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 종교 ] 인류 최대의 구속사건 십자가

[ 종교 ] 인류 최대의 구속사건 십자가



[시사타임즈 = 엄무환 편집국장] 로마 시대 최고의 형벌은 십자가형이다. 십자가형은 당시 형벌 중에서 가장 혹독한 벌이었다. 죄수를 나무에 매달아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 내버려 둠으로써 엄청난 정신적 육신적 고통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사흘 정도 견뎠다고 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목마름과 호흡압박이었다. 목을 옥죄어 들어오는 압박감은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들었으며 한낮에 쨍쨍 내리쬐는 햇볕으로 인한 타는 목마름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차라리 목숨을 그냥 끊어버리는 것이 훨씬 나았겠지만 그렇게 하질 않고 온 몸으로 고통을 느끼게 한 후 죽게 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란 그만큼 죄질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셨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만큼 죄질이 나쁜 분이셨다는 뜻이다. 과연 그러하신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실만큼 그토록 나쁜 사람이었는가.

 

세상 사람들은 말하길 예수님을 공자, 석가와 함께 세계 삼대 성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에게 성인이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말하는가.

 

사 실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십자가에 달리실만한 죄가 있다고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형벌을 내린 빌라도 총독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했다. 단지 민란이 일어날까봐 그게 무서워 어쩔 수없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을 내렸던 것이었다.

 

예 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음모를 꾸민 주범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죄목은 ‘신성모독죄’. 즉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 여겼다는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십자가형을 받을 만큼 당시 로마법정에서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했다하여 로마정부에 반기를 들 것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만들어 십자가형에 매달도록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명패가 붙었다.

 

따 라서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유대인의 왕이라는 두 가지 이유가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메시야를 뜻한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했을 때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셨다. 이는 정치적인 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어진 메시야(구원자)라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 런데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고 메시야가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형을 받으셨다면 예수님은 정신병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시며 메시야이시다. 즉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한 분 말이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수천 년 동안 예언되어진 사실이었으며 그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형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확증하는 증거였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속에 내포되어진 비밀이다.

 

십 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수용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내가 달려야할 십자가에 예수께서 달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알리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렇다. 우린 죄인이다. 살아가면서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그 죄는 어디서 배운 것인가. 누가 가르쳤는가. 배우지 않아도 죄를 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죄성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속엔 죄를 짓게 하는, 즉 죄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이 죄의 삯이 사망이다.

 

모 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의 장이 될 사망. 인간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인 이 사망의 문제는 오늘도 우리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요 고난이요 허무인 것이다.

 

이 사망의 문제를 단박에 해결한 것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버린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느냐이다. 즉 예수님이 나의 죄를 구속하신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겠느냐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자, 즉 믿는 자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예수님처럼 부활의 소망이 주어진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겐 여전히 자기 죄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망(죽어서도 망하는 인생)은 필연적이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위에 서 있었던 두 강도와 예수의 십자가는 지금 없다. 그러나 세 개의 십자가 중 오직 한 개의 십자가, 즉 예수가 달렸던 그 십자가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인)이 되어졌다.”

 

엄무환 편집국장(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