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 전문가 칼럼 ] 세계 제패한 고조선후예들 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

[ 전문가 칼럼 ] 세계 제패한 고조선후예들 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


[시사타임즈 = 이을형 박사]

 

고대사 연구자 적은 것 한탄했던 최영희(崔永禧) 선생




우리가 너무 고대사연구를 소홀히 해 고조선 상고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일본, 중국에 비하면 너무 적다는 것을 염려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최영희(崔永禧) 선생이 생각난다. 선생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 동경에 와 필자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필자는 마침 일본에서 요양 중에 있었다. 필자가 당시 일본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지도교수인 마쓰오카 사브로(松岡三郞) 선생께 인사차 방문하니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었다.

 

그의 말은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자중 3년 이내 3사람 중 한사람은 죽었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32호 박사이니 10여명이 학위를 받고 후환으로 3년 이내에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필자 역시 학위 취득 후 건강이 좋지 않아 일본 동경의 중심가 유락조(有樂町)에 있는 내과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 결과 몸 안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의사는 필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말하기를 “살아 있는 송장”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소변을 보면 두부가 되고 물을 마시면 설사를 하는 상황이라 당연한 말을 한 것 같았다. 의사는 필자에게 담배와 술을 하느냐고 묻기에 안한다고 하니“당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그나마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귀국해도 강의조차 힘들 것 같아 1년을 더 일본서 요양하고 있을 때 최영희 선생이 온 것이다.

 

선생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지만 국사편찬회에는 독도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마침 선생은 일본 헌정회관(憲政會館)에서 일본 역사학자와 학술회의가 있어 겸사겸사 일본에 독도자료 수집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일한국대사관과 재일한국공보관(관장)에게 자료를 부탁했으나 한 점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전화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자료를 수집해 드리지요” 하고 박사자료를 수집한 경험을 살려 많은 자료를 수집해 국사편찬회로 보내게 됐다.

 

미처 수집하지 못한 자료는 필자가 민단기획조정실에 있을 때 친분이 있어 선거 때 필자의 도움으로 11명이 더 당선된 일로 가까워진 일본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았다. 필자는 그래서 독도 자료를 대형 나무상자 2개에 담아 재일거류민단과 주일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파우치로 국사편찬위원회에 보낼 수 있었다. 이 자료를 모으며 일본헌정회관의 학술회의에도 최영희 선생과 같이 참석했다.

 

최 선생은 ‘판소리’에 관해 발표하고 필자는 토론에 참석해 한·일양국의 학문교류를 법이 아닌 역사관계에 근거해 선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선생은 “지금 한국에는 고대사 연구하는 사람이 30여명(32명) 정도인데 일본은 2만명이 넘고 관심을 가진 사람도 32만명이 넘는다”고 하며 “우리의 고대사연구가 일본과는 상대가 안될 만큼 지지부진하다”고 한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우리는 조상의 뿌리를 찾는 역사연구에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위대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지만 너무 역사연구를 소홀히 하는 것에 선생이 한탄을 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본은 우리가 가서 세운 나라임에도 자신들이 자생적으로 건설했다고 날조와 기만(欺瞞)하는데도 우리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일본 궁궐의 신주(神主)는 모두 한국인이다

 

일본은 우리 한족(韓族, 한민족)이 가서 건설한 나라라는 것을 증거하면서 한족(韓族)의 한국사 연구를 위해 일본의 고대사서(古代史書)를 많이 찾으며 연구한 최태영(崔泰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이 계획을 세워 철저하게 꾸며낸 것으로 역사서라기보다는 권력사(權力史)다” 그 증거로 일본서기는 속편을 계속 발간하기 때문에 이를 추적하다가 한국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端緖) 여러 개를 선생이 찾아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가 종묘에 제례(祭禮)가 있고 제례법(祭禮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 보고 이를 추적하는 중에 일본의 ‘국사대계’를 찾아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고대사의 역사 말살을 기도해 총독부가 불사른 것만도 22만여권이 넘고 그 외에 또 수만 수천권의 고서를 불사르거나 일본으로 가져가서 역사 왜곡을 했는데, 제례법(祭禮法)에 관한 것만은 미처 왜곡을 못했던 서책 ‘엔기시기’(延喜式)을 찾아 낸 것이다.

 

이 제례법은 일본의 ‘국사대계’ 제13편에 있는 ‘엔기시기’ 기록이다. 이세신궁(伊勢神宮) 아마데라스 오가미(天照大神) 36좌(座)의 일본이 모시는 조상신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모시는 원신(園神)과 한신(韓神)의 신위(神位)는 가장 앞자리에 위치한다. 이는 신라, 가야, 백제에서 간 우리조상들이 일본을 건설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일본궁궐제례(宮闕祭禮)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일본 궁궐에서도 제사를 드릴 때 나타난 제례에는 신위(神位) 36위를 모시는데 ‘엔기시기’에 나타난 그대로 ‘원신’(園神=신라, 가야 조상) 1좌(座)와 ‘한신’(韓神=백제조상) 2좌(座)를 모시고 그 나머지 신위는 아래에 모신다. 여기서 낭독하는 제문(祭文)도 한국어다. 필자가 일본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TV화면에서 보면 일본말이 아닌 우리말이었다. 정확한 발음은 잘 표현이 안 되지만 필자의 귀에는 “오노리 오노리라”(오늘이 오늘이라)하며 제문을 읽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이 말이 어느 나라 말인지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일본역사의 상반은 한국역사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제사를 모시는 제문도 한국어인 것이다.

 

일본 가고시마현(鹿島縣) 미야마(美山)에 있는 단군사당(檀君祠堂)인 교구산구(玉山宮)에서 제일(祭日)에 하는 것도 거의 같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일본의 국가신이 한국에서 간 유민(流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가야, 백제에서 간 조상들이 일본 궁궐의 왕이 됐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일본 학자인 와다나베 미쓰토시(渡邊光每)는 “고대 천황가 도래의 그 뿌리가 백제왕가에서 나왔다”고 실토하고 있다.

 

일본 왕조발생이 이처럼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건너가 세운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신라와 10여 차례 교역했고 발해와는 14번 했다. 당시 발해사신이 일본 후쿠라 항에 닿으면 제일 먼저 그곳 사당에서 제물을 놓고 도착을 고한 뒤 조정인 미카도로 달려가는 것도 ‘엔기시기’에서 알 수 있다. 이는 발해와 일본이 연합해 신라를 쳐서 잃어버린 조국 고구려와 백제를 회복 하려는 의도였다.

 

이 계획은 성과를 못내게 되지만 발해(渤海)와 신라 간의 정치적 협상을 하는데도 도착을 고(告)할 만큼 같은 조상의 신을 신성시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발해나 일본의 조상이 하나임을 말해주는 증거인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역사와 유물을 날조하며 왜곡시키고 일제 당시에는 우리역사를 황폐화 시켰으나 제사를 드리는 ‘엔기시기’까지는 손을 못 댄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위대한 역사가 일본과 중국에 의해서 얼마나 왜곡·날조 됐는가를 알 수 있게 그 증거를 제시해 주는 좋은 자료가 돼 주는 것이다. ‘엔기시기’ 말고도 지금 일본 궁내성에는 한국에 없는 귀중한 조선 고대사에 관한 도서와 자료들이 많이 있다. 이것들은 다 한국에서 빼앗아간 우리의 서책들이다. 이 서책들은 우리 역사가 얼마나 찬란했던가를 말해 줄 서책이지만 일본은 이 서책들을 공개하지 않는다.

 

일본 왕릉을 발굴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서책들을 돌려받아야 한다. 이 서책과 유물이며 자료들은 모두 우리 것을 약탈해 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역사의 열등감에서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고 왜곡·날조하지만 일본은 우리가 세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우리역사 날조는 어떻게 했나

 

일본이 역사 왜곡을 하기 전 역사서를 보면 분명히 고조선이 환국(桓國)에서부터 언급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도쿄대학’과 ‘경성 조선연구회’에서 발행한 ‘교정 삼국유사’를 보자. 여기에는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의 기록 중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의 환국(桓國)두 글자가 1902년과 1916년에 일본 학자들도 온전하게 진본대로 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변조자인 이마니시 류(今西龍)도 조선연구회가 일본인으로 구성 된데서 낌새를 못 챘던 것 같다. 일본 제국주의시대는 환국(桓國)으로 표기된 삼국유사(三國遺事) 본(本)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에 이 삼국유사 임신본(壬申本)을 소장하고 있던 황의돈 선생도 생전에 삼국유사 임신본(壬申本)이 있음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 책은 지금도 서울대 판본으로 규장각(奎章閣) 깊숙이 소장돼 있다.

 

일본은 환국을 중요시 해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변조된 사실을 밝혔던 최남선(崔南善) 선생도 이 책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간악한 일본의 후환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일본이 역사 왜곡을 철저히 했나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최남선 선생은 환국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조선사편수회’가 왜곡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역사를 매장하는 학살행위다. 우리나라 역사가 1만년이 되는 것은 외국에서도 알 수 있다. 필자가 다니는 주님의 교회(박원호 목사)에 이병식(李炳識) 장로(長老)가 있다. 이 장로가 세계여행을 한 이야기를 필자와 나눴다. 그가 아프리카를 돌아 마지막으로 터키에 도착하니 오랫동안 한국음식을 못 먹은 터라 한국음식이 생각났으나 한국 식당이 안보여 할 수 없이 터키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게 됐다.

 

그런데 음식을 보니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한국음식과 똑같아서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터키사람들은 우리 한국 사람을 보면 형제라고 하며 친근감을 보이는데 왜인가. 터키가 우리를 형제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역사에 근거해서다. 그들은 먼 옛날 우리조상들이 조선족, 거란족, 여진족, 말갈족, 훈족, 선비족, 돌궐족(突闕族) 등 12부족이 추수한 후 같이 음식을 먹으며 노래와 춤을 추며 즐겼던 역사적 사실에서 형제라고 하는 것이다.

 

터키사람들에게 당신 나라의 역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1만년이라고 한다. 12부족을 지배한 우리 역사도 1만년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오래전 집단 가출한 한 무리 중에 돌궐(突闕)은 튀르크, 즉 터키가 됐다. 오스만 제국을 건설한 돌궐족 터키는 1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우리는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과 조작으로 엄청난 역사를 도둑맞은 절반이하 그대로인 상태에 있다.

 

우리는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기마민족으로서 실제 존재한 고조선을 통해 동아시아 최초이자 최강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럼에도 그 역사가 우리들의 잘못으로 침탈을 당하고 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로마를 멸망시키는데 일익을 한 흉노(匈奴)라 부르던 훈족(훈 가리)은 지금의 헝가리가 되었다. ‘훈가’는 몽골어로 ‘나라’는 뜻이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제천행사(祭天行事)를 했다. 부여 영고(迎鼓)는 추수가 끝난 12월에 했다. 예(濊)에서는 매년 10월에 무천(舞天)을, 고구려는 역시 10월에 동맹(東盟)을 각각 지냈다. 하늘에 감사하는 제천행사였다.

 

또 백제는 교천(郊天), 삼한(三韓)은 불구내(佛矩內) 등으로 천신(天神)께 감사제를 드렸다. 이때 같이 이 행사를 치르던 우리네 형제가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들은 우리와 떡과 술을 나누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던 형제같은 사이였다. 상고시대 조선(朝鮮)에서 갈라져 조선(朝鮮), 선비(鮮卑), 흉노(匈奴), 몽골, 돌궐(突闕), 거란(契丹)등이 됐다. 이들이 극동에서 유럽까지 세계를 다스렸다. 원래 유목민족에게는 경계선이 없다. 초원을 향해 좋은 곳에 깃발을 꼽는 곳이 그들의 영토이다.

 

세계역사에서 보듯 몽골은 세계를 정복했고 여진(女眞)은 금(金)을 세우고 중국의 청(淸)나라가 됐다. 조선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됐다. 우리가 바로 천하를 호령하던 중국도 두려워하던 오랑캐가 아닌 위대한 배달민족인 것이다

 

 

이을형 박사(전 숭실대 법대 교수, 본지 고문)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