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문가 칼럼 ] 국가위기와 작은 영웅들
[시사타임즈 = 장의관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 미국의 어느 코미디언은 일반 사람들한테 가장 큰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남의 재난이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 재난이 독특하고 규모가 클수록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나 연극도 재난만큼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입에서 “어휴 어쩌나”와 “안 됐네”를 연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재난의 흥미진진함에 손쉽게 몰입한다.
우리가 뉴스를 열심히 보는 것은 정보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현대인들의 필요 때문만은 아니라고 이 코미디언은 말한다. 뉴스가 재미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언론의 주요 뉴스들은 대부분 사고를 다루며, 이들은 타인의 불행과 연관되어 있다. 뉴스 중에 즐거운 소식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뉴스를 즐기는 것은 타인의 재난을 즐기는 잔인한 인간 내성을 예증하는 것일까?
오염수 유출이 문제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TV 보도를 열심히 시청하다 보면 혹시나 필자도 일본의 재난을 흥미롭게 즐기는 것은 아닌지를 자문하게 된다. 한국에 수입되는 어류의 안전성 등 연일 유관 이슈들이 언론에 소개될 때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이웃나라 구경하듯 지켜볼 뉴스거리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1백만 킬로와트 원자반응로를 40개나 보유한 우리나라의 안전은 과연 확실히 담보될 수 있는 것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백미는 일본 당국의 지속적 사고 은폐와 사실 오도이다. 사고 발생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사후 대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당국의 은폐와 사실 오도는 일본 정치와 사회 수준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 정치와 사회의 수준 또한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최근 감사원장의 갑작스런 사퇴 배경을 두고 다양한 의혹설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 의혹 중 하나는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 비롯된다. 2010년 조사 때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던 감사원이 올해 조사에서는 총체적 부실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대통령 얼굴이 바뀌었다고 감사 결과 또한 반대로 뒤집히는 감사원을 우리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작 줏대 없는 감사 결과에 최종 책임을 져야 할 감사원장은 마치 순교자의 용기있는 결단이라도 되듯이 사임을 외친다.
그런가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근간을 뒤흔들, 결코 행해서는 안될 정치개입을 지시하고서도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했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의 발로였다고 주장하는 전 국정원장의 주장을 듣다 보면 또 다른 순교자들의 발현을 보는 듯하다. 갑자기 우리 사회에는 왜 이리도 우리가 원한 바 없는 순교자들로 넘쳐나는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사후처리 과정을 지켜보면 진정한 영웅은 방사능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처리를 위해 묵묵히 자기를 희생하는 근로자들이다. 이들 작은 영웅들의 애처로운 희생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수년간 뒷걸음질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자 진정으로 애쓰는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헌신으로 가득한 소시민들이다. 한 자루 촛대를 든 이들 의식 있는 소시민들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작은 영웅일 것이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사고처리를 위해 희생하는 일본의 작은 영웅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도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촛대든 작은 영웅들을 양산하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다시 발생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장의관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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