다. 정당성이 약한 권력은 스포츠를 통해 국력을 만회하기도 한다. 파시즘 형태의 베를린 올림픽(1936)이 대표적이다. 히틀러는 아리안 국수주의(German chauvinism)로 자기 권력의 부도덕성을 은폐했다.

 

전두환의 5공화국과도 다르지 않다. 국위선양과 민족의 자부심 고취를 빌미로 3S(Sports, Sex, Screen)를 통해 우민화했고, 스포츠에 대한 대국민적 관심을 애국심 발현의 통로이자 권력 정당화의 도구로 삼았다. [상하이 공동성명]으로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끌어낸 중국의 “핑퐁” 외교도 스포츠로 국익을 챙겼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번 월드컵의 돌풍은 단연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콜린다 G. 키타로비치(Kolinda Grabar-Kitarovic, 51세)가 그 주인공. 그는 주미 크로아티아 대사를 비롯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공공외교 사무부총장을 지낸 국제외교통으로, 출중한 미모에 외교력까지 탁월하지만 이런 크로아티아에도 슬픈 역사가 있다.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의 침입을 막아낸 반 옐라치치(Ban Jelačić)의 투쟁은 1980년대 소련과 동유럽 개혁기를 거쳐 1991년 독립에 큰 발판이 됐다.

 

인구 429만, 영토 5만6천㎢(한반도 0.256배)의 크로아티아는 1992년 한국과도 공식 수교했다. 한국은 승용차·텔레비전·오디오를, 크로아티아는 종이·직물·의약품으로 교역한다. 대한(對韓) 수입액이 3127만$인데, 수출액은 160만$다. 더욱이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 덕분에 두브로브니크는 한국인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월드컵을 빛낸 또 한명의 주인공이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33세)다. 수차례 연장전과 승부차기 끝에 팀을 결승으로 이끈 끈질김의 비결은 뭘까? 오랜 세월 피지배 잔영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쉽게 이기지도 못하지만, 쉽게 지지도 않는 근성(resilience)은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불굴의 투지는 세계 으뜸이다.

 

이들을 격하게 포옹한 여성 대통령이 종일 화두였다. 시상식이 펼쳐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쓴 푸틴과 비를 맞은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대통령. 두 정상을 대하는 러시아의 예우는 정상이 아니었다. 마카롱은 승자의 위용으로 견딜 수 있었다 해도, 키타로비치의 뺨을 적신 비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지난한 세월을 딛고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아쉬움도 있었으려니와 조만간 정상에 오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빗물과 눈물의 아름다운 이중주. 러시아 월드컵이 낳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사진출처 = 키타로비치 대통령 페이스북 (c)시사타임즈

 

▲사진출처 = 키타로비치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www.predsjednica.hr) (c)시사타임즈

 

아름다운 패배에 바친 키타로비치의 눈물, 오래 각인될 감동이다. 동년배의 달리치(Zlatko Dalic) 감독을 포옹했다.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목을 당겨 귓속말도 나누었다. 우리도 이런 지도자 하나쯤 갖고 싶다. 휴가철 비키니 차림에서는 영락없는 이웃집 아낙네건만, 집무실에서의 근영은 자애와 권위가 넘치는 여왕이다. 엘리자베스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남의 나라 지도자지만 솔직히 부럽다.

 

와중에 우리는 제헌절을 맞았다. 정의와 평등의 상징인 대법원장이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가운데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Degaussing)했단다. 사회적 약자의 증거인멸이 소수 기득권에겐 관행이 되는 현실. 크로아티아와 우리의 차이는 뭘까? 배울 게 많은 한 곳에선 감동의 눈물이 나오는데, 버릴 게 많은 다른 곳에선 폭염에 한숨만 나온다.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겹치는 우리의 제헌절.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국가를 가진다고 했다. 입법자 중심이 아닌 준법자 중심의 법은 언제나 가능할까? 빌게이츠와 톰크루즈가 즐겨 찾는 휴양지, 크로아티아. GDP 78위 국가이지만,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글 : 임도건(Ph.D) 박사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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