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 일본의 지성인은 잘못된 과거를 사과했다
[시사타임즈 = 이을형 박사] 72년 여름. 필자는 오사카(大阪)에 거주하는 유물을 수집하는 분에게 고려시대의 탑 등 유물을 감정받기 위해 오사카(大阪)로 가는 중이었다. 당시 필자는 황수영(黃壽永)박사와 지금은 고인이 된 유학시절 거처를 마련해 주며 필자의 연구를 도와준 잊을 수 없는 이제형(李齊珩)님, 유물 주, 재일 한국공보관장 등 다섯 사람이 동행했다.
필자는 동석 할 사람이 없어서 신간선 일등석에 일본인과 동석하게 됐다. 그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교도대학(京都大學)의 국제법 학자인 다오카 료이치(田岡良一)교수였다. 교수는 동경대학(東京大學)의 요코다 기사부로( 橫田喜三郞)교수와 더불어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판사이기도 하다. 필자도 그의 저서들을 읽었다. 다오카(田岡良一)교수는 교토(京都)까지 가고, 나는 오사카(大阪)까지 가는 길이기에 자연적으로 법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법에 관한 대화와 재일외국인에 대한 ‘출입국관리법’ 문제까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교수는 재일한국인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고 못 마땅하게 “한국인이 일본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로 서두를 꺼내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전후 한국인이 일본인을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일본의 ‘출입국관리법’과 ‘외국인 등록 법’이 세계에 유례를 볼 수 없는 악법이며, 재일한국인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실례를 들어 말했다. 필자는 “일본이 지난 100년간 아시아인들에게, 특히 한국인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살육 그리고 수탈을 한 것을 아십니까”라며 운을 떴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을 일으키고 한국침략을 시작한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조약의 구성요건도 갖추지 않은 ‘한일합방늑약(勒約)’을 날조해서 합방 후 10년 동안 전농지의 50%(10만ha)이상을 약탈했다.
그 결과 농민의 75%가 토지를 잃고 소작인(42%)이나 또는 토지 관리인으로 전락했고, 여기에도 못 끼는 농민들은 만주 등으로 고향을 등지게 됐다. 반면 일본이 약탈한 토지는 일본인의 지주에게 귀속됐다. 농민의 혈세는 총독부수입의 50%이상이었고, 합방 후 4년간 5~6배(78.8%)나 증가됐다. 1910~1919년간에 쌀 18배, 면 화27배 증수와 민족성의 철저한 말살을 위해 조선의 고대사 등 역사왜곡을 위하여 22만권의 고서를 불사르는 만행으로 문화 동화정책을 강권적으로 전개한 사실은 80대 중반 이상의 한국 사람들은 다 체험하고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에 반대하는 우국지사들이 1907년~1908년 사이에 1만5000명이나 희생당했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그 해에 8000여 애국지사들이 살해당하는 한편 1만6000여 명의 사람이 부상당하고 20만 명이상이 투옥됐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은 일본이 강제적으로 일본에 오도록 하여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또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징용 80만, 학도병 36만, 정신대 5만 등이나(실제 20만으로 추산) 전쟁터로 내몰아 희생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기와 국가, 신앙까지도 아마데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를 숭배케 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창씨개명까지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철권정치를 강행함으로써 우리 강토와 민족을 유린한 것이 일제 36년의 실상이다.
필자는 “이러고도 일본이 잘 했다고 할 수 있고, 패전 후 재일 한국인이 차별대우를 받아도 당연하다고 하십니까! 이들은 당신들의 강제로 데려온 이들이 아닙니까! 설령 일본이 강제로 데려가지 않았더라도, 외국인도 인간입니다. 때문에 정책 선택은 보다 종합적인 정책에 의해서 세계인권선언이나 인권규약에 따른 인권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특히 한국인에 대해서 차별은 아주 잘못이다”라고 차분하면서도 강하게 말을 했다.
필자는 이어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받는 사회는 정상이 아닙니다. 일본국헌법상 “국적을 갖고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취지에 맞지 않음으로, 이에 맞는 인권을 누릴 수 있게 외국인에게도 자국민과 같은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외국인 처우는 일본 헌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그 강화회의가 1919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개최되었는데, 일본도 당시 미일 간에 이민법(移民法)의 마찰이 한창인 시기에 ‘국제연맹위원회’에 ‘인권차별 철폐조항’을 제의했다. 말하자면 ‘국제연맹의 기본적 강령인 것을 고려하여 체약국은 연맹원인 모든 국가의 인민에 대해서 그 인종 및 국적의 여하에 의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어떠한 구별을 둠이 없이 일체의 점에 있어서 균등 공평의 대우를 약속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정신을 일본은 오늘에도 견지해야한다고 필자는 주장했다.
조목조목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교수의 차별이 부당하다고 반론하자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답게 솔직하게 자기가 “잘못했다”고 진솔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의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선생의 직통전화를 써서 주며 “교토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을 해서 찾아 달라”고 하고 교토역에서 헤어졌다.
그 후 그 교수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지금도 일본의 극우파와 정치인들이 독도문제를 일으키며 억지를 부리는 무리를 볼 때마다 한편에서는 살아있는 일본의 양식을 가진 존경하는 일본의 많은 지성인 중 그 선생의 인품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다오카 료이(田岡良一)선생과 70년대 초의 진솔한 옛 추억의 대화를 회고하며, 한·일 간에 정도를 가도록 소망하는 마음이다. 한·일 간의 성실한 일의대수(一衣帶水)로 세계로 나갈 그때는 언제 오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을형 박사(전 숭실대법대교수, 본지 고문)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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