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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군의 기강은 정직한 리더십이지 굴욕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다

[ 전문가 칼럼 ] 군의 기강은 정직한 리더십이지 굴욕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다

  

 

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세계에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아직도 전쟁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나라로서 우리 군의 의미는 다른 국가와 그 의미와 존재를 달리한다. 그래서 패권국가가 되기 위한 강대국의 군의 존재와 우리는 사뭇 다르게 당장의 위협이 될 수 있는 또는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불시의 전쟁에 대비하여 존재하는 군으로서 조금은 특별하고 남다르다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 군의 특수성과 존재성은 강력한 이유 있는 명분으로 우리 정부 조직에서 가장 위계질서와 지도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한다. 게다가 극동아시아라는 지엽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어 일본과 중국이라는 대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군의 역할과 상징성은 더 더욱 남다르다.

 

경제에서 나오는 샌드위치이론이 군에서도 필요하다. 그 만큼 과거의 국토방위 국민의 생명과 안정만을 고려하는 수단이 아닌 정치적 외교적인 수단으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이에 과거의 상명하복 또는 절대복종이라는 아득한 기술력과 전투력이 아닌 전방위로 사용가능한 군이 되려면 그만한 역량과 수준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군 조직은 집단적인 통일된 체제에서 창의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이 나오지 않으면 현대 군을 이끌기엔 무리수가 따르고 사건사고가 매일 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현시점의 우리군의 상태이다.

 

민주화가 발전하고 재래식에서 첨단화가 이루어지는 사회만큼 군 역시 그에 부응하고 따라가는 융통성을 발휘해야한다. 하지만 우리군은 기계적인 부분은 여느 국가와 같이 발전되고 있지만 소프트적인 인적자원으로 여전히 과거 군의 전통과 시스템을 유지계승하고 있어 젊은 세대들의 인식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해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어디까지 두어야하느냐의 제한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의 수준과 성격을 들 수가 있다. 즉 군의 특수성에 따라 군에 입대 전 민주시민으로서 가졌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젊은 세대인 만큼 의무와 책임보다는 권리와 요구가 많았던 세대들에게 ‘제한적이다, 한정적이다, 금지한다.’라는 표현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다가오게 한다. 군 조직은 어떤 조직보다 강력한 조직력과 구성원들의 절대명령과 이행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마찰과 갈등이 어찌 보면 폐쇄적인 상황에 다른 조직에 비해 덜할 수도 있고 더할 수가 있다.

 

우리 군의 전투력에 손실되는 마찰로 갈등의 대부분은 진일보하지 못한 군의 생활문화와 여전히 꽉 막혀있는 위계절서, 굴욕적인 상하관계를 손꼽는다. 몇 년 전부터 강한 군대 강한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고의 쇄신방안으로 성공적 전투수행에 방해되는 요인으로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군 문화를 손꼽았고 국방부는 새 시대 새 문화에 맞게끔 혁신을 꾀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군 시설을 제외한 정서적 정신적 여건은 197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군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필요한 지도력과 단결력을 준비하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문화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성공적인 전투수행에 있어 평소 거친 언어와 비이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전투력을 상실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게 한다. 조직력과 특수성을 가만하더라도 지금은 6.25동란의 급박하고 언제 북의 공격으로 서울이 불바다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지나친 절대복종과 언어적 폭력성을 기반으로 군의 문화를 지속시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하지만 외부적인 군의 생활여건은 진짜사나이와 같은 병영문화체험을 간접적으로 느끼기엔 군의 기강이 많이 풀린 것처럼 보이고 또 예전의 군이 아닌 것처럼 군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조직력에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국방부의 승인과 조율로 이루어진 연출에 불과하다. 사실 군은 치명적인 사각지대로 가뜩이나 자유분방한 젊은 아이들을 철조망에 붙들어 놓은 것도 기본적인 스트레스인데 그곳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라는 슬로건으로 사병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적인 병영생활을 보여주는 TV나 이전보다 늘어난 탈영과 정신치료 의가사 제대률을 보면 충분히 모순감을 느끼게 한다.

 

외부사회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기존의 생활방식이 아닌 위계질서와 상하복종관계는 군인에게 때론 스트레스로 때론 강력한 자살이나 직접적인 돌발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한다. 특수한 수행 업무를 하는 것만큼 그에 맞는 강력한 계급과 그에 따른 위계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환경에서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병들에게 오히려 효과적인 단결력과 조직력을 생산하는데 일조한다는 것에도 부정하지 못할 이유이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와 명분으로 군의 조직력과 단합력을 이끌기 위한 훈련의 일종이 아닌 다른 근거와 이유로 벌어지는 위계질서와 상하관계는 절대적인 위계질서의 복종으로 일으킨 부작용을 초래하게 만든다.

 

장군은 말할 것 없이 중사이상의 부사관이나 중대장이상의 위관급 또는 영관급 지휘관들은 언제 터질지 모를 비상시를 대비하여 단단한 지휘체계를 만들려면 평소에도 위계질서를 강력하게 유지해야하고 그것도 하나의 군 교육훈련의 일종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말한 대로 비상 시 발생할 수 있는 체계를 위한 준비과정이지 폭력은 물론이고 동성인인 부하에게도 성추행을 하는 것은 군의 전투력과 위계질서에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군은 적과의 무력상황 펼칠 수 있고 강제적 행동억제를 만드는 것이지 같은 편에게 험한 폭력과 비이성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군의 폭력적인 문제로 자살 또는 탈영 항명과 같은 군의 중대한 규율을 어기어 재판을 받고 영창을 가는 군인들의 대다수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폭력과 규율위반과는 다르게 자신의 신체 또는 정신적으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벌어지는 일이 대다수다. 그래서인지 군의 조직에 일탈하는 군인들의 정신상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군 재판으로 형을 집행하는 경우 대개 상관은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로 바뀌어 있거나 최소한 공동의 책임으로 물어 부하군인에게 억울함을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형을 집행하고 나서 다시 군에 복귀 하더라도 혹은 운이 좋아 정신교육대와 같은 작은 처벌을 받고 나온 후임들은 복수심과 반항심으로 엄청난 괴물로 변하여 부대복귀가 이루어지고 결국 더 큰 사단으로 일이 발생하고 만다. 공정하고 정직하지 못한 재판이라 말도 많고 오히려 지휘관 또는 상관에게 명령불복종이라는 멍에를 붙여 낙오자 또는 정신이상자로 주홍글씨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분명 철저한 수사를 하면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데도 외부에서 알까봐 쉬쉬거리며 모든 고통을 부하군인에 넘기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군의 기강은 정직하고 바른 리더십과 문화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대상으로 물리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어서는 위계체계가 온전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문관이라는 낙인을 찍어 괴롭히는 군의 생활문화는 앞으로도 애국의 길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총구를 돌려 아군에게 쏘아대는 극단적인 일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군의 사건사고에 대한 문제로 아들을 가진 부모로서 또한 국가의 안보와 안정성을 그 어떤 기관보다 최우선으로 가지려면 군의 기강을 지휘관의 강력한 지휘력보다 군조직의 정직하고 올바른 상하관계와 위계질서를 새로이 기틀 잡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한다.

 

글 : 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laurel5674@naver.com)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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